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담, 낮은 지붕, 게으른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고내리 바닷가에 조그만 기념품 가게가 있다. 마을의 이야기와 창작자의 수고가 여행자의 추억으로 봉인되는 곳, 파란공장 조남희 대표를 만나보았다.
베리제주는 들어봤는데 파란공장은 여기 와서 알았어요, 어떤 관계인가요?
파란공장이 회사 이름이고요, 그 안에 베리제주와 파란공장 샵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베리제주 브랜드가 먼저 시작되었기 때문에 더 많이 알려져 있어요. 베리제주는 2016년에 온라인몰로 시작했고, 파란공장은 지난해 여름에 오픈했어요.
‘파란공장’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대표님의 말로 사업을 정의하자면?
‘파란’은 제주의 파란색 바다와 하늘을 연상시키죠, 또 ’파란을 일으키자!‘ 와 같은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장‘은 우리가 제작을 하고 창작자들과 일을 하고 있으니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보시다시피 베리제주와 파란공장 매장에서는 기념품을 팔고 있어요. 기념품 관련 시장은 점차 확장되는 추세에 있는데요, 이에따라 관련된 이해관계도 첨예해 지고, 한편으로는 창작자가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되는 현상 또한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같이 잘사는 시장구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파란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창작자들을 보다 존중하고, 그들이 가져가야 할 몫을 제대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사업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제작물에 있어서는 제주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담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기념품에 부가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해 생기는 수익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죠.
취지가 좋은데 미션이 어렵네요, 함께 잘살자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누군가는 소외당하기 쉬운 것이 현실인데요.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기업이라는 형태로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취지 자체가 ‘함께 잘살자’는 것이니까요. 일반적으로는 위탁판매에서 창작자가 매출의 70%를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들의 시간과 노력의 대가가 공산품과 같은 취급을 받는 시장구조는 참 우울하죠. 우리가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함께 잘살자는 취지에 있어
우리에게 사회적기업은 당연한 수순”
요즘은 이해도가 높아졌지만 ‘사회적기업으로 돈 못 번다.’는 사람들도 있고, 또 사회적기업 제품은 좀 재미가 없다, 신선하지 않다는 인식도 가끔 있잖아요. 한편으로는 조건이 까다롭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도전하시게 되었나요?
사실 사회적기업 조건은 별로 어렵지 않아요. 유급근로자가 한명 이상이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갈수록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이고, 앞으로도 사회적기업은 많이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문제에 대해서는 초기에 부정적인 견해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일단 후원금만 바라보고 스타트업 하는 경우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점차 사회적기업의 형태도 늘어나고 있고, 건강한 기업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파란공장 매장에 보니까 [푸른 섬, 나의 삶] 이라는 책이 있더라고요, 그 책 저자이신 거죠?
네, 제주에 와서 쓴 책이고요, 예전에 오마이뉴스에 글을 연재 했었어요.
아, 작가님이시군요?
아니에요, 철강회사에서 무역업을 했었습니다.
스펙트럼이 다양하시네요, 그럼 이주민이군요,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거예요?
2011년에 들어왔어요. 그때 한참 제주로 여행들 많이 왔잖아요. 저도 여행 다니다가 눌러 살게 됐습니다. 제주에 와서 1년 정도 쉬고, 놀다가, 어느덧 정착하고, 일을 하게 되고, 제주도 사람이 되었어요.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 몰랐는데 여기서 사업까지 하고 있네요.
철강무역은 상당히 단위가 큰 제품인데, 이렇게 작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다룬다는 것이 조금 답답하지는 않으세요? 또 철강회사면 다소 터프하고 한편 월급도 꽤 받으셨을 것 같은데?
철강무역은 남자가 99프로입니다. 일도 고되고, 매일 술 먹고, 물론 대기업에 연봉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생각해 보니까 앞에 앉아 있는 팀장님이, 부장님이 내 미래가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어요.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철강은 한 번에 수십, 수백 억이 왔다갔다 하는 단위가 큰 사업이죠. 그래서 저도 처음 온라인몰을 할 때는 매출이나 가격 단위에서 감이 오지 않아 당황스러운 면이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평범한 온라인몰은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실제로 먹어보고, 써보고, 체험하면서 좋은 물건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차츰 새로운 가능성과 흥미를 느끼고 그전과 다른 에너지가 생기더군요. 비슷한 시기에 플리마켓이 조금씩 등장하고 기념품샵도 하나씩 생기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일들을 하게 되는 준비가 갖춰졌다고나 할까요. 제주만의 색깔을 가진 상품을 서비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근차근 실천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베리제주와 파란공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어떻게 다른가요?
베리제주에서 판매하는 것은 일반적인 제주 기념품, 아트상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파란공장의 제품은 좀 더 지역사회와 가깝게 있다고 보시면 되요. 마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마을 이슈를 담아낸 창작자들의 산물이죠. 예를 들어 제주 마을, 유기동물, 고양이 등의 메시지를 담은 제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 고양이 관련 주제의 상품들입니다. 우리의 숙제는 팔리는 상품이자 의미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에요.
“숙제는
팔리는 상품이자 의미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
들어올 때 보니까 골목에 장사하는 집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장사가 잘 되는가 봅니다.
2016년에 베리제주가 처음 들어올 때는 임대료가 저렴해서 왔어요. 골목이 조용했죠. 그래서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고객들이 인터넷을 보고 찾아오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성수기의 경우 1일 200명 정도 방문하고 있어요.
마을 주민들과 잘 지내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일을 벌이고, 영향력을 끼치려고 섣불리 움직이는 것 보다는 원래 사시던 분들이 당신들의 방식대로 방해받지 않고 생활하도록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소란해 지거나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고 있고요, 마을 취약계층에 물품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조남희대표는 후원에 대해 상당히 말을 아꼈다.)
롤모델 기업이 있으신가요?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성공사례로 마리몬드를 보고 있습니다. 인권 메시지를 닮고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인데, 위안부 할머니들과 수익을 나누고 있어요. 누적기부액이 20억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주에도 하나쯤 그런 기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말씀해 주세요.
올해는 창작자, 작가들과 다양한 주제로 상품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마을 점방을 되살려 마을의 소비 취약계층이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고요, 지금 진행해 오고 있는 마을의 스토리를 담은 제품 개발을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