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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ol.13

낡고 버려지는 것들의 반란

박진희

낡고 버려지는 것들의 반란, ‘삶에 깃들다!’

“그것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야기다.
실제 그것들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인지하고 우리와 우리의 이웃 그리고
우리와 자연 사이의 분리될 수 없는 연관성을 인식하게 하는 숭고한 가치를 재발견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에필로그 중-





일상의 풍경 속에서 문득 기억의 집적을 마주하게 되는 날이 있다. 그 집적은 개개인 속에 유영하는 철학을 모아내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지혜를 만날 수 있게 한다. 시간과 기억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은 아마 우리들 삶에 서려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질문하고, 질문을 풀어내는 과정이지 않을까?

그 속에서 설렘과 격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우리들 삶의 여정은 나날이 염려스럽다. 불안정한 생태계, 환경 보존의 어려움, 자원순환의 문제 등으로 인해 삶의 가치에 대한 관심이 변화하고, 이는 제주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런 이유로 상상창고 soom은 다양한 시각에서 지역현안에 대한 문제해결방식, 소통과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미래를 위한 오래된 삶의 기술과 지혜, 생활 속 재생 사례를 발굴하고자 한다. 기록을 통해 재생의 아이콘과 일상 속 유·무형의 재생자원과 예술이 상생하는 순환키워드를 찾고, 삶 속에서 생태계와 환경 보존 등에 대한 동기와 인식을 나누고,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업사이클(Upcycle) 철학을 공유하고자 했다. 그렇게 “제주_오래된 미래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지역의 예술가들은 ‘마을 곳곳 재생의 달인, 살림의 달인을 찾아라!’는 슬로건을 걸고 마을로 향했다. 제주인의 삶의 지혜를 발굴하고 아카이빙을 통한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고 동시대적 고민을 함께하는 공유의 장으로 확장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당신의 키에 맞는 농기구를 직접 제작해서 사용하는 어르신, 버려진 전화선으로 바구니를 짜는 어르신, 시집올 때 가져온 화로와 경대를 여직 쓰는 삼촌들을 만났고, 오래된 물건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엿보았다.

삶의 지혜를 배워가는 과정들은 쓸모없다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보고 고쳐 쓰는 작업으로 확장해 진행되었다. 버려진 항아리 조각들은 모여 감성화로가 되고, 장롱 속 깊이 박혀있던 옷과 비닐봉지는 실이 되어 쓰임새 있는 살림살이가 되고, 폐가에서 건져 올린 나무들이 멋진 벤치와 가로등으로 무한 변신을 거듭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조화롭고 지혜로운 삶의 기술을 마주하고, 생활 속에서 업사이클 철학을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들을 쌓아갔다.

2008년 저가항공의 하늘길이 열리면서 제주도의 관광객은 급증하기 시작했다.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제주도를 찾아 천오백만 관광객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더불어 연간 1만 명 이상, 최근 10년 동안 12만 명이 제주도로 이주하였다. 이는 제주도 곳곳에 관광 개발과 도시 개발로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공간과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자원 고갈에 대한 위기, 순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약 5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 또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포장용 플라스틱은 1인당 연간 약 61.97kg, 비닐봉지는 약 420개로, 1년이면 약 216억 개에 이른다. 국내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의 83%가 재활용되지만 17%는 소각되거나 매립되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해마다 우리나라 폐기물 발생량이 10m 깊이의 여의도 5배 넓이의 면적이 쓰레기가 매립에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어떠할까? 제주도의 하루 쓰레기 배출량은 약 900톤에 이른다. 2009년 이후 쓰레기 배출량이 급증해 2015년에는 쓰레기 배출량 1,100여 톤으로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6년부터 건설 경기가 둔화되어 혼합배출쓰레기가 줄었고, 재활용품 요일배출제 시행으로 매립쓰레기는 줄고 소각쓰레기는 증가하고 있다. 재활용품 가운데 50%는 다시 소각하거나 매립한다.

여기에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제주도는 천혜의 보물섬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꿈꿀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업사이클을 마주하여야 한다. 산업화과정으로의 업사이클링 확산도 필요하지만 삶에 깃드는 철학으로 업사이클에 대한 인식은 중요하다. 특히 삶의 기술과 지혜가 만나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시민의식은 업사이클 교육의 중요성을, 거버넌스를 통한 플랫폼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재사용(Reuse)하고, 재활용(Recycle)하고, 새활용(Upcycle)해 특히 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오래되고 낡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다시보기와 익숙하면서도 낯선 삶의 지혜를 아카이빙 하는 일상을 상상해 본다. 서로의 가치를 조심스럽게 알아봐 주고 귀 기울여 주는, 삶의 구성요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재구성 해가는 대안적 삶의 가치를 그려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잘 살기 위해 우리는 일상을 배신하지 않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감각을 깨우는 어떠한 질문을 해야 할까?

글/사진 박진희


글쓴이 박진희는 1969년 섬진강변에서 태어났다. 만들고 그리는 일을 좋아하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결국 미술대학과 문화예술경영대학원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 첫 개인전 ‘여우야 여우야’(1997) 를 시작으로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1999년 숨조형연구소를 개소하면서 커뮤니티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하고. 2013년 제주에 정착해 6년째 제주살이를 하며 이상과 일상과 상상을 넘나들며 서툴지만 진심을 담는 삶을 짓고자 한다. 현재 지역의 아티스트들과 상상창고 soom을 운영하면서 예술이 삶 속에서 어떻게 질문을 만들어가고 성찰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며 공감의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