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자연을 담은

[더 스토리 No.3] 바느질로 위로를 건네는 치유의 케렌시아

데일리스티치협동조합


우선 데일리 스티치의 시작을 좀 알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8년 동안 남성복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제주도 출신인 남편 이 제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남편을 따라 이곳에 오게 됐어요. 제가 일을 굉장히 좋아했었기 때문에 오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당시 갓 태어난 애기가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하지만 경력단절이 된 상태로 그냥 애기만 돌보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마침 문화센터에 아동복 강사 자리가 나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1년 반 정도 일을 하다가 집 근처에 공방 자리가 나서 재봉틀을 들여놓고 공방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공방을 찾는 수강생들이 대부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여성분들인 거예요. 저처럼 경력이 단절된 상태로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었죠. ‘이거 배우면 취직할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이분들하고 같이 뭔가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공방을 시작하고 4년만의 일이었죠.

그러니까 공방 수강생들과 함께 시작한 사업이군요.
네. 저 역시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때마침 제주도라는 좋은 콘텐츠가 있으니 이걸 패션디자인에 녹여내서 브랜드를 만들고 이분들하고 같이 제작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사업 아이템이 구체화되니까 경력단절 여성들이 함께하는 사업체라면 사회적기업으로 방향을 잡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은 후 인화로여성센터에서 여성공동체 창업 인큐베이팅을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2019년 10월에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2020년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이 되었고요. 또 올해 여성가족부 예비사회적기업이 되어서 지금 열심히 꾸려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과정이 굉장히 쉽게순탄하게 진행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제가 원래 이렇게 사회적기업을 계획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계속 연결이 되고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생겼고. 행운이었죠.

통상적으로 경력 단절 여성들이 다 대표님처럼 이렇게 추진력 있게 사업을 시작하고 목표를 정해서 이끌어가고 할 수 있는 건 아닌데어떻게 보면 대표님이 제주도에 오셔서 주변의 경력 단절 여성분들한테 길잡이 역할을 하셨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저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분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싶다는 말을 제가 많이 하는데 먼저 경험했기 때문에 알려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 거죠. 지금도 저희 수강생들 중에 삼십대 초반의, 딱 제 가 고민하던 그때 나이의 분들이 어떻게 하면 공방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너무 막 가르쳐주고 싶은 거예요. 그런 분들에게 공방의 노하우를 오픈하고 컨설팅 해주는 일이 앞으로 공방이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서울에서 활발하게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다가 제주로 내려오신 이후 환경도 낯설고 가정주부로서의 삶도 낯설고 상실감이 컸을 것 같아요.
처음 왔을 땐 정실에 집을 얻었는데 그때는 운전도 못할 때니 정말 우유 하나를 사러 나가려 해도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하는 그런 곳이었어요.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그러다 아이가 막 돌이 될 무렵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이 공간을 열었죠. 그때는 수업을 많이 했을 때라서 낮에는 창작 활동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밤에 아기 재우고 나서 10시 정도가 되면 공방에 나와서 작업을 하곤 했어요. 라디오를 틀어놓고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금방 가니까 새벽 한두 시를 훌쩍 넘길 때도 많았죠. 그러면 밤늦게 다닌다고 남편이 막 싫은 소리도 하고 그랬지만 그래도 애를 딱 재워놓고 집을 나설 때 그 순간이 제겐 케렌시아(*투우장의 소가 쉬는 곳. 피난처, 안식처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였어요. 공방에 빨리 가고 싶어서 막 뛰어 가곤 했죠. 밤늦도록 제가 만들고 싶은 것들을 완성하고 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시간이 부족하면 재봉틀을 집에 들고 가서 또 작업을 하고. 그땐 정말 힘든 줄도 몰랐죠.



 

"밤에 아기 재우고 나서 10시 정도에 공방에 나와서 라디오 틀어놓고 작업을 하다 보면
새벽 한두 시를 훌쩍 넘길 때도 많았죠. 애를 딱 재워놓고 집을 나설 때 그 순간이 제겐 케렌시아였어요.”




그 케렌시아의 시간이 지금의 데일리스티치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겠다 짐작이 갑니다.
맞아요. 그 시간이 저한텐 너무 필요한 시간이었던 거예요. 처음 공방을 열고 한 2년 정도는 수업만 주로 하다가 한번은 함덕에 있는 플리마켓에 나가게 되었어요. 첫날은 3시간 동안 겨우 파우치 하나를 팔고 돌아왔는데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한 번 더 가보자 그러고 다음날 또 갔죠. 근데 그 날은 3시간 동안 30만 원 넘게 판매가 됐어요. 많이 판 건 거죠. 그렇게 자신감이 붙으니까 계속 나가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갈 때마다 30~40만 원씩 계속 팔리는 거예요, 우리 옷이. 그러다가 명절 전에는 3시간 만에 80만 원을 판 적도 있어요. 이런 옷을 만들어 가서요. ‘우리 옷이 만드니까 팔린다.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게 제품 제작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 계기가 됐죠. 그때 저를 도와 플리마켓에 함께 나갔던 사람이 현재 데일리스티치의 이성은 이사님이라고 공방 오픈할 때부터 늘 저를 도와주시던 언니였어요. 지금도 일하다가 펑크가 나면 와서 자기가 해결해주고 누가 아기 아파서 못 오면 그 시간에 자기가 와서 두 배로 해주고 그러는 분이에요.

말 나온 김에 함께하시는 분들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저희가 협동조합이잖아요. 처음 시작할 때 협동조합이라는 조직형태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주변에서 협동조합은 2, 3년 안에 끝난다는 식의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희 조합원들은 다들 이 일이 좋아서 시작했고 사업 이전부터 공방의 수강생으로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면서 서로 굉장히 친해진 분들이라서 그냥 전폭적으로 저를 지지해주세요. 제가 무언가 제안을 하면 무조건 좋아해주시고 함께 으샤으샤 하다 보니 사람 때문에 힘들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어요.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대표님을 지지해주시는 조합원들은 어떤 분들이실까요?
제가 문화센터 강의를 하러 다닐 때 홈패션 강사를 하시던 선생님이랑 의기투합을 했던 게 첫 시작이었고, 두 분은 저희 아파트 주민이기도 하면서 공방에 수업을 받으러 오셨던 분들인데 아이들도 다 친하고 하니 자연스럽게 더 가까워졌어요. 그분들은 함께 사업을 하기 전부터 공방에서 핸드메이드 페어나 플리마켓 같은 데 나갈 때도 혼자 못 하니까 항상 도와주셨는데 제가 이런 사업을 하려고 한다고 하니 기꺼이 함께하겠다고 해주셨죠. 그 중 한분이 앞에서 말한 이성은 이사님이고요. 나머지 한 명은 제 대학 동기인데 당시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패션디자이너였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원단 같은 것들도 소싱을 해주고 필요한 역할을 맡아서 해보자 해서 그렇게 5명이 시작을 했지요. 지금은 조합원들 외에도 함께 일하는 분들이 더 늘어났습니다. 공방에서 직원으로 근무하시는 분도 있고 외주로 집에 가져가서 일해주시는 분도 있고. 대흘에도 매장이 있는데 예전에 공방에서 보조강사로 있던 선생님이 아기 낳고 또 오시게 되었고. 그렇게 다 결국은 공방에서 같이 배우고 하면서 함께했던 분들이 지금 다 같이 함께 일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 홍보 마케팅 쪽 일을 맡고 있는 새 직원이 한 명 더 있고요.

조합원들도 그렇고 여기 근무하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 경력 단절 여성들이었던 거네요.
그렇죠. 공방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하영 씨는 어찌 보면 우리의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어요. 원래 간호사로 일했던 분인데 간호사로 복귀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아기가 둘이다 보니 복귀가 어려웠죠. 그래서 공방일을 하기로 한 거고, 보조강사였던 선생님도 출산 이후 이제 아기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되어서 복귀를 하신 거고요.

대표님은 원래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셨나요?
어릴 때 엄마가 옷을 만들어주곤 하셨는데 당시에 엄마는 패턴이란걸 모르니까 달력 뒤에 이렇게 옷을 대고 그려서 만들어주시던 게 생각납니다. 엄마가 돌리던 재봉틀 소리, 그 재봉틀에서 나던 기름 냄새 같은 것들도 기억이 나고요. 그런 영향 때문이었는지 어릴 때부터 저도 옷을 좋아해서 막연히 패션디자이너를 꿈꾸었어요. 당연히 대학도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했죠. 졸업 후 골프의류 회사에 입사해서 줄곧 디자이너로 근무했습니다. 24살에 입사해서 31살까지 다녔어요. 제주로 내려오기 전까지요.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으셨어요?
당시 회사에서 제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템이 티셔츠였는데 아무래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보니 제가 디자인한 옷이 반응이 좋고 잘 팔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죠. 운이 좋았던 것은 티셔츠가 매출이 항상 좋은 아이템이라는 거였어요. 예를 들면 아우터 같은 경우는 매출이 쉽게 잘 안 나오는 아이템이라 질책도 받고 하지만 티셔츠는 늘 결과가 좋은 편이어서 칭찬도 많이 받고 능력을 인정받으니까 그래서 일도 더 재미있었고 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땐 어리기도 했으니까 그런 것에 더 의미를 두었던 거죠. 지금 같았으면 또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얘기로 미루어보면 어쩐지 행운이 항상 대표님 편이었던 것 같네요.
그러게요. 실은 이런 얘기를 하면 굴곡이 좀 있어야 뭔가 재미도 있고 드라마틱하고 그럴 텐데.(웃음)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지금껏 제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것에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일이라는 게 하다 보면 그래도 어려움이 있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 사이의 갈등 같은 게 아예 없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럼요. 실은 일 때문에 만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이 좋아서 같이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인데 이제는 우리도 기업으로서 성장을 해야 되는 단계이다 보니 고민이 많아진 게 사실이에요. 작년까지는 그저 좋아서 소소하게 함께 일하는 그런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성과도 내야 되고 월급을 줘야 하니 매출도 좀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런데 원가를 따져보면 함께하는 분들이 전문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아니다 보니 시간 대비해서 사실은 잘 만든다 해도 많은 양을 뽑아낼 수가 없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나갈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꼼꼼한 사람도 있고 자기만의 특별한 장기가 있는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 특성이 있고 장점도 다르고 하니 효율적인 배분을 위해 담당하는 일을 계속 바꿔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해보시니까 어느 정도는 길이 보이시던가요?
그 사람의 특성을 보고 그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주려고 노력하니 또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만든 상품이 잘 팔려나갔을 때 매출 면에서 큰 공헌을 한 거니까 그런 점도 좀 북돋아 줄 수 있고. 또 예를 들어 하영 씨가 비즈를 집에서 취미로 하는데 이걸 만들어서 우리 매장에서 팔아보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어요. 수수료 크게 안 받을 테니 한번 도전해보라고, 우리도 아이템이 많아야 매장이 돋보일 수도 있으니까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니냐고. 이런 제품을 본인이 기획하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 결국 자기 작품을 하는 창작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 기회를 계속 주는 게 서로에게 참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나는 단순히 바느질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작자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제작하고 여기에 주인 의식이 보태지면 결국 다 같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그들이 스스로 뭘 더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고 도전하게 만들어주는 게 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단순 기능직으로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분들이 창작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밑받침이 되어주고 이렇게 하시면 사실은 전체적으로 그만큼 이 안에 창작자들이 많아지는 거니까 굉장히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맞아요. 스스로 기획하고 만든 상품이 잘 팔려나가면 비록 하나에 5천 원짜리지만 행복해 하는 게 막 보이거든요. 그 행복감은 분명히 월급을 받고 느끼는 행복감 못지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기본적으로 손재주가 좋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니까 같이 으샤으샤 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까 이 공간에 들어오면서 무언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바느질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어떻게 보면 여성을 위로하는 어떤 치유력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요. 이곳 아파트에 육지에서 이주해 오신 분들이 많은데 적응을 잘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 중에는 공방에라도 나와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오신다는 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제게 수업을 들으려고 오시는 게 아니라 그냥 구석에서 말없이 3시간 동안 작업을 하고 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자기 집에 재봉틀이 있는데도요. 한 번도 이 일을 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금액이 크지는 않아도 수익을 내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갖게 되고 이런 과정이 어떻게 보면 사회적기업으로서 데일리스티치가 해야 할 역할이고 소명이 아닌가 싶어요.

굳이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사람의 온기가 이 안에서 느껴지고 그 안에 함께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그게 위로가 돼서 오시는 분들이네요그분들에게는 이 공방이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공간일 것 같습니다.
서울에 있는 공장에서 만들면 당연히 단가도 저렴하고 디자이너로 활동을 했으니까 누구보다 그런 루트도 잘 알고 있지만 저는 조금 느리더라도 이 공간이 필요해서 오시는 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앞에서 제주 콘텐츠를 패션 디자인에 녹여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건 어떤 의미인가요제주의 로컬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발굴해내고 상품 안에 적용하시는지도 좀 듣고 싶어요.
2018년에 ‘손길 프로젝트’라고 제주의 스타 상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 때 갈천으로 만든 아동복을 출품해서 선정이 되었고 ‘공예 트렌드페어’에 전시도 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제가 처음부터 염색을 했던 건 아니지만 갈천을 만지고 만드는 과정이 너무 매력이 있는 거예요. 이게 제주도의 대표적인 천연 염색법인데 처음에 염색을 하면 아무 색깔도 안 나지만 햇빛에 발색할수록 계속 진한 색이 나오고 이런 과정들을 보면서 ‘정말 자연이 주는 이런 인고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천연염색이 가치가 있는 거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갈천 제품이 실은 예쁜 게 잘 없고 기념품 가게에 가보면 다 내가 사고 싶지 않은 옷들뿐인 거예요. 그래서 이건 원단이 이렇게 좋고 가치도 있는데 디자인만 잘 해내면 젊은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러면 이걸로 우리가 로컬 브랜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갈천만으로는 색깔이 단조로우니 포인트를 넣어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고 동백이나 수국, 해녀 같은 소재를 저희만의 패턴으로 개발해서 자수도 넣어보고 원단 프린트도 해보고 하니 점점 구색도 맞아지면서 하나의 그룹핑이 되는 거예요. 제주의 자원을 디자인에 활용해서 티셔츠에 프린트 찍는 업체도 있고 그냥 단순하게 디자인에 이용하는 곳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여성복을 만드는 곳은 없으니까 의류업체로서 제주형 로컬 브랜드를 만들어보자 싶었죠. 단순히 관광 기념품이 아니라 육지 사람들이 좋아해서 인터넷으로 구매도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옷, 정말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그런 취지였죠.

그렇게 되려면 어쨌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공장도 필요하고 제조업으로서의 기본 인프라도 좀 갖추어야 될 것 같은데 이런 제품을 만드는 건 아주 큰 규모가 아니어도 가능한가요.
원단 자체에 천연 염색을 하는 건 제주에서 할 수 있지만 프린트나 자수는 육지에서 소싱을 좀 해야 되는 상황인 거고요. 하지만 일부는 소싱을 하더라도 일단은 천연 염색 포지션은 분명히 여
기서 다 소화를 해낼 거고 제작도 여기서 가능하도록 하려고 지금 훈련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게 제작팀의 인적 인프라들을 키워나갈 수 있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거죠.


제주의 로컬 자원을 디자인 소스로 발굴하고 디자인화하는 작업 역시 제품 제작 이상으로 중요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그냥 쉽게 떠오르는 게 동백이어서 동백으로 작업을 했어요. 동백은 자수를 하든 프린트를 하든 뭘 해도 예쁘잖아요. 그래서 동백 사진을 찍으려고 동백이 핀 곳들을 다 돌아다녀봤어요. 그 다음엔 또 제주 하면 수국이니까 수국 촬영도 하러 다녔고, 삼나무나 사려니 숲길도 패턴화된 제품들이 동백만큼 많지는 않아서 패턴화시킬 수 있을 것 같고요. 정말 제주만큼 이렇게 로컬 자원이 풍부하고 스토리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지역도 없지 않나 생각하면 우리가 제주에서 이 사업을 하는 것도 행운이구나 싶어요.

묻혀 있는 제주의 스토리를 발굴해내고 그것을 상품에 접목시켜보고 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단순히 기업으로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차원을 넘어서 제주의 문화를 발굴해내는 일이잖아요근데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동백이나 수국해녀 캐릭터 같은 것들이 너무 넘쳐나서 식상하기도 하고 그저 저가 관광품의 소재로만 전락해버린 안타까움도 있고요제주의 소중한 역사자원이나 문화자원들이 너무 헐값에 소비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맞아요. 그건 되게 중요한 문제 같아요. 제주의 기념품숍에 가보면 창작자는 다 다른데 상품은 거의 다 비슷하거나 똑같은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막 뿌려지는 제품은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을 저도 하고 있어요. 이번에 캐릭터 사업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백록담에 하얀 사슴의 전설이 있더라고요. 제주 캐릭터 하면 흑돼지나 말인데 오히려 이 하얀사슴 캐릭터를 우리 플라워 프린트랑 접목을 해서 굿즈를 만들어도 좋겠다 싶어서 지금 기획을 진행하고 있거든요. 근데 백록담에 하얀 사슴의 전설이 있다는 건 제주 출신인 저희 남편도 모르고 제주 도민들도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스토리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게 결국은 데일리스티치만의 강점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익히 알려진 제주의 어떤 피상적인 이미지만 계속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아무튼 경계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네. 더 많이 고민해보겠습니다. 무언가 가치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은 끊임 없이 계속되어 야 할 과제인 것 같아요.

데일리 스티치에서 함께하시는분들이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런 사업들을 진행해 오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형성이 되고 그러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잖아요그처럼 앞으로도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그런 가치들을 더 많이 발굴해서 살려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데일리스티치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고 지속가능할 수 있다면 저도 우리 구성원들과 함께 80살까지 바느질하는 할머니로 살고 싶습니다. *





 데일리스티치협동조합 은 제주의 자연을 모티브로 한 원단을 개발해 의상과 소품을 제작하는 로컬브랜드입니다. 동백, 수국, 돌담과 같이 제주를 대표하는 자연 이미지를 패브릭에 프린트하여 제품을 만들고 제주의 천연염색 감물원단으로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역의 경력단절여성에게 전문적인 양재교육을 제공하고 제작팀을 구성하여 제품 제작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