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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ol.14

청년, 있는 그대로 푸르러라.

임정현

靑年. 푸를 ‘청’자와 해 ‘년’자를 쓰는 ‘청년’은 사람의 일생에서 ‘푸르른 때’를 말한다. 또 국어사전에서 ‘청년’은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기에, 청년은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청년 = 일생에서 푸르러 한창 무르익은 시기”

이렇게 써놓고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면 뭔가 뭉클하고 찌릿한 느낌이 든다.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그 것은 이미 필자가 ‘청년’의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 ‘청년’ 시기를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푸르렀던 시기를 그리워하기에 아련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푸르러 한창 무르익은 시기’로 인식하고 있을까? 이 생각까지 미치면 한숨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지금의 청년들을 말하는 용어들을 보면 이해 가능하다. 포기한 것들을 셀 수 조차 없다하여 ‘N포세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가 사회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자조적인 표현인 ‘수저계급론’까지 푸르기는 커녕 온통 회색빛이다. 암흑에 가까운 회색 한가운데 놓여 있는 청년들을 보며 한자어에 담긴 뜻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민망한 일이다.

그럼에도 청년들 앞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하는 기성세대가 점점 줄고 있음은 환영할 일이다. 지금의 현실을 청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제주에서도 청년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운 좋게 제주에서의 청년정책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지켜볼 수 있었던 자리에 있었기에 지면을 빌려, 제주 청년정책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 청년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당시 행정자치위원회 김황국 의원(자유한국당, 용담 1‧2동)은 서울에서의 청년 기본 조례 제정 분위기를 전하며, 제주에서도 청년들을 위한 조례 제정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문제의식을 처음으로 가졌다. 당시 제주에서는 청년문제가 사회문제로 인식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초기의 접근은 제주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는데 뜻을 두었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2015년 1월 개최된 것이 ‘청년정담회(靑年情談會)’이다.

쉽게 얘기해서 제주청년들이 모여 청년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고 제도화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조례에 담자는 것이 시작이었다. 청년정담회는 2018년 9월까지 총 8회에 걸쳐 개최되면서 명실상부 청년당사자들의 논의구조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한다. 청년정담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토대로 청년 기본 조례가 2016년 6월 제정되었다. 하나의 조례를 제정하는데 있어 1년 6개월의 여론 수렴 기간을 가졌다는 것은, 본 조례의 제정을 추진한 김황국 의원의 의지가 큰 몫을 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청년문제의 논의가 확산되고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변화해가면서 청년문제에 대한 관심도는 급증했다.

2016년 6월 조례 제정 이후 8월 제주자치도 조직개편에서 김황국 의원의 주도적인 제안으로 특별자치행정국 내에 청년정책담당(계)이 신설되고, 청년원탁회의, 청년다락 개소 등 청년정책들이 하나 둘 시작되었으며, 중간지원조직인 ‘제주청년센터’까지 설립되었다. ‘청년’은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최대 화두로 떠올라, 당시 원희룡 도지사 후보는 핵심공약 1호부터 3호를 청년정책으로 채울 정도였다. 그리고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청년정책 소관 부서는 기획조정실 내 청년정책담당관, 즉 과 조직으로 격상되었다. 과 단위 조직이 생긴 만큼 앞으로 청년정책의 내용과 범위는 상당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조례가 제정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청년정책의 속도는 사실 기대 이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빠른 속도로 제도화 되고 안정화되는 청년정책이지만 이 과정에서 과제도 분명 나타나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차원에서 과제를 정리해본다면 크게 다음 3가지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청년정담회가 총 8회째 개최되고 있지만 회의에 참석하는 청년당사자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청년정책 논의에 있어서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논의해야하지만 논의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범위는 항상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그 대책을 함께 강구할 청년당사자들이 확대되지 않는 것은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정책적 노력도 부족했지만 자발적 참여의 문제도 있다고 본다. 해묵은 격언이지만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청년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 아직은 소수에 한정되어 있어 아쉽다는 것이다.

둘째,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차이, 그리고 행정과 수요자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정책들이 추진된 것을 성과라 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행정에서 사업을 주도했기 때문에 시간이 단축될 수 있었다는 단점도 있다. 청년 당사자들은 문제해결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의 성과’가 중요한데, 행정은 ‘결과론적인 성과’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실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청년들과 행정이 부딪히는 경우를 적지 않게 경험했다. 이것은 누가 ‘틀린 문제’라기 보다는 입장이 ‘다른 문제’로, 양측이 그 접점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청년정책이 빠르게 확산된 배경 중의 하나는 ‘정치적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산다. 청년정책은 소위 ‘표’에 좋다고 평가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표’에 좋다는 점은 양날의 칼이다. 정책 범위와 예산이 확대되는 것은 장점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에 한정될 수 있기에 청년당사자들이 정말 희망하는 사업은 소홀히 다뤄질 수 있다. 실제 최근 개최된 청년정담회에서는 청년사업의 확대 보다는 청년연구에 집중하자는 얘기까지 나온 바 있다. 청년연구에 집중하게 되면 내실은 기하되, 현재의 청년당사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은 줄어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제안이 나온 것은 지금의 정책이 청년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과제들을 정리하고 나니 다시 초점은 ‘청년당사자’들에게 맞춰진다. 필자는 어쩔 수 없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진 않지만) 청년당사자는 아니기에 그 역할에 대한 당부를 먼저 하는 듯 하여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내 준다면 내가 맡은 역할에서 최대한 그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 미안함을 대신하고 싶다. 청년. 그 뜻 그대로, 있는 그대로 푸르르길 바라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임 정 현

글쓴이 임정현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정책자문위원이다. 제주대학교 행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제주대학교 강사, 제주연구원 초빙연구원으로 일하였다. 현재 의회에서 학문적 지식을 활용하여 현실을 이롭게 하는 정책을 발굴하고 제도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인재개발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지속하고 있으며, 지방세 신(新) 세원 도입의 효율성 분석(2010),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활용한 지역개발사업의 정책설계에 관한 연구(2013), 자치법규 성별영향분석평가의 현황 및 과제(2016), 지방공공기관의 일‧가정 양립 제도화 현황과 개선방안(2016) 등의 연구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