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닝? 생소한 말이다. 러닝은 알겠는데, 트레일은 왜 붙어 있는 거지? 여행을 시작하며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저질 체력에 아침부터 달리기를 한다니 낙오하지나 않을까, 이런 민폐가 없을 텐데, 그럼 난 좀 빠질까? 살살 요령 피울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대체 트레일러닝은 뭐지? 트레일러닝은 트레일(trail)과 러닝(running)의 합성어로 시골길, 오솔길, 산길을 달린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귀포자연휴양림은 최적의 장소인 듯하다.
버스에서 내리니 ‘액티브인제주’의 가빈과 루이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외국인 코치를 보며 호기심반, 긴장반의 눈빛이 반짝반짝 한다. “Hello!” 인사로 준비운동을 시작한다. 깊은 숨쉬기로 시작, 휴양림의 맑은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몸속으로 들어온다. 조금씩 온 몸을 풀어가며 달리기 자세까지 잡는다. 그동안 숨도 잘 쉴 줄 몰랐고, 달리기도 영 몰랐구나.
이제 달릴 준비를 마쳤다. 처음은 무장애 코스로 살짝 워밍업하고, 코스를 옮겨 조금 더 숲으로 들어간다. 뛸 사람은 루이스를 따라, 천천히 뛰거나 걸을 사람은 가빈을 따라간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물이다, 올챙이가 있다.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이거 재밌는데? 개구리 나올 때 또 오자고 한다.
“ 아침에 숲에서 달리기 한 게 제일 좋았어요! 달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니 좋더라고요, 아이들도 이런 걸 배울 기회가 없잖아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
눈뫼가름협동조합 홍반장(홍원석씨)의 말이다. 이번 여행에는 함께 집을 짓고 제주로 이주한 눈뫼가름협동조합에서 여러 가족이 참석했다. 별도로 신청한 여행자들이 불편해 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트레일러닝으로 단번에 모두 친구가 되었다.
두 그릇 뚝딱, 하효살롱
식사 후 쇠소깍으로 산책을 가는데 건하(초1, 참석자)가 하효살롱 쇼핑백에 과즐을 잔뜩 넣고 나온다. 버스에 두고 다녀도 된다고 했더니 굳이 이걸 가지고 다니겠다고 한다. 감귤과즐이 꽤 마음에 들었나보다.
“미역국이 정말 진하고 맛있었어요, 난 밥 두 그릇 먹었어요.” “육지에서 지인이 오면 추천할 식당이 마땅치 않았는데 여기를 알게 돼서 너무 좋아요!” “후식으로 나온 과즐이 너무 맛있어서 몇 개 샀어요.”
음식점 후기에 ‘맛있다’는 말 빼고 뭐 더 할 말이 있을까? 하효마을 부녀회(쇠소깍귤빛영농조합)에서 운영하는 하효살롱은 쇠소깍 근처라 여행자들이 들러 가기 좋다. 감귤을 넣은 쌈장, 감귤과즐, 하귤에이드 등 동네에서 나는 감귤을 이용해 달콤 상큼한 맛을 낸다. 여행자들이 늘 먹는 흑돼지나 회가 식상하다면 마을 엄마들이 만들어주는 한 상은 어떨까? 제주 음식을 깔끔한 상차림으로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피부가 좋아하는 천연향, 비누 만들기
이틀 새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다. 점심 후 버스에서 꿀잠을 잔 우리는 햇빛을 피해 곧바로 체험장(허브올레 카페)으로 들어갔다. 꽃마리협동조합 대표님이 빨강, 주황, 초록, 파랑……. 좋아하는 색깔별로 성격 테스트도 해 주고, 색과 매치된 허브 이야기도 들려주신다. 미백? 여드름? 노화방지? 어떤 비누를 만들까 잠시 고민 해 본다. 비누베이스를 썰고, 녹이는 동안 기능성 첨가물을 만들고, 녹은 비누에 첨가물과 천연 에센스를 넣어 비누틀에 쪼르륵! 이제 한 숨 돌리며 허브티를 마신다. 달콤상큼한 허브향으로 다시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꽃마리협동조합에서는 천연 원료로 비누 베이스를 만든다. 보통, 비누 공방에서는 베이스를 사다 쓰는데 이곳은 직접 생산한다. 농장과 협약하여 가장 좋은 원료를 공급받기에 가능한 일이다. 허브밭 한가운데 있으니 사진 찍기도 좋다. 더위도 적당히 식혔겠다, 아이들은 벌써 밖에 나가 뛰어다닌다. 엄마들은 주방세재에 관심이 많다. 이미 한살림 히트상품으로 알려진 꽃마리의 고체 주방세재는 물도 적게 들고 피부가 보들보들해진다고 한다. 현장에서 구매하니 기존에 보았던 것보다 크기도 크다. 또다시 봉투에 하나씩 담아 나간다. 쇼핑 여행이 아닌데 들르는 곳마다 왜 다들 하나씩 사가는 거지? 하긴, 온 김에 좋은 거 하나씩 챙겨가야지.
숨통이 확 트이는 풍경, 보롬왓
“네? 보라색 유채가 있다고요?” 그뿐만이 아니다. 공기정화식물로 꾸민 비밀의 화원은 카메라 드는 곳마다 포토존이다. 그런데 아이들 관심은 정작 다른 데 있다. 하루 종일 기대했던 ‘깡통열차 타기’이다. 메밀밭이고 뭐고 일단 기차 타는 곳으로 간다.
‘은하철도999’ 노래와 함께 무지개색 ‘드럼통’ 기차가 왔다. 얼른 자리를 잡고 기관사님께 토큰 하나씩을 낸다. 드디어 출발! 하얀 꽃이 핀 메밀밭 사이를 달린다. 멀리 말도 보이고, 하늘도 적당히 파랗다. 한참 내리 꽂던 햇빛도 살짝 구름에 가리고 바람이 솔솔 분다. 아, 그러니까 여기가 보롬왓, 바람(보롬)이 부는 언덕(왓=밭)이다. 기차에서 내려 메밀밭을 본다. 카페 앞에서는 누군가 버스킹을 한다. 아이들은 사슴과 눈을 마주치고, 커플들은 보라색 유채밭에서 사진 찍기 바쁘다.
이곳은 한울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경관농업을 한다. 10만평 중 여행자가 즐기는 곳은 2만평, 언덕의 광활함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제주는 메밀을 2모작하여 육지와 달리 5월에 메밀꽃을 볼 수 있다. 이미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서 주말에는 차들이 꽤 많이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차분해 지는 건,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수평선이 보여주는 풍광 때문일 것이다. 하루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나머지 이야기들
참석자들은 많은 칭찬을 남겨 주셨다. 규찬이 어머니는, ‘제주에 살지만 마치 외지인이 여행을 하듯 신선하고 즐거웠다.’고 했다. 많은 분들이 그동안 다녀보지 못한 제주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두고 온 아이와, 남편과 다시 오고 싶다고도 했다. 여행을 할 때 소중한 사람을 떠올렸다면 그 여행이 꽤 괜찮았다는 뜻이다. 이 모든 건 참여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완성되었다. 나 또한 다음 여행을 기대한다. 착한 사람들과 함께 제주의 구석구석, 제주에서 열심히 기업하시는 분들을 더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