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 Interview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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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ol.11

소박하고 확실한 행복을 가꾸는 삶

운봉댁 딸내미 하지원, 밍규리

밍규리
하지원



두 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밍규리(이하 밍): 밍규리입니다. 제주에는 2015년에 왔습니다. 30대 초반이 되었을 무렵 본가에서 독립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는데, 때 마침 제주로 오라는 친구가 있어서 집에다가 통보하고 무작정 내려왔어요.

하지원(이하 하): 하지원입니다. 이전에는 광고 관련 일을 했어요. 지금은 밍규리와 함께 ‘운봉댁 딸내미’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같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 저희는 2015년에 이집트에서 처음 만났어요. 각자 떠나왔던 여행이었고, 이후 한국에 들어와 가끔씩 연락하는 사이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며 머리도 식힐 겸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계획했었는데, 당시 자전거에 대해 잘 아는 밍규리가 제주에서 귤 농사를 돕고 있어서 정보를 물어보았어요. 본인 집에 남는 자전거가 하나 있으니 그걸 쓰라고 해서 제가 그 자전거로 여행을 했는데, 반납을 할 무렵이 11월이었거든요? 귤 수확 때문에 밍규리가 많이 바빠 보이더라고요. 그동안 쓴 자전거 삯이라 생각하고 일손을 도왔는데 그게 시작이었죠.

밍규리 씨가 자전거로 세계를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농사와 관련된 마을도 방문하셨을 것 같은데 인상 깊었던 곳이 있으세요?

: 중국, 대만, 인도를 돌며 농사나 환경과 관련된 공동체를 방문 했었어요. 숙식제공 받으며  도와주고 했었죠. 기억에 남는 곳은 인도에요. ‘사다나포레스트’라고 나무를 심고 사막화 된 땅을 산림화 시키는 공동체인데, 생활 속에서 ‘파머컬쳐’를 실천해요. 수도꼭지 대신 펌프질을 하고 샤워시설이 없어서 양동이 채 물을 옮겨 씻고 생태 화장실을 써서 비료를 만드는…

두 분은 이전부터 농사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나요?

: 저는 대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책을 많이 읽은 사람보다 한권 만 읽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잖아요(웃음)? 그때 환경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환경 문제와 더불어 “사람이 없어 농촌이 위기”라는 단락이 있었어요. 20대 중반이었는데 당시 만나고 있던 선생님과 친구들이 폐광촌이나 농촌, 섬에 들어가 사회사업을 하고 있어서 저도 자연스럽게 농촌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 농사 짓던 집이 아니라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농업회사에 취직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 같아요.

: 저는 아니요, 처음이에요.

: 처음인데 잘 해요. 마을 삼촌들이랑 나란히 케일을 따면 뒤쳐지지 않고 같이 따라가요. 그럼 다들 놀라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죠(웃음).




어떤 경로로 제주에서 농사를 시작하셨나요?

: 2015~16년에는 다른 분 농장에서 일했고 2017년부터는 저희 둘이 2,000평을 빌려서 귤 농사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운 좋게 제주한살림 큰수풀공동체에 가입해서 한살림 생산자로 등록되어있고 교육도 받고 감귤선과도 같이 해요. 도내 45세 미만 생산자들이 청년작목반으로 모여 활동도 하고 지역 연수도 가곤 합니다. 주변 어르신들이 밭을 알아봐주시기도 하고, 자기 출하량 떼어줄테니 다른 농사 하라고 하시기도 해요.

: 다른 농사를 하라는 것은 귤 농사가 시즌이 있으니 다른 작물도 병행하면서 쉬지 말고 하라는 뜻이에요.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이세요?

: 다른 사람들은 텃세 때문에 힘들다는데 저희 마을은 그런게 없고 외려 안쓰러워하시는 게 커요. 저희가 저희 밭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밭에 가서 일을 돕기도 하거든요. 월에 필요한 일정 수입이란게 있잖아요. 하루는 차를 타고 밭에 다니는데 이웃 분들이 “어디 갔다 왔니, 저번에는 안 보이던데” 하면서 신경 써 주시고, 부지런하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보다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일들도 소개해주세요.

: 제가 작년에 어린이집 봉고차 운전을 했는데, 저 말고 운전하는 또 다른 분이 계세요. 같은 마을에 사니까 연합청년체육대회나 마을 잔치 있음 나와 보라고 귀띔도 주세요. 본격적인 마을 행사에 동참하면서 이장님, 청년회장까지 지금 사는 집을 알선해주었어요.

주변 농사짓는 어른들도 많이 도와주시나요?

: 작목반 내에 감귤 선생님이 있어요. 가지치기, 시기에 맞는 약, 다른 많은 노하우를 배워 가면서 얻고자 해요. 사실 농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 ‘본인 노하우’라서 얘기를 안 하려고 하세요. 하지만 저희가 사부님이라고 부르시는 분은 많이 내어주시죠. 폐쇄적이지 않고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 하시니 많은 혜택을 받죠.

: 예전 농사 습관이 나이 들면서 고착화 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보통은 풀을 베지만, 저희는 안 베거든요. 진딧물이나, 수분 관리 때문에 사실 풀이 중요한데, 어르신들은 제초제를 뿌리면서 저희에게 왜 풀 안 베냐고 하시고(웃음). 기존의 관습이 잇다보니 그것과 부딪히는 것도 있긴 해요.

: 저희 밭 옆에 아기 있는 집이 있거든요? 풀이 자라니까 모기가 많다면서 거기서 풀 좀 베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풀을 베었더니 풀에 있던 진딧물이 다 귤나무로 옮겨가더라고요(웃음).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아, 날씨가 내 맘 같지 않을 때? 누구에게 탓하겠어요. 하늘에 뭐라 할 수도 없고(웃음). 시골에 내려와 멋모르고 농사를 한다고 했는데 사실 ‘나의 농사’라고 할만큼 시도한 것이 아직 없어 부끄럽습니다. 예전부터 막연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 농사였는데 사실 농사가 나한테 맞는 일인지, 이 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시기입니다.

: 그래서 저희는 둘이서 핸들링 할 수 있게 노동력을 최소화해서 그 규모로 가자고 얘기해요. 평수를 적게. 밭을 늘리지 말고 토양관리, 영양관리, 적기에 방제를 하면서 지금 그 밭에서 최대의 생산량으로 가져가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계속 땅을 임대해서 쓰니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것이 좀 문제에요. 우리 땅이면 투자나 실험을 할 수 있는데, 무모하게 실험을 하기에는 그 전에 임대기간이 끝날 수도 있거든요.

그렇네요. 고령화사회인 농촌에 청년이 유입되게 하려면 여러 가지 도움들이 필요할 것 같은데, 지금 정책은 어떤가요?

: 정책이라고 하는 것들 대부분 농민이 빚을 지고 자재회사들만 배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부동산도 그렇고요. 농지를 용도변경해서 되팔거나 투기용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큰 비용으로 농지를 구입하기가 버겁습니다. 미국인 친구가 대만에서 벼농사를 짓기에 물어보니 대만은 밭주인을 만나지 않고도 농지은행의 형태로 나라가 임대료를 지원한대요.

: 이번 정부 들어서서 ‘청년창업농’을 3년간 지원해주는 것이 있어요. 가계정착금을 한 달에 1,000,000원 씩 3년간 지원하는데 돈을 받기위해서는 120시간 수업을 수료해야 해요. 귤농가 정도면 수확철 이외에 시간여유가 좀 있지만 매일매일 일해야 하는 농부도 있거든요.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울음들이 많습니다.

두 분 모두 새로운 일을 시작한 거나 다름없는데, 농사로 인해 스스로 변화했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나요?

: 부모님 밑에서 독립을 했다는 것이 첫 번째 변화고요.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는 소비하기 이전에 뭐든 만들어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느리고 서툴지만 밍규리와 함께 텃밭에서 채소를 키워 먹고, 필요한 가방은 직접 뜨며, 나무로 가구 또는  장식품을 만들어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제야 제 삶의 주인이 된 것 같아요. 톱니바퀴 중 하나의 톱니에 불과하지 않을까 했던 지난 서울에서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고 행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할 때 내가 행복한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다보니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아요. 물론 가족도 친구도 없으니 가끔은 쓸쓸하지만.

: 회사 다닐 땐 남의 일을 하니까 재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우리 일을 하니 너무 좋아요. 밤 새 할 수도 있어요(웃음).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 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것이 큰 꿈이에요. 단순한데 어렵죠?(웃음) 학교에서는 세계에 나가 더 큰 꿈을 펼치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각자 위치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충분히 즐기는 것이 더 큰 행복일 수 있어요. 열심히 사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열심히 안 사셨음 좋겠어요(웃음). 좀 느슨하게 살아도 될 것 같아요.

: 농사가 천박하다는 인식이 바뀌었음 좋겠고, 농사 외적으로 다른 일을 병행할 필요 없이 농사만으로 기본적인 가계소득이 안정될 수 있길 바라요. 사실 저희 부모님이 농사짓는 것을 반대하셨거든요? 저도 알아요. 남들처럼 더울 때는 에어컨 쐬며 일하고 추울 때는 히터 쬐며 일했음 바라는 게 보통의 부모 마음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저희 보시면 그걸 벗어난다고 해서 큰 일이 일어나지 않잖아요?


운봉댁 딸내미 연혁
2017 운봉댁 딸내미(blog.naver.com/austin18) 시작
무농약 청귤 8월 15일~9월 15일
무농약 조생감귤 11월~12월 말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사한 어무이, 아부지 세대는 할머님이 시골에서 먹을거리를 보내주셨어요. 시간이 흘러 한 세대가 지나며 시골로 귀농한 아들, 딸내미가 어무니, 아부지께 먹을거리를 보내드립니다. 농업, 농촌이 튼튼하고 건강한 사회, 힘들어도 시골, 농촌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 이 시대 모든 젊은 농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엄마는 시골에서 밭일하며 지내는 딸이 속상해도 소박하게 농사지어 예쁘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