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더 스토리 No.9] 유난히 호기심이 많던 소년, 사업가가 되다



[더 스토리 No.9] 유난히 호기심이 많던 소년, 사업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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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산업은 친환경 세제를 제조 유통하는 사회적기업인데요. 대표님이 남자분이신데 어떻게 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을까 궁금합니다.
제가 경남 양산에 있는 세제 공장에서 일을 했었거든요. 원래는 친환경 세제를 생산하는 곳이 아닌데 친환경 쪽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제가 친환경 파트를 맡고 있었죠. 그런데 생산 원료를 보니 오렌지 오일이라는 걸 수입을 해서 쓰고 있더라고요. 오렌지 오일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수입을 해오는데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어요. 생각해 보니 제주도에서도 귤이 생산되는데 왜 이렇게 비싼 오렌지 오일을 수입해서 써야 하나 싶었어요. 실제로 저희 집도 귤농사를 하고 있지만 판매가 불가능한 파치들이 엄청 많이 나오는데 이걸 세제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고 제주로 돌아와서 직접 한번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근데 제주분이 어떻게 양산으로 가셨을까요.
아, 그곳이 지인이 운영하는 공장이었는데 특허나 인증 분야 쪽으로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해서 가게 되었는데 그 때가 2011년이니까 딱 10년 전이네요. 양산에 가기 전에는 육지에서 회사 생활도 했고 제주에서도 회사에 다녔는데 제가 성격이 꼼꼼한 편은 아닌데 관심을 갖는 일에는 좀 파고드는 성격이 있거든요. 그 부분을 좋게 봐주셔서 제의를 해주셨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회사생활을 할 때도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의 핵심적인 부분들도 빠르게 파악하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려고 노력했죠.
일찍부터 사업가를 꿈꾸셨네요 그러니까 이전에 다녔던 회사들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사업의 기본기를 닦으셨다는 건데 어떤 회사들이었나요.
첫 번째가 제약회사였는데 화장품 분야에서 제약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는 그런 회사였고 그 다음이 세제회사였죠. 사실 이런 분야의 회사들이 발전하고 성공해나가는 것을 보면 공식 같은 게 있는데 처음엔 세제를 하다가 그 다음에 인체 세정으로 가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화장품, 그 다음이 제약, 이런 순서로 회사를 키워나가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우선은 제주도 감귤을 활용해서 세제를 만들어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고 창업을 하게 된 거죠. 오랫동안 객지 생활을 하다 보니 제주도에서 정착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컸고요.
처음에 육지로 올라가셨던 건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제가 일본에 친척들이 살고 있어서 좀 자주 갈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일본이 한국보다 좀 앞서갈 때였고 거기서 뭘 봐도 신기했죠. 역사적으로는 좋아할 수 없는 나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템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놀랐어요. 그래서 여행자로 가서 3개월씩 일본에 머물렀다 돌아오곤 했는데 좀 다니다 보니 언어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거기 어학원에서 일본어도 배웠죠. 그러던 중에 그 어학원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온 한국인 친구를 알게 됐는데 그 친구는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아래인데 포부가 엄청 컸어요. 그 친구 얘기를 들으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친구와 서로 연락을 하면서 지냈는데 서울에 와서 해외 취업 준비를 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당시 그 친구도 해외로 취업을 해서 나갈 계획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신림동 고시원에서 영어학원도 다니고 무역공부도 하고 하면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는데 그 즈음 아는 분이 강남 쪽의 제약회사에 취업을 제안해 오셔서 고민하다가 그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죠. 아무래도 해외 취업은 제 분야가 아니고 그 친구가 리드하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과정이다 보니 정말 이 길을 가야 하나 하고 좀 갈등을 했었거든요. 혼자 고시원의 좁은 방에서 지내는 일이 외롭고 힘들기도 했고요. 어쨌든 빨리 사회에 진출해서 경험도 쌓아보고 싶고 나름 실전에 뛰어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터라 국내 취업을 선택하게 된 거죠. 제약회사와 세제회사 두 군데 직장을 거치면서 제 마음 속에 서는 항상 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어요. 그래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사업가로서의 경험을 쌓아간다는 마음으로 일했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빨리 일을 배웠던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하지 말라고 하면 해야 되고 만지지 말라고 하면 만져야 되는 그런 아이였어요.
들어가지 말라는 곳도 들어가서 꼭 확인을 해봐야 되고.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진짜 말 안 듣는 아이였죠.
사실은 지금도 그런 게 여전해요. 뭐든 소재가 뭔지 만져봐야 하고 어떤 냄새인지도 맡아봐야 되고.”



대표님이 당시 일본에 끌렸던 것도 어떻게 보면 사업가로서 타고난 자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어릴 때부터 뭔가 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하지 말라고 하면 해야 되고 만지지 말라고 하면 만져야 되는 그런 아이였어요. 들어가지 말라는 곳도 들어가서 꼭 확인을 해봐야 되고.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진짜 말 안 듣는 아이였죠. 사실은 지금도 그런 게 여전해요. 뭐든 소재가 뭔지 만져봐야 하고 어떤 냄새인지도 맡아봐야 되고. 부모님이 맞벌이로 장사를 하셨는데 두 분이 아침부터 밤까지 장사를 계속 해야 되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집에 혼자 있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밥도 해먹고 그랬어요. 제 위로 누나와 형이 있고 제가 막내였는데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이었던 누나나 형은 놀러나가고 없으니까 늘 혼자 집에 있었어요. 그때부터 청소하고 빨래하고 집안일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었죠.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밥을 해봤는데 쌀을 씻다 보니 자꾸 뿌연 물이 나와서 스무 번은 넘게 씻은 것 같아요. 쌀도 양을 너무 많이 해서 나중에 다 되고 보니 밥통에 넘칠 만큼 밥이 많았어요. 나중에 집에 돌아온 부모님이 놀라셨던 기억이 나네요.
아, 집안일을 부모님이 시키신 건가요?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은 아닌 것 같아요. 위로 누나와 형도 있었는데요.
아니요. 집안일은 부모님이 시키신 게 아니고 제가 그냥 했어요. 뭐 특별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일찍부터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지금도 어딜 가나 혼자 잘 적응하고 혼자 잘 먹고 그러거든요. 그때 밥을 한 것도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밥을 해놓으면 부모님이 칭찬하시겠지, 형이나 누나도 좋아하겠지, 뭐 그 정도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어려서 안 된다고 하면 방학 한 달만이라도 형 이름으로 바꿔서 지원해가지고 내 돈은 내가 벌고 내가 쓰고 하다 보니까 좋게 말하면 독립심인데 사실은 뭐 어릴 때부터 사회를 보고 배운 거죠. 그래도 나쁜 짓은 안했던 것 같아요. 단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으니까 그걸 제 힘으로 해결하고 싶었던 거죠. 엄마가 용돈을 5천 원 주시는데 저는 그보다 훨씬 많은 3만원을 벌고 그런 게 뿌듯했어요.
정말 여러 모로 남다르셨네요. 사실은 어린시절의 그 호기심과 탐구심, 그리고 독립심이 결국은 지금의 양홍석 대표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공부는 잘 하셨나요?
하하. 제가 공부를 워낙 안 해가지고 중학교 2학년 때 창원에 있는 외삼촌집으로 끌려가서 감금을 당한 채 연합고사 공부를 했어요. 그 당시 제주도에 연합교사 커트라인이 엄청 높았거든요. 그대로 제주도에 뒀다가는 고등학교도 못가게 생겼으니까 부모님이 저를 창원으로 보내신 거예요. 창원에 사시던 외삼촌과 외숙모가 학교 선생님이셨거든요. 1년 정도 거기서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에 외삼촌과 저 둘이서 고시원에 살면서 진짜 매 맞으면서 공부를 했어요. 삼촌도 당시에 선생님이셨지만 고시 준비를 하느라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셨거든요. 아침에 학교 갈 때 삼촌이 단어장을 찢어주면 달달달 외웠다가 삼촌한테 테스트 받고. 매일 무작위로 단어 10개씩 시험을 보는데 시험에 통과해야 아침에 용돈을 주시니까 용돈 받으려면 무조건 다 외우는 수밖에 없었죠. 그때는 정말 미운 삼촌이었는데 지금은 각별하죠.
그래서 연합고사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그때 삼촌한테 맞아가며 그렇게 공부를 해서 결국 대기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어요. 어쨌든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때 창원에 가서 공부를 한 덕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던 게 지금까지도 제 인생에서 엄청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당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제주사회의 인맥이 되어서 어디든 자리에 하나씩 있다 보니 사업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각 분야의 친구들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곤 하죠. 그리고 제가 그렇게 공부 안하고 속을 썩이는 바람에 부모님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셔서 지금은 그래도 효자로 살고 있어요. 고생시켜드린 게 미안해서요. 대학도 부모님 기대와는 달리 일찍 그만두게 되어서 걱정을 많이 끼쳐드렸는데 지금은 이렇게 회사도 운영하고 하니까 명절 때면 어머님이 직원들 먹인다고 떡국도 한 솥씩 끓여 오시고 무척 좋아하시죠.

대학을 일찍 그만두셨다는 건…… 중퇴를 하셨다는 의미인 거죠?
네, 중퇴를 한 거죠.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할 때 제가 원하던 건축학과에 떨어져서 대기 1번이 되는 바람에 마음에도 없던 정보산업 계열 학과에 들어가게 되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교를 마쳤으면 지금 회사를 하면서도 굉장히 유용했을 텐데 싶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때는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냥 빨리 사회에 나가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사실 건축학과에 가고 싶었던 것도 친척 중에 건축사 일을 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꾸준히 경력을 쌓으면서 돈도 많이 벌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일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였거든요. 제가 만약 그때 건축학과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제 인생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겠죠.
어쨌든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사회와 만나게 됐던 건데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탓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대표님의 DNA 속에 사업가로서의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식의 도전을 계속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까 늘 갈망했던 게 부모님처럼 밖에서 하루 종일 집안에 신경 못 쓰고 고생하는 그런 삶은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장사 끝내고 집에 들어와서는 늘 녹초가 되어 계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짠한 마음이 컸죠. 그리고 저도 어릴 때는 부모님 돌봄 없이 그렇게 혼자 지냈던 것이 혼자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지 그게 외로움이라는 걸 잘 몰랐는데 나이 들고 보니 그 외로움 때문에 제가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잘 하게 되고 사업을 하면서도 정을 준 직원이 자기 갈길 가겠다고 하면 상처받고 그런 제 자신을 보면서 내가 많이 외로웠던 거구나 생각하죠.
진심으로 정을 준 직원들이 떠나면 상처를 받는 건 누구나 비슷한 마음일 것 같아요. 지금 ‘클린산업’ 구성원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저희는 농업법인 회사입니다. 제가 대표로 있고 밑에 본부장님 계시고 그 다음에 생산, 배송 이렇게 담당하는 분들이 계시고요. 또 한 가지는 요식업인데 지금 인터뷰하는 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아까 일본 얘기를 했었는데 이 카페 메뉴가 다 일본에서 가져온 거예요. 일본의 셰프를 통해서 레시피 교육을 받았죠. 저희가 앞으로 식품 쪽으로도 상품개발을 하려고 준비 중인데 ‘콜라겐 젤리’라고 이것도 일본에서 배워온 기술로 상품을 개발해서 공항에서 한 달 간 시식 행사도 진행했어요.

이제 세제회사에서 식품 쪽으로도 확장을 하시는 거네요.
저희 세제 제품은 대용량 제품과 소용량 제품 두 가지가 있는데 내부적으로 정리가 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용량보다는 소용량에 집중하자는 의견이죠. 세제도 세제지만 사실 저희는 식품 쪽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싶거든요. 고내에 작은 공장도 있어요. 해썹 공장으로 식품 가공을 하고 있어요. ‘콜라겐 젤리’도 대형마트에서 독점 요청이 왔는데 현재로서는 독점 계약엔 좀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세제는 어떤 상품들이 있는지 소개 좀 해주세요.
저희가 2년 전부터 기획을 해서 올해 소용량으로 나온게 주방세제, 물비누, 거품비누 그리고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 소독제 두 품목 이렇게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전부 대용량 세제만 판매했고요. 그런데 소용량은 작년에 처음 패키지 구성을 하면서 시행착오가 좀 있었어요.
어떤 면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던 건가요?
구성을 잘못한 부분도 있고 용기의 디자인도 많이 부족했고요. 저희 팀원 구성 자체가 워낙 대용량 세제 위주로 꾸려져 있다 보니 소용량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역량 부족이 가장 컸죠. 당시 지원사업이 있어서 그 사업을 통해 소용량 패키지를 구성하고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시작했던 일이라 전체적으로 저희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을 통해서 진행이 되지 못한 점도 있고 지원사업 일정에 맞추느라 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보니 ‘클린산업’만의 의미 부여도 부족했고 저희만의 색깔도 드러나지 않았고요. 사전에 소용량 전담팀을 꾸리고 제대로 기획을 하고 시작했어야 했는데 미처 그런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진행이 되었으니 탈이 난거죠. 그리고 처음에는 판매를 시작하려고 해도 저희 세제의 특성이 일반마트에서 판매되는 세제보다 제조 원가가 비싸다 보니 영업 방식이라든지 입점 방식에서도 특수 타겟을 설정해서 가야 할 부분인데 그 부분을 모르고 시작을 한 것도 큰 문제였어요.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기존의 거래처들은 대부분 일반 유통 쪽이니까 기존의 상품들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매입가 앞에서 아예 영업 자체가 딱 막혀버리게 된 겁니다. 지금은 그래도 다행히 조금씩 온라인 입점도 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하고 매출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클린산업’의 실제 매출은 아직까지는 그래도 대용량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군요.
그렇죠. 매출 비중은 분명히 대용량 제품이 크긴 한데 부가가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무래도 효율적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그래서 소용량 쪽으로 집중해보자는 생각도 있는 거고요.
어쨌든 작년의 그 실패를 올해는 어떤 방식으로 복구를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좀 더 전문적인 인력으로 팀을 꾸려서 디자인도 바꾸고 차근차근 여러 부족한 점들을 보완했어요. 제조 쪽에서도 패키지 구성하는 게 쉽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모르면 발로 뛰면서 해결을 해나갔고요. 세제의 레시피 재형이 바뀌었는데 용기도 초반에는 속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하얀색 용기를 썼다면 이걸 내용물이 보이는 투명한 용기로 교체했고, 내용물도 초반에는 투명 액체였다면 지금은 감귤색으로 바뀌었고요. 감귤 껍질로 색을 낸 천연 색소로 저희가 만들어낸 색인데 이전의 투명색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라벨 디자인에도 ‘클린산업’의 이미지를 녹여내려고 노력했고요. 이렇게 전체적으로 변화를 주고 보완을 하고 나니 이제는 여기저기서 문의도 많이 오고 판매도 괜찮게 되고 있는 편입니다. 현재 제주공항에서도 저희 제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물비누의 경우는 제주공항 의 전체 화장실에 다 비치가 되어 있어서 홍보가 많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공항 화장실에서 저희 제품을 써보신 분들이 문의를 많이 주시거든요. 공항 자체에서도 문의가 많이 들어오니 저희 라벨을 붙여주셨어요. 주변에서는 제주공항에서 그렇게 클린산업 라벨을 붙이게 해준 건 정말 엄청난 소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큰 성과죠.

사업을 하시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어오셨는데 그 중 가장 큰 어려움을 꼽으신다면요.
아무래도 사람이죠. 각 분야마다 실력 있는 사람을 배치해서 효율성을 높여가고 싶은데 여러 가지 한계가 있어요. 소용량 패키지 상품도 처음에 비하면 만족스럽고 온라인 판매를 통해 소비자들의 피드백도 직접적으로 많이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막상 어떤 부분이 모자라거나 필요해도 팀원들 중 해당 분야의 경력자가 없으면 역량이 부족하고 많이 더디죠. 제조 분야는 여러 면에서 제품을 만들기 이전 단계도 중요하지만 만든 다음에 생산과 포장 과정에서 전문적인 핵심 관리자가 필요하고 경험도 있어야 하는데 매번 적임자를 만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지역적인 면에서도 하귀라고 하면 너무 멀어서 출퇴근이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어렵게 사람을 구해도 월급 얼마 더 준다고 하면 쉽게 회사를 옮겨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그럴 땐 상처를 받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실은 현재 이 문제보다 더 심각한 고민이 하나 있긴 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저희가 카페와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계약이 내년 말까지거든요. 그런데 땅주인이 갑자기 변심을 하는 바람에 회사를 이전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계약 만료일까지 나가든지 아니면 월세를 지금의 세 배를 내라고 하시네요. 저희도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지만 아직 여건이 마련된 상태가 아니라서 걱정입니다. 카페만 있는 게 아니라 공장이 함께 있다 보니 탱크나 배관 같은 시설 설비 때문에 이전 문제가 간단하지가 않은 상태입니다. 이 공간은 2018년 말에 저희가 공사를 하고 19년도에 오픈을 했거든요. 원래 사무실이었던 공간을 저희가 직접 다 공사하고 만들었어요. 카페가 꽤 알려져서 운영이 잘 되고 있다 보니 집주인이 변심을 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네요. 애월도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가 굉장히 많은 지역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방송이다 뭐다 해서 유명 관광지가 되어버려서 주인 입장에서는 욕심이 나셨겠죠. 그러면 옮겨가실 공장 부지라든지 이런 것들은 어떻게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지금은 제주도 전체가 땅값이 너무 많이 올라가 있는 상태고 해서 적당한 곳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긴 한데 쉽지는 않습니다. 저희 입장에는 좀 한적한 곳에서 농업을 기반으로 저희 제품의 원천인 귤 농사를 직접 하고 관광 요소도 가미된 그런 생활 공장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그 구상을 실행으로 옮기려고 하니 난관이 너무 많아요. 원칙상 오수관이 있어야 되는데 자체 오수관 시설을 하려고 해도 고도 제한 등에 걸리니까 설사 공장을 지을 만한 부지가 있다 해도 이런저런 제약에 다 해당되고 그렇죠. 이전에는 가능했던 것들도 2018년도부터 규제가 더 강화되다 보니 저희로서는 막막한 거죠. 하지만 이런 것도 회사를 키워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봐야 하니까 돌파해 나가봐야죠.
현재 대표님 앞에 너무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미래의 계획은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제주클린산업’이 2016년 1월 1일에 첫출발을 해서 만으로 정확히 6년이 되었어요. 처음엔 대용량 세제로 시작을 했고 작년 2021년 구정 설날에 소용량 패키지 상품을 런칭해서 다행히 지금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2021년은 ‘제주클린산업’에게는 변화의 시작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제를 넘어서 식품 분야에까지 새롭게 진출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2022년은 저희에게 새로운 도약의 해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장 이전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 해결을 해볼 거고요. 최근에 좋은 소식은 미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등에서 바이어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어요. 해외시장 진출을 준비해 나가면서 수출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2022년의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제주클린산업’의 성공적인 해외진출을 기원하겠습니다. 공장 이전 문제도 순조롭게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요.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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