셰프를 꿈꾸는 청년들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더 스토리 No.4] 직원들이 웃어야 행복합니다

유한회사 섬이다


대표님은 섬이다의 창업자는 아니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인연으로 섬이다의 대표직을 맡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2011년에 지금의 ‘섬이다’가 아닌 넥슨에서 운영했던 ‘닐모리 동동’이라는 레스토랑에 총괄 셰프로 처음 입사를 하게 됐어요. 이 후 우유카페인 ‘우유부단’과 ‘관덕정 분식’을 차례대로 오픈하면서 전부 다 총괄 셰프 아니면 점장의 역할을 했지요. 그래서 대표가 된 지금도 여전히 셰프복을 입고 있네요. 아무튼 저는 요리하는 사람이고 ‘섬이다’ 창업자였던 대표님이 공직을 맡게 되면서 제가 대표직을 이어받게 되었지요.

제주분이시죠?
네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초중고, 대학까지 제주도에서 다녔습니다. 어릴 때부터 요리사를 꿈꾸었기 때문에 대학도 조리과를 나왔는데 군대 갔다 온 이후 서울에서 요리를 좀 배웠어요. 그런데 육체적으로도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때는 주5일제가 아니었으니까 평균 12시간 이상씩 계속 일을 해야 했죠. 그때 서울 생활이 좀 외롭기도 했고 퇴근 후 여가생활이나 취미생활은 물론이고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보니 결국은 4년 만에 부모님이 계신 제주로 다시 내려 왔어요. 그때부터 쭉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요리 중에서도 주전공은 무엇이었나요?
양식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는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근무했죠. 자격증은 한식, 양식, 제과, 제빵 이렇게 네 가지 가지고 있고요. 제주에 내려왔을 때 마침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오픈을 해서 그곳에서 매니저로 4년 정도 일했어요. 그 때 매니저로 근무를 하면서 처음으로 주방이 아닌 고객 응대도 경험했는데 건강이 좀 안 좋아서 그만두고 반 년 정도 쉬었던 것 같아요. 그 후에 입사를 하게 된 곳이 ‘닐모리 동동’이었죠.

청소년 때부터 요리사를 꿈꾸었던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좀 있었어요. 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되게 좋으셨거든요. 주위에서도 다들 이 정도면 식당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요.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접하기도 했고, 어머니 피를 물려받아서 요리에 남다른 감각도 좀 있었던 같아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우연히 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물론 그때는 주방이 아니라 홀에서 빵을 판매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아침에 출근을 하면 주방이 항상 북적북적하고 유쾌하고 그렇더라고요. 아침부터 나는 졸린 상태로 출근을 하는데 저보다 훨씬 먼저 출근한 이분들은 텐션은 엄청 높았어요. 그런 모습을 멀리서 계속 봤던 것 같아요. 되게 매력적인 사람들이구나. 나는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힘든데 저분들은 왜 저렇게 재밌나 싶었죠. 그리고 빵도 정말 맛있었어요. 그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진로를 굳혔고 조리과를 가게 되었죠. 지금까지 그 선택을 후회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 제 칼을 사게 됐는데 요리사로서 제 칼을 갖는 순간부터 어떤 전율 같은 게 느껴졌어요. 내 칼인 거죠.

그러네요요리사에게 칼이 갖는 의미는 그저 요리도구 하나를 장만했다는 것 정도가 아닌 굉장히 특별한 상징 같은 거네요.
지금은 제가 꽤 좋은 칼을 쓰는데 당시에는 브랜드도 지금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그다지 좋은 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가정용 칼은 쓰고 싶지 않아서 나름 열심히 찾아보고 샀지요. 보통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는 개인 칼들이 있고 칼이 없는 분들은 공용 칼을 사용하는데 저희 회사는 직원 복지의 일환으로 칼 사는 것만큼은 지원을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멋지네요어쨌든 자기 칼이 생긴다는 건 요리사로서 자기의 정체성이 딱 생기는 그런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그걸 지원해 주신다는 건 요리사들에게 엄청 큰 힘이 될 것 같아요사실 이건 그 세계를 모르는 대표님들은 할 수가 없는 일이네요대표님이 요리사이다 보니 주방에서 근무하는 요리사분들과는 원팀으로서의 유대감이 강할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을 되게 좋아하는 편인데 일에 대해서만큼은 좀 엄격하다보니 저를 무서워하는 직원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결국은 저의 진심을 아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예전에도 저는 셰프라고 점장이라고 청소 안 하고 요리도 간만 보고 이러진 않았거든요. 같이 부딪히면서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하다 보니 직원들과의 유대감이나 믿음이 빨리 생기더라고요.

아까 서울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 제주로 리턴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때 서울 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좀 더 해주세요
정말 냉정한 세계였죠. 처음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 되었던 건데 그 전에는 제주라는 테두리 안에서 누군가한테 항상 보호를 받았었고 힘들 때는 옆에 친구들과 가족들이 항상 있었고. 그런데 서울은 참 많이 달랐어요.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도 행복한 기억이나 추억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퇴근하고 나면 같이 술을 먹어야 하는 일상도 너무 싫었어요. 지금 나이에 가면 좀 달랐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타지에서 겪는 외로움도 너무 힘겹고 가진 것도 없고 육체적으로도 너무 혹사하는 그런 현실 속에서 그냥 버티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금방 포기하고 제주로 돌아오게 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고맙게도 그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요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게 제 스스로 기특하긴 했죠.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제주도로 다시 돌아왔을 때 이곳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만족감이 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요고향이라는 게 얼마나 나한테 큰 안전장치인가 하는 걸 알게 되었을 테니까요.
맞아요. 돌아와서 취직을 한 패밀리레스토랑은 제주도에 처음 매장을 오픈하는 상황이니까 다들 본사 팀에서 내려온 육지 분들이었는데 제가 제주 도민이라고 하니까 저한테 많이 기대는 분위기였죠. 덕분에 서울에서 무너졌던 자존감도 좀 회복이 되었고요.

대표님은 어떤 요리사가 되고 싶었나요?
좀 고지식한 얘기지만 솔선수범할 수 있는 요리사, 그리고 좀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솔선수범이라고 하면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 아무런 설명을 안 해주고 이거 해, 저거 갖고 와 하는 분도 있고, 지시를 하면서도 그 내용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누군가를 코칭하거나 일을 가르쳐줄 때 말로만 하지 않고 직접 설명해주고 보여주고 하는 그런 친절한 요리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또 하나는 요리에 대한 지식인데, 요리도 과학이라고 하잖아요. 요리사 중에도 이게 어떤 식재료인지 어떤 게 들어가서 어떤 맛을 내는지 정확히 모르시는 분들도 꽤 많아요. 본인이 그 요리를 만들고 있지만 재료의 성질이나 특성 같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후배들의 질문에 피드백을 하기는 커녕 성질만 내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각각의 재료들이 가진 특성은 물론이고 재료와 재료가 결합됐을 때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어떤 효능이 있는지 또는 피해야 할 게 있는지 그 원리와 과정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고 후배들에게도 그런 것들을 좀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는 그런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느 정도 바라던 바를 이루신 건가요어떠세요?
아니요. 지금도 진행중이죠. 이곳 ‘관덕정분식‘을 2년 전에 오픈했는데 당시 제가 총괄 셰프였고 점장이었기 때문에 온전히 다 제 메뉴로 오픈을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때까진 양식을 계속 해왔던 터라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같은 재료들과는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흔히 먹고 접했던 재료지만 이걸 실질적인 레시피로 만드는 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죠. 앞으로도 그런 배움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까지 하셨던 요리 중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건 어떤 메뉴였는지 궁금해요.
파스타였던 것 같아요. ‘닐모리 동동’에 오징어 먹물 파스타라는 메뉴가 있었어요. 가을 메뉴였는데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잘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저 시즌 메뉴를 잘 조합해서 내놓자는 게 목표였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이 너무 좋았고 그 덕에 당시 좀 침체되어 있었던 ‘닐모리 동동’이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었죠. 40가지 가까운 메뉴 중 하나의 메뉴가 시그니처가 되면 이 하나의 파급력은 엄청나게 커지니까요.

지금 이곳 관덕정분식도 제주시 핫플 중의 한 곳인데요이곳 메뉴 중에도 그렇게 특별히 신경을 쓰신 메뉴가 있나요?
저희 메뉴 중 가장 기본적인 건데 관덕정 떡볶이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여기 오픈할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메뉴고 가장 가격이 낮은 메뉴죠. 여기가 예전에 분식 골목이었다고 해요. 서울의 신당동처럼 나름 유명한 곳이라서 처음 이곳에 공간을 만들 때 옛 분식을 콘셉트로 다시 해석해보자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분식이라고 하면 그래도 떡볶이가 가장 기본이니까 이게 맛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썼어요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잘 모른다는 게 문제였죠. 고춧가루가 지역마다 맛이 다르다는 것도 몰랐고 고추를 빻는 방앗간이 어딘가에 따라서도 고춧가루 맛이 달라진다는 것도 몰랐죠. 그 때 고춧가루에 대한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통상 레시피를 개발할 때는 일인분씩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대용량으로 하다 보니까 잘못되면 다 폐기하고 다시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러니 잠도 거의 못 잘 정도로 신경을 써야 했죠.






“분식이라고 하면 그래도 떡볶이가 가장 기본이니까 이게 맛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썼어요.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잘 모른다는 게 문제였죠.
고춧가루가 지역마다 맛이 다르다는 것도 몰랐고 고추를 빻는 방앗간이 어딘가에 따라서도
고춧가루 맛이 달라진다는 것도 몰랐죠. 그 때 고춧가루에 대한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고춧가루를 찾으셨나요?
그게 참 어려운 문제죠. 분식 메뉴라는 게 가격이 워낙 저가로 책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쉐프의 마음만으로 고가의 원재료를 선택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적정선의 원가를 지키는 선에서 최선의 재료를 찾는 것도 쉐프의 역할이고요. 그래서 조금 아쉬운 선택을 하긴 했지만 다른 맛들을 추가함으로써 그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어쨌든 관덕정 떡볶이에 대한 고객들의 만족도는 비교적 높다고 생각합니다.


섬이다는 현재 관덕정분식 외에 우유부단도 운영하고 계시지요? ‘우유부단’ 역시 반응이 아주 좋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네 맞습니다. ‘우유부단’은 좋아해주시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은 편이라 감사하죠. 조직 자체도 많이 안정되어 있는 편이고요. 저는 주로 관덕정에 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항상 그쪽에서 가서 현장 체크도 하고 회의도 하고 그러죠.

코로나 영향은 없었나요?
영향이 아주 큰 편이죠. 저희가 매장이 모두 3개였다가 작년에 매장 하나를 접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닐모리 동동’인데요. 물론 매장 임대 재계약 문제도 있었지만 코로나 영향도 컸어요. 그런데 ‘닐모리 동동’은 저희 회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매장이었고 회사의 뿌리라고 할 만한 곳이었거든요.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시작을 해서 ‘섬이다’가 출범을 했고 예비사회적기업과 사회적기업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으니까요. 직원도 가장 많았었는데 결국 그런 곳이 문을 닫게 된 거죠. ‘우유부단’은 2016년에 오픈해서 5년 정도 되었는데 현재는 무언가 새로운 시도나 사업 확장보다는 매출 안정화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고객의 90%가 관광객인데 코로나로 인해 방문객이 줄어들다 보니 작년부터 적자가 지속되고 있어서요. 원래는 작년에도 신규 사업 확장이 예정이 돼 있었는데 그것도 결국 다 취소가 되었고 그 와중에 가장 중요한 매장을 폐업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요. 그래서 지금은 무조건 현장에서 고객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대표직을 맡은 이후로는 대외활동도 많고 해서 주로 사복과 정장을 입고 다녔는데 직원들이 그만두게 되면 새 직원을 다시 채용하는 것도 지금은 솔직히 부담스러워서 저라도 현장에서 일손을 덜어야겠기에 다시 셰프복을 입었지요. 저는 이럴 때일수록 내부의 집중이 좀 더 우선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코로나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는 없지만.

밖에서 볼 때는 어쨌든 사회적기업 섬이다는 사회적경제 신에선 대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코로나 상황은 대기업(?)인 섬이다도 결국 피해가지 못하는군요.
아무래도 저희는 고객들과 직접 대면을 하는 사업이다 보니 2년 넘게 지속되는 이 상황을 이겨낼 재간이 없는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망이 사라지고 이게 나아질까 싶은 불안이 계속되니까 그저 앉아서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는 침몰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도 들고 어느 시점부터는 무언가 아예 다른 방식으로 이 상황을 돌파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센터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올해 부스터사업도 시작했던 거고요. 표현하신 대로 ‘대기업이 왜?’ 하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가 좀 성장을 하고 싶었어요. 요리만 하다가 갑자기 대표직을 맡게 되니 심적인 부담이 커서 회사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도 좀 배우고 싶었지요.

그러셨군요그러면 앞으로는 섬이다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으세요?
우선 청년들이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쉐프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배울 것이 많은 회사라는 평가도 받고 싶고요. 저는 사실 직장을 다닐 때 부모님들이나 지인들한테 나 이런 회사 다닌다고 자신있게 자랑할 수 있는 회사가 제일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본인이 일하는 조직과 회사에 만족감이 높지 않으면 주변에 회사 얘기하는 것도 부담스럽잖아요. 다니는 회사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그런 회사는 되지 말아야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일도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나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많이 참여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대체로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으로 기부를 하거나 했는데 앞으로는 지역 내에서 다양하게 협업도 하고 싶어요. 사회적기업끼리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상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고 제가 가진 능력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도움도 드리고 싶어요.


사업가로서든 개인 강준호로서든 대표님을 제일 행복하게 하는 건 어떤 일일까요?
제가 결혼한 지가 얼마 안 돼서 아무래도 지금은 아내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이 제일 행복하죠. 직업상 주말이 없다 보니 직장에 다니는 아내와 같이 쉬는 날이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안 돼요. 평상시엔 밥도 거의 같이 못 먹으니까 둘 다 같이 쉬는 날에는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죠. 연애하듯이. 그리고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웃을 때, 성과고 매출이고 이런 걸 떠나서 회사에 웃음소리가 나고 뭔가 행복해 보일 때 그럴 때 저도 덩달아서 행복해져요.

함께 일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저희는 현장 직원들 외에 경영 지원 역할을 하시는 분이 세 분 계세요. 디자인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분, 회계 쪽 도와주시는 분, 그리고 사업팀장 역할을 하시는 분. 그러니까 운영진은 저까지 포함해서 네 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들 30대 초중반의 젊은 분들이시고 예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함께해온 분들이시죠. 그리고 양쪽 현장에 있는 매니저들. 이렇게가 주축멤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의사 결정은 어떤 방식으로 하세요?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에 따라서 과정이 좀 다르긴 한 것 같은데요. 어떤 사안이든 최종적으로는 제가 거의 결정을 하지만 사업 전반에 대해서 경영 지원팀과 매니저들과 의논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도 하고요. 지금은 그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쉽지 않아서 두 달에 한 번 정도밖에 못해요. 그리고 내부적으로 레시피를 변경한다든지 뭔가 새로운 메뉴를 추가한다든지 이런 부분은 현장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죠. 현장에서는 즉각즉각 해야 하는 판단과 결정들이 되게 많거든요. 그런 것들을 다 제가 다 보고받으면서 일일이 할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는 위임을 하고 큰 문제에 대해서는 보고도 받고 같이 공유하고 그러죠.

이제 2년 째 대표로 섬이다를 이끌어가고 계신데 앞으로의 섬이다는 어떻게 변화해나갈지 계획도 궁금하네요.
저희 회사는 아무래도 구성원들이 대부분 젊다 보니 젊은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장점인 것 같아요. 조직의 유연성이랄까 변화라는 측면에서의 순발력이랄까 이런 것들요. 저희가 지금 9년 넘게 비교적 성공적으로 외식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래도 나름 F&B 쪽의 운영 노하우가 쌓여 있지만 한편으론 현재의 성과에 안주해 버릴 수 있는 단점도 있어서 그걸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볼 때도 ‘섬이다’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해나가고 발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죠. 대표 개인의 역량보다는 청년공동체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꼭 그렇게 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유한회사 섬이다( 관덕정분식 / 우유부단 ) 는 한자어로 閃異多로 ‘빛나는 다름이 많은 제주’를 의미합니다. 제주로컬푸드, 자연, 문화에 기반한 퓨전 f&b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제주 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소규모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적으로 제시하고 ‘미래가치’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