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 정형, 無 공간, 無 경계의 부엌

[더 스토리 No.8] 지속가능한 여성공동체를 꿈꾸며

무조리실협동조합


오늘 뭔가 기분이 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그러네요. 오늘이 무조리실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날이니까.

사업을 정리하시는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조금 고민이 있었습니다만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다가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분명히 그 이유가 있을 거고 그래서 뭔가 마무리하는 그 지점의 이야기를 담아보는 것도 사회적기업 전체로 봐서는 필요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어쨌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마지막 즈음에 해야 되는 질문이 첫 질문이 되어야겠습니다왜 잘 되고 있는 사업을 그만두기로 결정하셨을까요?
사업은 잘 돼가고 있었죠. 그런데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과 비즈니스 모델로서 식당을 운영하고 음식 사업을 하는 것, 거기에다 사회적기업으로서 활동해야 하는 것. 이 세 가지를 저희 조합원 5명 전부가 다 같이 참여해서 공동운영을 하다 보니 다들 너무 힘들었죠. 밖에서 보기에는 식당이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식당을 운영해서 조합원 5명과 직원들 월급까지 다 나오기가 쉽지 않았으니까요. 우리가 일한 만큼 가져가기 위해서는 조직을 키우거나 지원을 더 받거나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규모를 더 키우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한계가 여기까지라면 그걸 인정하고 그만두기로 한 거죠.

사실 이렇게 폐업을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오래 걸렸어요. 저희 5명의 생각이 일치해야 하니까요. 사실 그만둔다는 얘기는 한 달 전에 외부에 알렸지만 저희끼리는 그 전에도 매년 식당 운영을 계속 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곤 했죠. 그러다가 올해 초에 올해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자고 해서 6개월은 각자 생각해 보고 6개월은 회의를 했고,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폐업 발표하고 정리 작업 들어가고, 그리고 이제 식당도 문을 닫았고요. 아직까지는 법인 해산과 협동조합 해산 청산이 남아 있어요.

결국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수익구조를 만드는 일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다른 사회적기업들도 늘 맞닥뜨리게 되는 딜레마가 아닐까 합니다.
저희가 처음에 식당을 한 것도 지원받지 않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고 해서 시작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해온 방식으로 노동하고 또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데는 노동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었어요. 소스 하나까지 다 직접 만든다는 게 결국은 다 인건비 투자인데 비즈니스 모델로서는 사실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였죠. 손님이 많아질수록 일손이 더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니까 조합원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고. 그러니까 협동조합의 비즈니스 모델로서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이었죠. 기본적으로 사업이 잘되려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고 거기에 운까지 붙어야 잘 되는 건데 저희는 그걸 몸으로 버텨내려 했으니까요. 더구나 조금씩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사회적 빚이 또 마음에 있고. 같이 즐겁고 같이 행복한 순환 구조가 돼야 하고 정직하게 일을 하면 그만큼 돌아오는 게 있다는 경험이 필요한 건데 더 이상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어요. 더 이상 우리의 몸을 혹사하면서 하지는 말자고 결론을 내린 거죠.

그러게요많은 사회적기업들이 비슷하게 안고 있는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특히 사회적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비즈니스 경험이나 경영면에서 전문적인 인력이기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 많다 보니 이런 부분을 집중 보완해나가는 것이 사회적경제의 당면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어쨌든 무조리실은 부엌을 중심으로 한 여성공동체라는 이미지가 제일 강했는데요왜 부엌이었을까요?
7년 전에 현재 저희 조합의 대표이자 메인 셰프인 무솁을 만났어요. 사실은 배경과 살아온 환경이 서로 많이 달랐지만 집을 구해서 같이 살게 된 거예요. 그런데 무 은 요리를 정말 잘하고 좋아하는 친구였고 저는 요리를 싫어하고 잘 챙겨 먹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랬거든요. 서로 너무 다른 스타일이다 보니 소통하는 방법도 달랐는데 함께 지내다 보니 그 친구가 소통하는 방식은 음식이더라고요. 저는 항상 이렇게 뭔가를 말로 설명하면서 소통하는 방식이 익숙한데 이 친구는 사람을 보고서 이 사람 지금 지쳐있네 싶으면 그 사람이 좋아하고 보양이 될 것 같은 음식을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말도 안 하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상대에게 어떤 음식이 맞는지 안 맞는지 이런 걸 알더라고요. 근데 그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금방 마음을 놓게 했어요. 이 사람이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음식을 통해 마음이 금방 열리는 거예요. 그래서 음식이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깨달았죠. 무언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음식을 통해 신뢰가 생겨나고 마음이 열리게 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요리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친구는 자기가 요리사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지만 자격증이 없어도 이렇게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요리사로서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에 프로젝트를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죠. 마침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가게를 쉬는 이틀 동안 음식을 만들어서 팔자고요. 그렇게 6개월 동안 매주 다른 메뉴 두 가지씩 판매를 하면서 팝업 레스토랑을 한 거죠. 팝업 레스토랑을 하면서 무솁도 점차 요리사로서의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되고 그러면서 요리사라는 호칭에 대해서도 많이 자연스러워졌고요. 그렇게 시작해서 협동조합까지 오게 된 거예요. 음식이 자연스럽게 사람을 이어주고 관계를 만들어준다는 생각에 다 같이 한번 해보자고 의기투합을 했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한 분은 음식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해왔던 분이고 한 분은 음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오셨던 분인데 그런 두 분이 만나 서 결국은 음식이 중심에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내신 거네요그러면 나머지 세 분은 나중에 합류를 하신 분들인가요.
초기에 조합원을 모집했죠. 한 친구는 팝업 식당 때 만났는데 만든 음식들 나눠 먹으면서 친해졌어요. 우리가 만든 직장에서 일하면서 미래를 함께하는 것에 동의해서 시작을 했던 거고요. 또 한 친구는 우리가 팝업 식당을 했던 그 가게를 운영했던 친구인데 서로 봐왔던 게 있으니까 신뢰가 있었어요. 그래서 가게를 정리하고 육지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합류하게 된 거죠. 마지막 한 친구는 사경에서 만나게 됐는데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해서 참여하게 됐고 그다음에 조합원이 되고 그런 과정을 거쳤죠. 각자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디테일은 좀 달랐지만 저희는 그걸 맞춰가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던 것 같아요.

각자 혼자가 아니라 연대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다섯 분들의 마음이 한 데 모였던 건데 현실은 그만큼 따라주지 않았던 것 같아서 아쉽네요.
저는 우리가 실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 같이 웃으면서 정리를 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게 아닐까 싶어요. 보통은 서로 지치거나 얼굴을 붉히거나 또 누군가는 관계가 어긋나거나 할 수 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다 같이 웃으며 함께한 것도 그렇고, ‘무조리실’을 만들고 해체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각자가 배운 것들이 있고. 그리고 서로에게 쌓인 신뢰와 약속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들에 있어서 한편으론 더 끈끈해진 거죠. 결국은 서로를 지지하면서 다 함께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실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 같이 웃으면서 정리를 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게 아닐까 싶어요. 무조리실을 만들고 해체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각자가 배운 것들이 있고. 그리고 서로에게 쌓인 신뢰와 약속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들에 있어서 한편으론 더 끈끈해진 거죠. 결국은 서로를 지지하면서 다 함께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경제와의 인연은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에는 저희가 식당도 해보고 케이터링도 하고 도시락도 해보고 여러 가지 해봤습니다. 그런데 각자 일하는 스타일이 다 다르고 선호하는 작업도 다 달랐죠. 그래도 우리한테 맞는 게 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다 했는데 매일 일이 너무 많고 효율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이 되지 않았어요. 장 보는 것부터 소스 만드는 일까지 직접 다 하고 재료들도 하나하나 다 찾아다니면서 개별적으로 사고 이렇게 하다 보니 외식업에서 아무런 지원 없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의 방식을 유지하려면 사회적기업이라는 형태가 맞겠다고 생각했고, 사회적기업으로서 우리의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가면서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을 찾자,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다섯 분이 협동조합을 통해서 무조리실이라는 식당을 성공 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공동체의 최종 목표였나요?
그건 아니었어요. ‘무조리실’ 운영과 함께 교육이나 문화기획 같은 분야로 점차 확장시켜나가고 싶었죠. 식당만으로는 그런 활동들을 해내기에 한계가 있으니까 우선적으로 경제적인 베이스를 안정적으로 갖추기 위해 식당에 매진하고 그다음 스텝으로 다른 활동들을 해나가려 한 거죠.

여성공동체로서 좀 더 다양한 일들을 하려 하신 거군요. ‘무조리실은 그런 활동들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그렇죠. 우리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하는 노동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그 다음 일들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무조리실에선 제주의 로컬 재료들을 주로 많이 쓰시고 그런 재료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아이템도 개발하시고 하셨잖아요.
처음에 그런 고민들이 있었어요. 회의를 하면서 우리가 누구를 위해 식당을 하는 건지 생각해봤어요. 물론 그 대상이 관광객이 될 수도 있는 거지만 우리는 그냥 일반 도민부터 누구에게나 필요한 그런 음식으로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제주의 식재료에 대해서 공부를 했죠. 사실 제주의 특산물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전복이나 갈치, 흑돼지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물론 그런 재료들을 선택하면 브랜딩하기는 좋죠. 하지만 저희가 느끼기에 가장 제주다운 식재료는 사계절 내내 나오는 신선한 재료였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제주에서 남는 것들을 더 소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보자, 여기서 제철에 나오는 재료들을 쓰자 라고 생각했죠. 타겟도 관광객 위주가 아니라 남녀노소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걸로 만들어 보자 해서 돈가스를 하게 된 거고 기름진 음식과 육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우리는 진짜 깨끗한 재료, 좋은 재료를 써서 건강한 육식을 만들어보자고 한 거죠. 또 채식은 맛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맛있는 채식도 만들고 하면서 채식을 찾는 손님의 비율이 많이 늘기도 했고요.

그동안 다뤄왔던 로컬 재료들 중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재료가 있었나요?
아, 저희가 콩국수 할 때 제주푸른콩을 썼는데 그 콩을 구하러 다니는 것이 좀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장터마다 가서 그 콩을 따로 사왔는데 장터에 영수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증빙이 안 되니까 나중에는 좀 더 큰 데서 받고 그 다음에는 농부를 찾기 시작했고 이런 노력들을 계속했죠.

맞아요푸른콩은 이제 점점 더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죠기업을 통해서 계약재배를 하는 몇 군데를 제외하면 이제 푸른콩 농사를 하시는 분들이 거의 안 계시니까요사실 푸른콩은 서귀포그 중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던 토종콩이라 제주시 분들은 그 콩의 존재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그런데 하필 그 푸른콩을 눈여겨보셨군요어쨌든 푸른콩 수급이 계속 안정적으로 가능했었나요?
아니죠. 계속 어려웠죠. 그냥 누군가 한 명이 오일장 같은 데를 돌아다니면서 사와야 하고 콩의 상태도 일정한지 봐야 하고 하니까 저희가 음식을 참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서 판다는 생각을 하곤 했죠. 그래도 계속 하다 보니까 농부님과 계약할 기회도 생기고 했지만 때로는 완전 흉년일 때도 있고 하니 매번 긴장이 되는 거예요. 아무튼 그러다 보니까 콩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고 그랬죠. 저희가 관덕로에서 한 번씩 소셜 다이닝을 진행했었는데 그때는 비건 메뉴 등 평소에 만들지 않는 다양한 음식들을 내놓곤 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다룬 게 콩 종류 였어요. 그런 것들이 좀 많이 기억나죠.

그밖에도 무조리실을 운영하면서 대표님에게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인간관계요. 다섯 명이 어떻게 마음을 맞춰서 이렇게 공동으로 운영을 할 수 있냐 이런 얘기를 진짜 많이 들었어요. 그때마다 했던 말이 그냥 맞추는 거라고. 하지만 서로가 배려하면서 맞춰가는 일이 정말 생각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더라고요 양보하는 것도 한두 번이고 서로가 이렇게 양보를 하더라도 받아들여야 되는 지점들이 있는 거예요. 겨루면 안 되니까. 그런 것들이 저도 몸을 바꾸는 과정에서 좀 힘들었죠. 한 번의 신뢰와 결속도가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니라 계속 노력하면서 같이 가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렇죠매일매일 물을 줘야 식물이 자라듯이 관계도 마찬가지죠.
협동조합은 조합원 전원이 동의해야 뭐든 결정할 수 있는데 저희는 그 말에 정말 충실하게 따랐어요. 계속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그걸 지켰어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희생도 있었겠죠.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도 있고 그걸 먼저 보여주는 사람도 있고 또 그걸 버티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거든요. 어떤 상황들이 늘 한꺼번에 오지 않고 번갈아가면서 오니까요. 업무량도 정말 똑같이 나눠서 하자고 해도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건데 그랬을 때 누군가는 일을 좀 더 많이 하면서 다음 사람이 일할 때까지 또 끌고 오고 그런 것들이 돌아가면서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를 결정하고 선택할 때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같이 선택하고 같이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죠.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었지만 인간관계 때문에 또 해낼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후회되는 점은 없으세요?
이어지는 얘기인데요, 실은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선택했던 것에 대해서 많이 후회를 했어요. 다른 형태였으면 우리가 좀 더 괜찮지 않았을까 싶고. 사실 모든 사람이 다 수평적 조직을 원하는 건 아니거든요. 성향상 주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따라가기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고요. 그런 사람들한테 주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 있는 거죠. 더구나 주방 일의 경우도 실력의 차이든 경험 차이든 그런 차이들이 분명히 존재하면서 상하 구조가 되는 게 일이 훨씬 안전하게 잘 돌아가고 효율적일 수 있거든요. 처음에 케이터링도 하고 도시락도 하고 여러 가지를 다 했을 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해서 한 달 동안 문 닫고 토론하고 회의만 했어요.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지 못하면 하지 말자 그랬었죠. 그런 시간들을 1년, 2년 동안 쓴 게 아깝다는 생각은 하죠.

그런데 처음에 왜 협동조합으로 출발을 하신 거죠?
여성공동체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서 지원을 했는데 협동조합을 설립해야 가능하다고 해서 하게 된 거였어요. 그게 뭔지 자세하게 잘 모르고 시작을 했던 거죠.

대표직을 무솁에게 넘기신 것도 그런 어려움 때문이었을까요?
대표가 바뀐 게 한 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제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죠. 한 3년 동안 너무 매진을 해서 지쳤던 것 같아요. 너무 그렇게 노력을 많이 한 게 한편으론 제가 힘을 뺄 줄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고 당시 몸도 많이 아팠고요. 작년 겨울에 일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다행히 같이 있을 때 쓰러져서 바로 그날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그때 다들 좀 충격을 받았죠. 그 경험이 이제 더는 몸을 혹사하면서 하지 말자는 생각들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했어요.

제주로 오시기 전에는 서울에서 예술가로 활동을 하셨는데 원래 건 강이 좀 안좋은 편이셨나요?
네, 미술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설치랑 개념 쪽 작업을 해왔는데 내가 작가로 살기 때문에 이렇게 일상이 무너져 있나 싶을 정도로 좀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었고요. 그래서 제주도에 와서 좀 일반적인 일상에 대해서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여기 와서 느낀 게 가까운 인간관계들이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생기고 좀 다른 경험들을 하게 된 거죠. 작업 자체에 대한 어떤 욕심보다 사람들 속에서 같이 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좀 다시 보게 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제주에 내려와서 무솁과 같이 살면서 10kg 가까이 살도 찌고 건강해지고 회복도 많이 되었어요. 제가 정말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제주에 와서 알게 되었죠. 그래서 협동조합하면서 그런 부분도 훈련을 좀 하고 이제 한번 잘 해봐야겠다 했었는데 저에 대한 소문은 좀 거칠게 나 있더라고요. 하하. 비즈니스 세계에도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존재하다 보니 아무래도 부딪히는 지점들이 생겨났던 것 같아요.

어떤 내용인지 조금 소개해 주시겠어요?
예를 들어서 사업 규모가 작거나 혼자 운영을 하더라도 그 역시 사업이고 거기에는 다 인생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그건 이미 비즈니스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는 사회로 나오셔야죠’ 하는 식의 얘기를 들으니 너무 이상했어요. 나는 이미 사회인이고 활동도 하고 있는데 어디로 나오라는 거지? 싶었죠. 또 여성들이 모여서 음식사업을 한다고 하니까 우리가 제안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취약계층을 위해서 반찬을 만들어 주라고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이게 만약에 5, 60대 남성들이 만든 사업체라도 이렇게 했을까 싶은 거죠. 거기다 한식기반 사업은 또 전반적으로 대우가 낮은데 여성의 노동을 너무 싼 값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메뉴의 가격대도 거기에 쏟는 노력과 정성에 비해 너무 낮게 인식되고요. 우리가 국수를 아무리 정성껏 만들어도 스파게티처럼 1만 원 이상의 가격이 책정되기 어렵죠. 한식 기반의 경우는 그게 다 ‘어머니의 정성’ 같은 말로 포장돼서 당연히 이렇게 해야 된다는 인식들이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다 요리사라기보다는 요리 노동을 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목소리를 좀 많이 내고 하다 보니까 거칠다는 평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아무래도 제주도가 서울에 비해서는 훨씬 더 보수적인 면이 많이 남아 있고 여전히 유리천장이 견고하고 그런 상황이니까요하지만 제주도도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다고 느껴지긴 하거든요아마도 대표님 같은 분들이 그렇게 목소리를 내주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한편으론 예술가로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신문 작업을 해왔는데 그것도 2등, 3등 시민인 여성으로서 세계를 바라보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여성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항상 감성적이거나 감정적인 그런 스토리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작업을 해왔는데 제주도에 내려와서는 개인적인 작업보다는 다양한 분들과 같이 네트워킹하고 기획하는 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사람이나 관계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니까 관계들 속에서 시각이 많이 확장되긴 했죠. ‘ 무조리실’의 경우도 정리를 하면서 실패한 건 아니라고 느꼈던 것도 결국 관계라는 측면 때문이었는데 원하는 만큼 돈을 안 벌어도 그냥 이렇게 다 같이 할 수도 있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우리가 비즈니스를 효율적으로 했다고 해서 다 같이 남아 있었을까 싶고.

그러니까 효율성을 얻지는 못했어도 어떻게 보면 공동체로서의 연대감 같은 건 더 공고해지신 건데 효율성을 앞세웠다면 자칫 그 연대감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거죠.
맞아요. 작년에 몸이 아팠을 때도 주변의 친구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이게 가족 같은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가까이서 잘 살고 있으면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거구나.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

어쨌든 처음에 부엌을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한 여성공동체를 꿈꾸셨는데 무조리실’ 밖에서도 그 여성공동체는 여전히 진행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조리실’ 시즌 2를 기다리는 팬들도 계실 것 같고요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역량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2016년에 설립한  무조리실협동조합 은 요리를 통해 자연과 사람, 지역이 상생하는 식생활 문화, 경제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협동식당, 도시락형케이터링, 워크샵, 프로젝트 등을 통해 우리 삶을 지탱해준 음식과 사람을 만나려 합니다.

* 무조리실은 2022년 2월 3일 부로 영업 종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