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공간을 건강하고 자연적으로 바꾸는

[더 스토리 No.5] 예술과 사업 사이 그 어디쯤

페인트닥터

 
이주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제주도로 오시게 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 예술작업, 문화예술 기획과 교육 일을 했어요. 제 인생의 프로필을 돌아보니 거기에 할애한 시간이 가장 많더군요. 그러다 점차 시스템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한편으로는 직업적으로도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열심히 일하는데 마치 제 살 깎아먹기 하듯 경제적인 어려움이 계속되니까 ‘가치 있다고 믿었던 일을 하는 것이 왜 나를 궁핍하게 만드는 걸까’ 이런 의문이 떠나지 않았고 방황을 했죠. 그리고 다시없을 사람을 만나서 결혼이라는 걸 했는데 그 뒤에도 고민은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그러다 텔레비전에서 제주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해녀분이 ‘저승으로 물질하러 간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나왔어요. 굉장히 짧은 장면이었는데 그 문학적이면서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세계에 속한 것 같은 표현 앞에서 순간 멍해졌죠. 갑자기 너무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제주 다큐멘터리를 다 모아서 그걸 계속 그렸어요. 물속에서의 해녀 모습, 밖에서의 해녀 모습 등을요. 나중에는 그림책으로 만들 생각을 했는데, 다큐멘터리만 보고 이야기를 완성하기엔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림 그리러 저 혼자 제주도에 와서 6개월 정도 있었고 이후 남편도 같이 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업가로 살고 계시잖아요어떻게 페인트닥터를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제주에 내려와서 문화 공간을 하나 열었어요. 탐라표류기라는. 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지역의 유휴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프로그램들을 진행했었죠. ‘신석기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으로 용접이나 직조 등 적정기술에 관한 프로그램을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한번은 생태 미장 워크숍을 하게 되었어요. 소개를 받아 강사님을 모셨는데 한옥을 짓는 도편수이시고, 독일에서 천연 미장을 배워 오신 분이었어요. 그게 인연이 되어 짐을 싸들고 가서 그분을 스승님으로 모시며 본격적으로 천연 미장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수업을 했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챙겨주시는 밥을 먹고 그분 작업실에 가서 계속 실험을 하는 거예요. 밤이 될 때까지 그러고 돌아오는 게 제 일과였어요. 한동안 그러고 나니까 어느 순간 기술을 터득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만나게 된 게 우유단백질을 바인더로 삼는 유럽식 천연 석회미장이었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고급 기술이라고 일컫는 모로코 타데라트, 베네치아의 마모리노, 로마의 스투코 이렇게 세 가지 기술들을 다 터득하게 되었죠.

대표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천연 미장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스승님께 기술을 배우면 배울수록 더 빠져들었어요. 특히 유럽 천연 석회미장의 고급 기술들을 터득하고 나자 그걸로 펼칠 수 있는 조형미가 너무 좋았어요. 한편으로는 벽을 계속 만지고 있으면 그 자체로 마음이 정화돼요. 면벽수행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걸 느끼게 된 순간 이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하지만 자료가 너무 없다 보니 영어나 독일어로 된 외국 자료들을 사전과 번역기를 동원해 공부해 나갔죠. 그러면서 미장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선사시대 인류가 동굴에 손으로 그렸던 그림,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리고 생태적인 재료와 건축마감에 눈을 떴어요.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사업체를 계획하신 건 아니었네요.
처음엔 독립 기술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스승님 따라 전국을 다니며 시공했고, 미장 일 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나는 기술자로 살 거야.’ 그랬거든요. 그런데 점차 주거 공간에 사용되는 물질들이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지는지, 우리가 생각 없이 써 온 것들이 우리에게 그리고 자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게 되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배우면 배울수록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인트닥터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대한 이야기도 좀 듣고 싶어요.
제 주위에는 다 예술가들뿐이라 주변에 사업을 잘 알 만한 사람이 1도 없었어요. 그래서 방법을 찾아 기업육성사업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제가 기웃거릴 때는 이미 공모 시기도 지나고 한 군데가 추가 접수 중이었는데 그마저 거의 확정 상태라 지원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말이 들렸어요. 그래도 무조건 서류 접수를 했어요. 내가 시도하려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그들의 의견을 너무 듣고 싶었거든요. 서류를 통과하고 2차 프리젠테이션 때 심사위원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 몽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적 가치가 있다는 걸 확인받는 자리였어요. 그다음에는 소셜벤처 아이디어 경연대회가 있다기에 이 사업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겠다 싶었죠. 지역예선을 거쳐서 서울로 갔어요.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우수상을 받았고, 다시 도전해서 육성 사업 8기로 출발을 했죠.

워낙 특수한 기술이다 보니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과정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처음엔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아직은 친환경과 천연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건 저 혼자도 즐겁게 할 수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직접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곳을 그런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독일에 굉장히 전통적인 방법을 고집하는 회사가 있어요. 문화재 복원사업에도 쓰이는. 그 제품들이 저의 교과서였어요. 석회류의 하얀 토양과 암석은 대부분 백악기에 형성되었어요. 석회석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다시 흡수하는 순환 사이클을 갖고 있는 중요한 물질이지요. 그 회사의 큰 고객이 일본이에요. 일본은 천연자재가 전체 건축시장의 30퍼센트를 이루거든요. 독일이나 유럽은 60퍼센트에 달한다고 해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일반 페인트 시장에서 친환경 페인트가 재빨리 자리를 잡았어요. 소비자들 사이에 당시 저가의 페인트 대비 냄새도 저감되고 색감도 다양한 친환경 수입 페인트를 써야 한다는 인식이 확 퍼진 거죠. 대부분 그게 아크릴인 줄 모르고 아크릴이 좋은 건 줄 알고요. 오히려 100% 아크릴 바인더를 사용한다고 광고하는 제품까지 있어요. 이건 ‘난 플라스틱입니다’라고 광고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아이러니죠.

 
그러게요. ‘친환경이라는 말이 안 친환경보다는 물론 좋은 얘기지만 오히려 타협하게 하는 혹은 너무 안심하게 만드는 위험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저도 몰랐을 때는 집에 그런 제품을 열심히 발랐어요. 사람들은 천연이 좋은 건 알겠는데 가격의 문턱이 높고 어렵다고 얘기해요. 실제론 소량씩 나눠서 비싼 값에 판매하는 수입 친환경 페인트보다 결과적으로 더 저렴한데 소비자들은 그걸 잘 모르죠. 게다가 천연 제품은 하부표면이 어떤 성질인지, 어떤 상태인지도 봐야 하고 붓의 결이 남아요. 깔끔하게 구현하려는 사람들 눈에는 부족해 보이지요. 저는 생각을 바꿔보라고 말해요. 지나간 자리가 남는 거, 이게 이 페인트의 매력이라고요. 그걸 가지고 자유롭게 놀아보라고요. ‘다루기 어렵다’는 천연자재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저희는 이야기라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미장재 대신 페인트로 바뀌게 된 아이디어도 그래서 나오게 되었죠. 저희는 천연 페인트가 인간과 환경에 얼마나 중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사업화한 거라고 생각해요.

미장재에서 천연 페인트로 콘셉트를 바꾸게 된 건 어쨌든 소비자들 에게 좀더 친근하고 쉽게 다가가기 위한 방편이었던 거네요.
사실 도료가 미세 플라스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퍼센트 정도예요.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섬유산업 관련 미세플라스틱이고 그 다음은 생활 쓰레기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이죠. 물론 양으로 비교하면 도료 관련 미세플라스틱의 영향력이 적어 보일 수도 있지만 심각한 문제는 바다 표면층에 부유한다는 점입니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고 나서 그걸 바다에 다 쏟아버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미세 미세플라스틱 입자를 바다에 버리는 건데 이게 어마어마한 일인 거죠. 해양의 표면층은 플랑크톤과 같이 지구 생명의 근간이 되는 미세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곳이죠. 그러니 생태계의 기저를 이루는 곳에 작용하는 플라스틱인 거예요. 이게 페인트를 개인의 건강 이슈로만 생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이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체 인생에서 80퍼센트가 넘는다고 해요. 실내 공간에 쓰인 재료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 거죠. 자연과 인간의 삶은 너무나 붙어 있어 별도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체험 상품도 만들었어요.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이지만 친근하게 다가가 얘기 나눌 수 있도록 그림 그리기 체험으로 만든 거죠.

그리기 체험은 정기적으로 하나요?
정기적으로 운영하다가 코로나 영향으로 좀 멈추었는데 최근 다시 재개되어 지금은 화, 목요일에 예약제로 운영해요. 천연 페인트 중에 공기 정화 기능이 있는 페인트와 미네랄 안료 다섯 가지로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에요. 도안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사람들이 페인트로 그림 그린다는 사실 자체도 잊고 빠져들어요. 법칙이 없는 그림 그리기죠. 그저 재료를 알려드리면서 이걸 가지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하시라고 권유해요. 법칙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에요. 거짓말하지 않기, 척하지 않기, 비교하지 않기. 마음을 그리는 거니까 이것만 안 하시면 된다고 알려드려요. 무엇을 그리게 되던 어차피 마음 안에 있던 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거니까요. 간혹 부모님들께서 아이의 그림을 통제하실 때도 있는데 안심하고 지켜보실 수 있도록 안내해요. 아이의 그림 안에 이 아이가 다 있고 아주 충분히 멋지니까요. 처음엔 우리가 뭔가 가르쳐줄 거라고 기대하고 오시지만 저희가 딱히 가르쳐드리는 건 없어요. 그냥 가끔 말을 걸고 좋은 마음을 드려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그리다 보면 너무나 다양하고 멋진 그림들이 나와요. 6명 이하의 소그룹으로만 운영하는데 그림 하나 그리는 데 두 시간 이상 걸리거든요. 수익을 생각하면 도안을 그리게 하면서 체험 자체를 사업화하면 되겠지만 저희는 그냥 지금의 방식이 좋아요. 마음 그리기 키트는 제주에 직접 와서 체험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요청이 계속되어서 만들었어요.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생태예술을 지원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우리는 원래 자연의 일부라고,
당신은 원래 예술가로 태어났다고 말해주고 싶거든요.
이 지점과 우리의 사업이 어떻게 하면 사이좋게 함께 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지원 사업에만 의존하지 말고 어느 정도 수익을 만들어내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걸 계속 해볼 수 있으니까요.”


대표님의 문화예술 베이스가 페인트닥터만의 독특한 접근을 만들어내신 것 같아요이런 프로그램들은 교육이라는 어떤 틀 안에서 이뤄지게 마련이고 더구나 사업가라면 천연 페인트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체험을 기획했을 텐데 대표님은 자기 마음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그걸 기쁘게 바라보며 만족하시니까요.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생태예술을 지원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우리는 원래 자연의 일부라고, 당신은 원래 예술가로 태어났다고 말해주고 싶거든요. 이 지점과 우리의 사업이 어떻게 하면 사이좋게 함께 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지원 사업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속가능한 수익을 만들어내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걸 계속 해볼 수 있으니까요.

서울에서는 사업가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삶을 사셨는데요그 정체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그때 예술가로서의 삶은 어땠나요.
막연히 예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예술을 배우고, 하는 동안 늘 예술이 무엇인가가 저의 화두였어요. 내가 하고픈 예술은 무엇인가. 무엇이 예술의 순기능일까. 화이트 큐브 안에서 숭배받는 귀하고 값비싼 것들이 예술의 모든 것일까. 그런 질문들을 되게 어렸을 때 했던 것 같고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여러 곳에 몸담았어요. 이주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의 민간예술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커뮤니티 아트가 뭔지 공공미술이 뭔지를 현장에서 직접 맞닥뜨리고 경험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늘 다른 사람들이 문제 삼지 않는 것들에서 무언가 모순으로 느껴지는 지점들과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늘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단체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생긴다거나 일의 가치가 아니라 지원되는 예산의 크기에 따라 프로젝트의 중요도나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것에 대한 반발심 같은 것들 때문에 방황을 했죠. 결국 나라는 사람은 모두가 당연시하는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밖에 되지 않는 걸까라는 회의가 느껴졌을 때 제가 떠나는 게 맞겠다 싶었어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장 재생사업에 참여하거나, 작은 지역축제를 만들거나, 여러 분야에서 일했어요. 작은 도서관이나 대안학교 같은 곳에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경험도 쌓을 수 있었고요. 하지만 교육자가 교육을, 예술가가 작업을 생계로만 생각하는 순간 이게 완전히 거지같이 되는구나, 이게 예술가들을 망치는 지름길이구나. 이런 생각들도 했었죠.

여느 사람들과 달리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상함을 감지해내는 것은 그저 어떤 한순간에 막 생겨난 건 아닐 것 같아요지나온 삶 속에 그런 것들을 감각하고 감지해낼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요인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어린 유라는 어떤 아이였는지 문득 궁금하네요.
저는 사람들이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것들에 늘 ‘왜 원래 그래?’라고 질문하는 편이었어요. 남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저한테는 너무나 안 당연해서 늘 궁금했어요. 그리고 저는 좀 느린 아이였죠. 주변의 변화에도 반응이 느린 편이었고요. 다만 늘 뭔가 조물락거리는걸 좋아했던 아이였어요. 어머니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계셨는데 당시만 해도 ‘그런 병명들이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감지도, 대처도 제대로 하지 못했죠. 잠든 어머니에게 방해가 될까봐 남동생과 둘이 집에서도 항상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다녀야 했고요, 동생과 놀이를 해도 소리를 제대로 못 내고 속삭이며 놀곤 했어요. 어머니와는 스킨십은 물론이고 대화 자체도 별로 해본 적이 없었고 아버지는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감정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걸 제대로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지요. 그러니 관찰하고 하나씩 더듬더듬 배워나가야 했어요.

 
혹시 여느 아이들과는 좀 다른 환경에서 자랐던엄마를 배려하느라 늘 집안에서 까치발로 걸어야만 했던 그때의 유라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 없으세요?
너는 참 예쁘다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는 충분히 괜찮은 아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이런 질문 해주셔서 감사해요.

아까 서두에 다시없을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하셨는데 그분과의 결혼생활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정서적으로 보면 저는 애정 결핍인데 남편은 너무나 애정이 충만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서로 좀 나눠 가졌죠. 남편은 저와는 다르게 너무나 화목하고 사랑이 많은 가정에서 자랐어요. 처음에 결혼을 앞두고 저는 그냥 엄청 신났었거든요. 시부모님을 뵈면서 와, 나 사랑받고 싶어. 이 가정 안에서 스며들고 싶어. 그런 마음으로 가득했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어요. 서로 너무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왔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부모님께서도 며느리라는 존재가 처음 생겨서 어쩔 줄 몰라 하셨던 건데 저는 제 의견이나 생각은 안 물어봐주시고 당신들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걸 왜 자꾸 강요하시는 걸까 싶었죠.

과거형으로 얘기하시는 걸 보니 지금은 좋아지신 거군요?
처음엔 남편한테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끊임없이 요청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남편도 사실 노력하지 않는 게 아닌데 이젠 내가 직접 돌파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시부모님께 요청을 드렸어요. 아버님 어머님, 집에서는 안 되겠어요. 우리 카페로 가요.

하하하두 분이 너무 놀라셨을 것 같은데요?
그렇잖아요, 집에서 어른들 앞에서 얘기하면 무릎을 꿇는 자세가 되고 게다가 자꾸 왔다 갔다 음식을 해야 되고 뭐 얘기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카페로 모셔야겠다고 하니까 두 분도 오셨어요. 얼떨떨하셔서. 그렇게 다섯 시간을 카페에서 얘기를 했는데 제가 그랬어요. 어머님 아버님, 저는 며느리이기 이전에 유라예요. 저는 어머님을 어머님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박OO라는 사람이 궁금하고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예요. 아버님 저는 임OO라는 사람을 좋아해요. 아버님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고요. 나중에 남편한테 전해 들었는데 시부모님이 쟤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셨다가 또 뭔지 알 것 같기도 하다고 하시더래요. 그래서 조금은 성공했다고 생각했죠.

어떻게 보면 대표님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네요제대로 성공하신 것 같은데요어쨌든 어린 시절의 유라에서부터 지금의 최유라 대표가 있기까지 굉장히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넘기 힘든 산도 있고 그랬는데 그럼에도 여기까지 잘 이끌어오셨네요.
사람마다 타고난 모양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되게 허술한 사람이에요. 그러면서 고집도 세고요. 예민하고, 음울한 면도 많아요. 제 짝꿍에게 정말 고마운 건 밑바닥까지 다 알면서도 저를 정말 좋아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우스갯소리로 종종 ‘유라 남편’이 가장 극한 직업이라고 하는데 맞는 것 같아요. 마음이 향하는 지점을 따라 그 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건 그에게는 참 어려운 작업이었을 거예요.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도 그게 즐겁다고 하는 사람이라 참 고맙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예술과 사업 사이에서 밸런스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회사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부분이 중요하니까 그걸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계속 해야죠.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만 이기보다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제품을 전달할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조금씩 인지도가 생기니까 미팅이나 시공상담 요청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생소한 일을 해서 그런지 그냥 저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찾아오는 분들도 좀 계시고요. 그런 만남들이 신뢰로 이어지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표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페인트닥터는 정말 사업 이야기와 사람 이야기가 서로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긴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저에게도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감사합니다. ✽

 


 


지구에게 이로운 일이 곧 사람에게도 이로운 일이라 믿습니다. 흙과 볏짚, 석회와 같은 자연 재료로 건축물의 벽과 담을 채우고 칠하는 일을 해오다,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페인트와 물감의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페인트닥터 는 “사람을 포함한 지구생명체 모두가 더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천연페인트 전문회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