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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ol.11

제주 농업과 우리의 미래

홍창욱

‘농’담 같은 ‘업’의 시작

돌고 돌아 제주에, 농업에 닻을 내렸다. 나이는 어느덧 마흔이 넘었다. 10년 전 나는 제주로 내려왔고 농사를 짓게 될 거라고는, 창업을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할 것이 없으면 사는 집에 방 한 칸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지 뭐’라는 생각도, 가진 밑천이 있는 사람들 얘기였다.

2009년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며 구직활동한지 6개월 만에 드디어 제주로 이직하게 되었다. 정부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문화컨텐츠기업이었는데 2년도 채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시장이 없다, 기술력이 낮다, 필요한 인재들이 없다 등등 핑계를 수 백 가지 댈 수 있을 만큼 업계상황은 좋지 않았다. 지자체의 지원으로 유지되는 기업들이 많았다.

제주 농촌의 색다른 자원

그 짧은 시간동안 제주의 구석구석을 많이 다녔는데 농촌마을을 보며 육지와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겨울철이 되면 월동채소들이 밭에서 친환경적으로 재배되어 육지의 식탁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바다에서는 해산물, 밭에서는 채소, 과수원과 하우스에서는 과일, 고지대에선 임산물이 고도에 따라 기온에 따라 각기 다르게 자란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화산회토라 당근, 무 등 뿌리채소들이 잘 자라고 서쪽은 비화산회토, 점질토 지역이라 모든 농작물들이 잘 자란다. 제주시,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한 시간 내에 섬의 모든 곳을 갈수 있다는 점도 농산물의 수급에 장점이다.

환경적으로, 또 지리적으로 이렇게 우수한 농업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 대부분의 농부들이 1년에 한, 두 작물만 농사를 짓고 다른 이들과 동일한 작물로 농사를 짓다보니 생산 물량이 차고 넘치고, 가격이 곤두박질 치는게 흔한 일이다. 큰 밭에 트랙터로 밭을 갈고 인부들을 데려다 파종하고 수확하면 그만인, 자본이 있으면 쉽게 농사지을 수 있는 농업 환경이다 보니 점점 투입비용은 늘어만 가고 이를 만회하려면 노력도 노력이지만 요행을 바래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10년 전 만해도 채소는 사먹는 것이 아니라 고향집 텃밭에서 가져다 먹는다고 했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농민들도 인근마트에서 채소를 사서 먹는다. 혁신도시, 영어교육도시 등 대단지 아파트단지들이 많이 생겼고 대부분 고향집이 육지인 이주민들이다.

이들 또한 대형마트, 시장에서 먹거리를 사다 먹는다. 그들의 이웃이 감자, 당근, 양배추 농부임에도 물 건너온 육지 농산물과 육지에 다녀온 제주 농산물을 사서 먹는다. 바로 이웃집에 농부가 있음에도 얼굴을 모르고 인사를 나누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물을 건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당연시 여기며 살고 있는지.

농촌 마을기업

지난 7년 동안 마을기업 ‘무릉외갓집’에서 일하며 제주의 다양한 농부들을 만났다. 매달 배송하는 농산물 회원제 배송프로그램은 타 지역에 택배로 배송되는 신뢰기반의 선불결제 시스템이었고 회원들이 가끔 마을로 방문하여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육지의 회원들은 제주의 청정한 자연 속에서 소박한 마을사람들이 농사지은 다양한 산물에 매년 기꺼이 45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회비로 납부했다.

올해로 3년이 되는 영어교육도시 매주 농산물 배송프로그램은 회원과 직접 얼굴을 마주한다. 직원들이 직접 배송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마을기업에 대한 신뢰는 교직원 회원들이 근무하는 학교로 까지 확대되어 학생, 가족들의 방문과 체험이 잦았다.

매달 1년에 12번 제주의 특별한 농산물들을 골라 담는 것과 달리 매주 1번 집에서 먹을 식자재를 직접 배송하는 일은 달라도 너무나 다른 일이었다. 택배로 배송되지 않는, 지역에서 수확 즉시 먹어야 하는 로컬푸드가 필수적인데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생겨나고 소비자 직거래가 필수적임에도 농부를 찾기가 어려웠다. 국내 대표적 관광지이며 도내 거주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제주는 여전히 육지 소비지 시장을 목표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일반 계통출하 체계로는 소비지에서 제일 먼 생산지이기에 겨울을 제외하곤 찬밥신세일 수밖에 없다.

미래의 제주 농업농촌

 물론 최근 몇 년간 제주도 많이 변하고 있다. 플리마켓에 농산물이 판매되고 있고 소비자와의 택배 직거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워킹홀리데이 등을 통해 제주의 농촌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또한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미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기술적인 기반은 구축되었고, 직접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은 그에 따르는 이익과 함께 점점 커지고 있다.

 나 또한 농산물의 유통을 넘어 특정한 작물을 직접 생산하여 소비자와 만나기 위해 ‘공심채농업회사법인’을 창업했다. ‘아열대 기후로 진입하고 있는 제주에서 새로운 기후에 맞는 아열대 채소를 동남아시아에서 결혼 이주한 여성들과 함께 생산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창업의 시작이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올해는 시범농장도 운영하고 법인도 만들었다. 내년에 사회적기업으로 지정을 받게 된다면 아열대채소를 비롯한 다양한 로컬푸드를 이웃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함으로써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생산자들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도 제공할 계획이다.  

 농촌은 앞으로 더 많이 변할 것이다. 먹거리가 충분하고 선택지가 많은 세상이기에 농업농촌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의 가치가 더 부각될 것이다.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국민의 식량을 보전할 뿐 아니라 자연 경관을 보존하고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 바로 농업과 농촌의 역할이다.

 제주의 농촌에서 보낸 8년의 시간은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일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부족한 생활비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앞으로 ‘워라밸’의 삶을 원하는 많은 도시인들이 제주의 농촌을 찾아 제 2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들에게 농업농촌이 큰 장벽이 되지 않으려면 농업농촌의 식량적 가치뿐 아니라 공익적 가치를 어떻게 수익과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홍창욱

농업디자이너이자 뽀뇨아빠로 불리는 홍창욱은 중앙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마을기업 ‘무릉외갓집’ 실장을 거쳐 현재 농업회사법인 ‘공심채’ 대표로 있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추웠던 서울에서 저녁 없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정말 원하는 인생을 위해 아내를 설득해 제주로 이주한 경험을 살려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북하우스,2014), 『제주 살아보니 어때?』(글라,2015)를 집필했고 온라인 뉴스레터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섬’ 편집인을 겸하며 서귀포신문, 한겨레, 제주도민일보, 베이비트리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