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던 제주도는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제주 섬에서 섬 아이로 자랐습니다. 제주처럼 넒은 하늘과 제주처럼 넒은 바다와 제주처럼 넓은 산을 날마다 마음 가득 품을 수 있었죠. 그것은 가난한 아이에게 더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어느덧 아이는 엄마가 되고 마흔이 되고 서울살이를 하고 있지만, 제주의 바람과 제주의 영혼은 언제까지나 제 삶의 후견인입니다. 제주는 저에게 행복해지는 법도 가르쳐줬습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극히 미미한 존재이며, 다른 존재들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갈 때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말이죠. 하지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젖처럼 무한한 사랑을 주던 어머니 제주가 생명의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일 년에 두세 번, 여름휴가나 추석 설날 즈음에 만나는 제주는 볼 때 마다 몰라보게 변해있습니다. 올레길 위에서 보는 제주의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해안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카페와 편의점의 행렬, 아름다운 숲 곶자왈이 있던 자리 지어진 골프장과 숙박시설의 모습은 서러움을 자아냅니다. ‘새로움’이 들어설수록 ‘제주다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관광객이 3배가 되었습니다.”
2005년 국내 최초의 저가항공사가 설립된 이후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2005년 500만 명이던 관광객 수는 2016년 1600만 명으로 늘어났죠. 제주 인구의 24배에 달하는 엄청난 인파가 한 해 동안 몰려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늘어날수록 차가 늘어나고 건물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변화보다 무서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입니다. 1인당 쓰레기 배출량 전국 1위. 현재 운영 중인 9곳의 쓰레기 매립장 모두 1~2년 내에 포화된다고 합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제주 인구가 13% 증가하는 동안 쓰레기 배출량은 41% 증가했다고 하니, 쓰레기 대란도 관광객 급증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요.
또한 제주 도심의 화장실 오수와 생활하수, 인근 쓰레기매립장의 침출수까지 하수처리장의 처리용량을 초과한 오폐수가 제주 앞바다로 무단방류 되고 있습니다. 공항 인근 도두하수처리장에서 배출 기준치 이하의 하수가 정상적으로 배출된 날은 2016년 상반기 중 단 5일에 불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말 그대로 ‘똥물’이 공항 앞바다로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서귀포시 성산하수처리장의 일일 처리용량 4천 톤인데, 일평균 4천 5백 톤의 하수가 유입되면서 단 하루도 배출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다수는 없다.”
관광 성수기인 지난해 여름, 중산간 지역 20개 마을의 주민 7580명이 무려 35일간 격일제 급수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먹는 물, 씻는 물을 쓰다 보니 고지대 주민들이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공급받지 못한 것입니다. 제주는 화산섬으로 빗물이 지표에 머무르지 않고 땅 속으로 유입됩니다. 즉 지하수는 제주인의 유일한 취수원인데, 작년 지하수 관측수위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제주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을 지금의 두 배 이상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배의 공항은 2배의 사람을 부릅니다.”
제주도와 국토교통부는 2035년 제주의 항공수요를 4500만 명으로 예측하고 제주에 공항을 하나 더 짓겠다고 합니다. 제주공항(수용능력 2600만 명)과 같은 규모의 제주 제2공항(수용능력 2500만명)을 성산일출봉 앞에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관광객 4000만 시대를 열겠다고 합니다. 관광객이 2배가 되어도 제주 고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요? 제주공항은 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2공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하지만 현재 제주공항의 수용능력을 500만 명 늘리는(2600만→3100만)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완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25년까지 차질 없이 제주 제2공항을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제2공항을 짓지 않으면, 연간 관광객은 최대 2000만 명을 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용감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제주 제2공항의 건설비용은 무려 5조원에 달합니다. 전국 1,900만 가구가 가구당 26만원씩 부담해야 하는 막대한 금액이죠. 5조원은 교육·주거·복지 예산으로 쓰여야 하고, 제주의 고유한 자연 환경을 지키는 예산으로 쓰여야만 합니다. 제2공항 예정지 주변의 오름 10개를 절취하면서 까지 공사를 추진한다면, 곶자왈 위에 세워진 신화역사공원과 영어교육도시처럼 앞으로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제주의 자연과 환경을 꾸준하게 훼손하겠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주 제2공항을 건설하면 제주의 자연은 영구히 파괴되고, 개발로 인한 마을 주민들의 삶도 망가질 것입니다.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제주의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제2공항보다 오름이, 곶자왈이, 바다가, 철새가, 용암동굴이 더 소중하다고 함께 이야기 해 주세요.
(전)19대 국회의원, (현)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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