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다’는 말처럼 어려운 미션이 또 있을까? 아침에는 출근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밥 한끼 먹는 생활……. 당연해 보이는 일들이 어느 때부턴가 쉽지도 당연하지도 않게 되었다. 취직도 어렵고, 가족을 이루는 것도 어렵고, 아이 키우기도 어렵다고들 한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평범함이 어려운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평범함’이란 노력만 한다고 이뤄지는 꿈이 아니다. 그래서 일배움터의 슬로건인 ‘남들처럼 그렇게 평범하게’가 묵직하고, 크고, 위대하게 들린다.
일배움터는 제주에서 네번째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2006년의 일이다. 지금처럼 사회적기업에 대한 이해가 대중적이지 않던 때이다. 그만큼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에 방법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2006년이면 13년 전이네요, 그때만 해도 사회적기업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몰랐잖아요, 어떻게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게 되었나요?
그 이야기를 하자면 일배움터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발달장애인을 교육하고 취업시키는 일을 하고 있어요. 혹시 제주에 장애인이 몇 명 정도인지 아세요? 도내 장애인이 약 3만 5천명이고 그 중 발달장애인이 6~7% 정도 됩니다.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를 발달장애라고 하는데요, 이들이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그 결과로 자립한다는 것이 상당한 인내와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도 교육시설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고, 강사는 더더욱 부족한 실정입니다. 13년 전에는 더 어려웠습니다. 때마침 2006년에 사회적일자리 사업이 있었고, 그 당시 우리는 발달장애인을 가르칠 선생님이 절실했습니다. 우리의 필요와 도의 사업이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 되면서 사회적기업 인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발달장애인을 교육 시키고 그들의 취업성공이 목표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주로 어떤 교육을 하고, 어디에 취업을 하게 되나요? 어떤 사업들을 하는지 소개 부탁합니다.
현재 농산물, 원예, 카페 운영을 하고 있어요. 교육생들은 모든 분야를 두루두루 배우다가 특별히 재능을 보이는 분야가 있으면 이에 대해 중점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농산물은 제주 농산물로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것이고요, 원예는 도자기를 만들고 화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또 거리화단을 가꾸는 사업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카페는 flove카페(신제주 SK사옥)와 I got everything (제주도청)을 운영하며, 이곳에서 우리가 배출한 교육생이 일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카페에서 일을 한다고요? 카페가 포화상태인 제주에서 일반인들도 힘들어하고 많이들 실패 하는데요, 어렵지 않으세요? 체력소모도 상당할 것 같은데, 인력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으신가요?
현재 카페 현장에 있는 분은 12명이예요. 보통 1년 동안 일배움터에서 20명 정도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하는데요, 사실 대부분 교육생들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지만 현장에 나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발달장애인이다 보니 일반인 한사람 몫을 5명이 나눠서 해야 합니다. 예를들어 커피만 만드는 사람, 설거지만 하는 사람 계산만 하는 사람 등 많은 인력이 움직이죠. 바꿔 말하면 그만큼의 인건비가 발생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카페에 필요한 비용은 크게 인건비, 임대료, 재료비 정도 되겠죠? 그 중에 인건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다른 비용이 올라가면 운영에 문제가 생겨요, 게다가 우리는 다른 카페에 비하면 커피도 반값 정도에 판매하고 있거든요. 카페라떼가 2,500원이에요.
라떼가 2,500원이요? 근처 직장인들에게도 복지네요, 그럼 뭐가 남아요?
우리는 수익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교육생들을 취업시키고 그들이 월급을 받아갈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되는 거예요. 그들의 평범한 삶, 즉 ‘취직하고 월급 받는 생활’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돈을 얼마 더 남기는 것은 우리의 목표 안에 들어 있지 않아요.
아, 그렇군요. 수익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카페 운영의 변수는 있을 텐데요,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인건비야 그렇다 치고, 임대료가 갑자기 오르면 그게 큰 위기이죠. 카페 5년차에 임대료가 갑자기 많이 올랐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정말 아찔했어요. 저렴한 장소를 구하러 다니느라 맘고생, 몸고생 했어요. 또 어떤 사람은 그러더라고요. 연간 4천만 원이면 힘들게 카페를 운영할 게 아니라 그 돈을 그냥 장애인한테 주면 되겠다고요. 그런데 그건 정말 우리 일을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중요한 건 그냥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월급을 받는 ‘펑범함’을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지금의 자리에 flove를 오픈하게 되었고, 어느덧 카페 운영 7년차입니다.
교육장에 보니까 도자기로 만든 커피잔도 예쁘던데요?
네, 카페에서는 저희 원예팀에서 만드는 커피잔을 쓰고 있어요.
원예팀이 단순히 꽃에 물만 주는 게 아니군요? 보통 흙으로 만든 그릇은 투박하고 묵직한데 가볍고 빛깔도 너무 예쁘더라고요.
저희가 연구를 많이 했어요. 화분, 접시, 잔 등을 만드는 데요, 무게를 가볍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안쪽을 긁어내면서, 천천히 집중해서 연구한 비법대로 단단하게 만들고 있어요. 발달장애인들이 느리긴 하지만 하나를 배우면 정말 잘 받아들이고, 또 오랫동안 그것만 해 와서 점점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원예가 참 좋아요. 교육도 하고 치료도 되고 교육생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힐링이 되는 사업입니다. 저도 틈만 나면 앞치마 하고 화원으로 가서 일을 돕습니다.
치료요? 사례가 있으신가 봅니다.
네 그럼요. 한번은 다른 복지관에서 선생님을 폭행하고 갈 곳이 없는 분이 찾아왔어요. 그 당시 정신과에 3년 정도 다녔더라고요, 사실 선뜻 그 교육생을 받기가 어려웠어요. 혹시라도 다른 교육생을 해할까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우리가 받아주지 않으면 당사자와 가족이 크게 절망할 상황이었어요. 일배움터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년쯤 지나면서 그분의 변화를 느끼게 되었어요. 매우 차분해 졌고, 감정이 올라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학습한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원예 교육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집에만 있다가 부모님에게 이끌려 왔어요. 그때는 제가 보는 앞인데도 부모에게 욕을 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갈 데가 없다고 하는 부모님의 호소에 못이겨 결국 교육생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취업 했어요. 사실 이분이 평발이라 오래 서 있기가 힘든데 가족에게 불편하다는 말을 안 하더라고요. 본인이 이 일을 너무 좋아하는데, 혹시라도 부모님이 ‘힘들면 그만두라’고 할까봐 말을 안했다는 거예요. 사실 그때 우리가 교육생으로 받지 않았으면 그분에게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갈 곳이 없었거든요. 걱정과는 달리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일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큰 보람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좋은 이야기가 하나씩 쌓일 때마다 새 힘을 얻으시겠어요. 작년에 승진하신 것으로 아는데 대표님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저는 일배움터 9년차입니다.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작년 8월에 이곳 3대 원장으로 취임했어요.
9년 동안 근속 하셨으면 이곳 사정은 속속들이 다 아시겠네요. 직원들이 어려워하지는 않는지, 또 경영자로서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실무를 아니까 직원들이 힘든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편 일을 같이 해 왔기 때문에 편하게 여기는 부분도 있습니다. 따로 방이 생겼지만 틈틈이 앞치마 입고 농장에 가서 같이 일하면서 가깝게 소통하고 있어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공분야인 사회복지뿐 아니라 ‘경영’이라는 책임이 따라오는 것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40명을 취업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데 현재 35명이 취업했고, 연말이면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또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아이템도 선정해야 합니다. 기존의 사업들은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하고, 또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부분이 있다면 사업을 통해 일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숙제도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 평생교육프로그램 사업에 선정되어서 목공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축하드립니다, 더 자랑하실만한 것이 있다면?
올해부터 두 가지 복지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하나는 생일자 직원에게 꽃바구니를 주는데요, 이는 그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전해 드리는데 직원들과 가족들 반응이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올 해 7년 이상 근속 직원들과 처음으로 해외 워크숍을 갑니다. 12명 직원들이 오사카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직원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자, 이제 온실 구경하러 갈까요?
인터뷰 내내 오영순 대표의 목소리는 맑고 기운이 넘쳤다. 마치 갓 승진한 대리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처음 입사 때 잘 적응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과거도 숨김없이 겸손하게 드러냈다. 그것은 ‘나도 그랬으니 당신들도 당연하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오해에 대한 공감과 이해와 응원이었다. 일배움터에서는 활력과 에너지가 보였다. 오늘도 ‘평범함’이라는 ‘위대함’을 이루어 가고 있는 일배움터의 더 큰 성장을 기대한다.
기업정보
사명: 사회복지법인 일배움터
인허가 상황 및 형태: 사회적기업(일자리제공형), 중증장애인생산품시설, 건조농산물 제주마씸
소셜미션: 청년 장애인들의 평범한 삶을 디자인하는 일배움터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기와5길 83
설립: 2005. 12
분야: 제조, 도소매, 서비스
연락처: 064. 723. 9104 | nfolve17@gmail.com
인원: 62명(비장애인 종사자 포함)
대표상품: 원예,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