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상
송해인 대표는 한국예술종학교에서는 창작을, 영국 브루넬대학교에서는 디지털 공연연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끊임없이 자기만의 창작 세계를 넓혀왔다. 영국 유학을 떠나기 전 한국전통예술을 배우려 찾은 제주에서 송해인 대표는 또 다른 인연과 이야기를 마주한다. 거기서 만들어진 인연과 이야기는 송해인 대표를 다시 제주로 이끌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에서 만나본 사람
여덟 번째. [인스피어] 송해인

(주)인스피어 송해인 대표 Ⓒ(주)인스피어
해인 님이 제주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해인 : 영국 유학을 떠나기 전, 한국전통예술을 배우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제가 배웠던 한국무용은 신무용 이후의 한국무용에 가까웠거든요. 그래서 더 원형적인 한국예술을 유학을 떠나기 전에 배우고 싶었어요. 당시 약 3년간 '(사)마로' 공연팀(전 전통공연예술개발원 마로)에서 전통 소리, 춤, 그리고 판굿을 배우며 한국전통공연을 익혔죠. 그러다 제주큰굿보존회 '서순실 심방'님을 만나 굿을 배우게 되었고, 이 경험을 통해 굿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제주 예술을 접할 수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유학 시절까지 영향을 끼쳤나요?
해인 : 영국 유학 시절 제주에서 경험한 굿에 큰 영감을 받아 굿(shamanic, ritual technologies)과 디지털 기술(digital technologies)을 결합을 Ecstatic Space라는 PhD논문을 쓰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도 제주큰굿보존회와 마로 팀의 도움을 받았죠. 영국에서도 두 팀과의 협업을 계속 이어갔어요. 특히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제주 마로 팀과 3년 연속으로 공연을 함께하며 제주와의 인연을 더욱 돈독히 하기도 했고요.
계속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셨군요.
해인: 네. 하지만 제주를 중심으로 기반을 잡게 된 건 좀 갑작스럽게 이뤄졌어요. 제가 제주에 공연하러 나왔다가 코로나19가 터졌거든요. 영국으로의 복귀가 어려워졌고 당시에는 영영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 계기로 제주에서 창업 지원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코로나 19 시기여도 아마 제주가 아니라 서울을 선택하셨을 수도 있으셨을텐데요.
해인 : 네, 물론 갑작스러운 상황도 있었지만, 제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의 환경적 매력과 작업의 집중도 때문이었어요. 서울에 있을 때에는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디어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면, 제주에서는 전통과 제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던 것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운 환경은 창작 과정에서 큰 영감을 주었고,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피로도도 훨씬 줄었습니다. 제 스스로 제주도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탐구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제주에 있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인스피어 홍보영상 中Ⓒ(주)인스피어

인스피어 홍보영상 中 Ⓒ(주)인스피어
어떤 지점에서 ‘굿’과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해인 : 제주에서 전통을 배우던 시기에 제주큰굿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제주큰굿은 한국굿 중에서 '세습무'와 '강신무'가 공존하는 독특한 굿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요. 다른 지역의 굿들에 비해 공연화되지 않아 굿의 원헝적인 요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특히, 제주큰굿의 심방님(제주 무당)은 단순히 굿을 진행하는 주체를 넘어 제주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마치 제주도의 큰어머니 같은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굿이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제주의 신화 대부분이 굿의 본풀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제주큰굿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문화적 보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원래 전통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많았고, 제주 전통음악과 춤,신화 등은 굿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설화도 전통적 요소로 인식되었고요. 굿과 설화는 각각 제주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였고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구의 중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제주굿과 설화는 제주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습니다.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해 해인 님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공연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디지털 아트의 방식으로 다양한 작품을 표현하고 계셔요.
해인 : 디지털 아트는 처음부터 제 공연의 한 요소였어요. 저는 대학 시절부터 영상 제작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제주에서의 경험을 통해 디지털과 샤머니즘의 결합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제주 굿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신화적이고 무형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디어파사드에서 프로젝션 빛은 눈에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세계를 만듭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졌지만, 굿의 세계를 디지털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빛의 활용은 매우 자연스럽고 적합하다고 느꼈어요.
저에게 디지털 예술은 프로젝션맵핑으로 처음 접해서인지 빛으로 구성된 세계였습니다. 이 빛의 세계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반영된 묘한 질감을 가진 공간으로,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특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세계는 이러한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며, 예술적 영감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습니다.
과거 무대에서 그림으로 배경과 환경이 변화하던 방식처럼, 미디어아트는 공간 전체를 변화시키고 다양한 현실을 창조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단일한 현실에 머물지 않고, AR(증강 현실), VR(가상 현실), MR(혼합 현실), XR(확장 현실) 등 다양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이런 현실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서, 예술적 표현을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디지털 예술을 기술적 도구를 넘어 전시와 공연에서 공간과 상상력을 확장하는 중요한 표현 소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디지털이 만드는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는 가능성의 장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창조하는 과정이 저에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물론이고 꾸준하고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소개하고 싶은 대표 창작이나,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관람/참여할 수 있는 공연은 무엇이 있나요.
해인 : 올해 10월, 인스피어의 첫 기획작인 <XR 공연 도채비>(https://dochaebi.framer.website/)를 제작했습니다. 도채비는 제주도 도깨비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제주무형문화재 영감본풀이에 등장하는 일곱 도채비 형제의 막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주 도깨비의 특징과 바다를 사랑하는 풍어신으로서의 도채비 이야기를 담아내며, 제주의 전통과 현대 기술을 결합한 독특한 콘텐츠입니다.
도채비 공연은 제주콘텐츠진흥원 지역특화 콘텐츠 지원사업의 도움으로 제작되어, 비인 공연장에서 총 5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내년에도 이 작품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며, 공연장 기획공연 또는 축제의 행사 공연의 형태로 관객들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추천작은 메타버스 기반 온라인 이머시브 공연 미여지뱅뒤(https://miyeojibaengdui.framer.website/)입니다. 이 작품은 게임 형식으로 제작되어, 관객이 컴퓨터에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지난 12월 7일 서울의 PC방에서 열린 공개 행사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 관객들이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공연을 경험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 주목받았습니다.
도채비는 제주의 전통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XR 공연으로, 미여지뱅뒤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이머시브 공연으로, 각각 다른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두 작업 모두 새로운 방식으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며 관객에게 독창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관객들이 이 두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XR 공연 도채비 中 Ⓒ(주)인스피어

미여지뱅뒤 메이킹 영상 中 Ⓒ(주)인스피어
만들고 계신 공연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았으니 이제 운영하고 계신 ‘인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도 좀 나눠보고 싶습니다. 정확히 ‘인스피어’가 어떻게 이뤄진 팀이고, 무슨 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인지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인 : 인스피어는 다양한 예술 전공을 가진 디지털 기술자들로 이루어진 팀입니다.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예술적 배경에서 출발하여 디지털 아트와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모인 팀입니다. 예를 들어, 한예종에서 발레를 전공하다가 그래픽디자인 일은 하게 된 오경석님, 일본에서 미디어아트로 일을 한 오한임님, 미술 철학을 연구하다가 디지털 아트로 관심을 넓힌 박문희님, 그리고 무대 예술을 기반으로 디지털 예술에 도전한 이연주님 등 총 8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디지털 기술을 탐구하며, 예술적 디지털 기술에 대한 물음과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인스피어는 아트와 테크를 결합한 아트테크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 시작은 제주도에서 창업 지원금을 받으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초기에는 두 명의 청년(오한임,오경석님)을 고용해 함께 작업을 시작했는데, 호흡이 잘 맞고 협업이 원활해 사업이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또한, 인스피어는 전통 예술의 대중화와 예술가 활동의 장 마련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제주도에서 전통 예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전통 예술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확산시키며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스피어를 설립하시게 된 구체적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순간이 인스피어를 만들게 했는지, 그리고 인스피어라는 이름의 뜻도 궁금합니다.
해인 : 인스피어는 *인(Inspiration, 영감)*과 *스피어(Atmosphere, 분위기/공간)*를 결합한 이름으로, 영감을 주는 공간과 분위기를 뜻합니다. 저는 공연이든 전시든 하나의 공간을 제작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그 공간에 머무는 동안 현실을 벗어난 새로운 경험을 통해 힐링, 영감, 그리고 예술적 감동을 느끼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확장하기 위해 인스피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만들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상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창업 지원금을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창업을 하면서, 작업을 혼자서 진행하기보다는 팀원들과 협업하여 작업의 방향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디지털 작업과 영상 제작은 다수의 손길과 아이디어가 필요한 작업이기에, 자연스럽게 팀을 구성하고 회사의 형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인스피어는 공연, 전시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통해 현실을 넘어선 공간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예술적 경험과 영감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인스피어 홍보영상 中 Ⓒ(주)인스피어
전통 설화의 현대적 변주, 그리고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시도는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견 보기에 상반적으로 보이는 이 두 가치가 효과적으로 결합되기 위해 창작 시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해인 :전통 설화와 디지털 아트처럼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치를 결합하는 창작 과정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전통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본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제가 굿과 디지털 아트를 결합하는 작업을 처음 시도했을 때 깨달은 점은, 디지털이 전통을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심방님께서도 이 융합 공연에서 가장 기쁘게 생각하셨던 것이 ‘아이들이 많이 보러 왔다’라는 부분인데 전통굿은 아이들에게 무섭거나 멀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표현하니 아이들조차 흥미롭게 받아들이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은 전통의 대중화를 위한 강력한 도구로 작용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통을 디지털로 표현할 때, 단순히 전통을 '신박'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가진 상상의 환경과 스토리를 디지털 기술로 시각화하여 사람들에게 더 자연스럽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전통을 단순히 현대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통의 본질적 가치를 확장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결과적으로, 전통과 디지털의 결합은 상반된 가치의 융합이라기보다, 서로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전통은 현대 관객들과 더 깊은 연결을 맺을 수 있고, 디지털은 더 풍부한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과 디지털 모두가 본래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스피어 홍보영상 中 Ⓒ(주)인스피어
실제로 제주굿을 디지털 아트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으로 둔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해인 : 제주굿을 디지털 아트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세 가지였습니다.
먼저, 심방님의 세계를 디지털로 시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주 심방님들은 굿 의뢰를 진행할 때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장면이나 초감재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를 묘사하시곤 했습니다. 이러한 심방님들의 상상 속 세계를 디지털 기술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샤먼의 굿의례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5가지 Shamanic User Interface(SUI)로 정의하였고 이를 디지털기술로 응용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아트가 관객들에게 심방님들이 느끼는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를 더 실감나게 느끼는 도구로 활용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두 번째는 디지털과 공연의 조화입니다. 디지털 아트는 큰 시각적 효과를 가지지만, 굿의 흐름과 의례를 가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디지털 요소가 공연의 주체를 압도하거나 본질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디지털과 전통 공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공연의 흐름에 따라 디지털 표현이 유기적으로 변화하도록 설계하여, 디지털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굿의 일부로 기능하도록 연출하고자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즉흥성과 유연성 유지입니다. 전통 굿은 즉흥적인 요소가 많아 정해진 틀이나 시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아트 역시 고정된 영상이나 연출이 아니라, 공연 현장에서 변화를 반영할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조정 가능한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디지털과 전통 공연이 유연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두 가지였습니다. 심방님들의 상상 세계를 정확히 시각화하는 것이었는데 심방님들이 묘사한 세계는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경우가 많아 이를 디지털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많은 고민과 시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즉흥성과 디지털의 융합이었는데 디지털 작업은 기본적으로 정해진 구조에 맞춰 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통 굿의 즉흥성을 구현하기 위해 기술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도전 과제였습니다. 실시간으로 연출을 조정하고 반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공연은 결국 관객이 만들어가는 예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상적인 관객의 후기나 반응이 있었다면 궁금합니다.
해인 : 저도 공연은 관객과의 교감에서 완성된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후기는 항상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제가 현대무용과 창작 작업을 할 때는 주로 사유와 질문을 던지는 공연을 제작했지만, 전통 예술을 접한 뒤에는 전통이 가진 본질적인 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통은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사고를 유도한다기 보다는, 한과 흥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예술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깊이 남는 후기들은 "공연을 보면서 너무 즐거웠다", "신나게 웃었다"는 반응이나, 때로는 공연 중 울기도 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해주시는 경우입니다.
최근에는 저희의 온라인 이머시브 공연 '미여지뱅뒤'에 대해 들었던 후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 공연은 실공연자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고 디지털 휴먼 퍼포머와 함께하는 디지털 기반 공연이었는데도, 관객 중 한 분이 공연을 다 보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마음의 큰 위로가 되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제가 창작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결국, 전통과 디지털, 그리고 현대적인 요소가 어우러진 작품이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넘어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는 감정과 공감을 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준 후기였습니다.
인스피어를 통해 이루고 싶은 가치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현재 집중하는 제주의 다양한 전통 문화의 디지털적 재해석이 잊혀지고 있는 다양한 신화나 설화로까지 이어질수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해인 : 제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어찌보면 단순한데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술 창작을 지속하며 안정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예술 단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창작 활동 외에 부업이나 교육사업 등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현실을 보며, 예술 자체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목표가 자연스럽게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통해 한 방향으로 연구하고 발전해 나가는 팀으로 성장하는 것이 꿈입니다. 보통은 예술가가 기술자에게 용역을 요청하며 작업을 하거나 반대의 경우로 작업을 하는데 단기간에 협업을 완성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함께 가치를 추구하며 연구와 창작을 이어가는 팀이 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어, 제주도의 전통과 설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제주도에 있게 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갈 것 같습니다.
동시에 5년 내에 염두하고 있는 [인스피어]의 미래와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해인 : 먼저, 요즘 너무 어려워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단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장기적으로는 인스피어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공간은 상설 전시관이나 공연장 같은 형태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꼭 자체 공간이 아니더라도, 임대나 협업을 통해 다른 공간에서 인스피어의 작품 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공간을 통해 인스피어만의 창작 활동을 더욱 확장시키고,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기업 대표의 삶, 예술가로의 삶, 사회적 기업가로의 삶을 동시에 모두 경험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 송혜인 대표님의 정의하는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지. 그리고 인스피어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해인 : 저는 원래 예술가로 살아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창작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법인 대표가 되고,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게 되면서 기업가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예술가적 사고와 기업가적 사고의 차이를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기업가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기업가적 마인드를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예술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큽니다. 이러한 중간 지점에서 예술기업의 방향성, 가치, 그리고 내부 문화에 대해 고민하며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 윤리와 예술적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예술기업으로서 나아갈 방향과 가치를 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원들과 어떤 형태로 협력하며 건강한 기업 문화를 형성할 것인지, 그리고 예술과 기업의 융합을 통해 어떠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 중입니다.
결국, 인스피어의 아이덴티티는 예술적 가치를 중심에 두면서도, 지속 가능한 ‘예술기업’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구축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저 스스로의 혼란과 고민 속에서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스피어 임직원 단체 사진 Ⓒ(주)인스피어
나오며,
처음부터 끝까지 송해인 대표는 진지하고 진중한 태도로 자신이 다루고 있는 것에 온 마음을 다해 답변하고 있었습니다. 예술에만 집중하는 것 그리고 기업가적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얼핏 보기에 매우 모순적이고 충돌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통과 미디어 아트를 엮어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 두가지 모습 역시 합쳐질 모습이 기대 되었습니다.
종이잡지클럽이 선물한 잡지

와나 매거진 - 몸
하나의 테마를 꼽아 미학적인 의미로 탐구하는 잡지 <와 나>의 두번째 테마는 바로 ‘몸’입니다. [와 나] 매거진 2호는 함께한 여섯 팀의 안무가와 무용수가 생각하는 몸과 육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몸과 육체에 대해 떠올리고, 공연과 예술에 대해 닿고 싶어 하는 마음이 송해인 대표의 마음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 선물로 드렸습니다.

어반라이크 - Calling Art
매 호마다 하나의 주제를 깊이 탐구하는 잡지 <어반라이크>의 43호 이슈는 ‘아트 컬렉터 입문기 : CALLING ART’입니다. 이번 <어반라이크>는 종이책의 한계에서 벗어나, 물리적 영향을 받지 않은 유동적인 매체라는 특성을 살려 ‘지면 전시’라는 새로운 역할을 시도합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있는 탐구와, 정해진 방식이 아닌 다양한 가치를 융합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인스피어>의 공연 철학과 닿아있는 것 같아 선물 드렸습니다.
글 - 종이잡지클럽
사진 제공 - 인스피어
전통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상
송해인 대표는 한국예술종학교에서는 창작을, 영국 브루넬대학교에서는 디지털 공연연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끊임없이 자기만의 창작 세계를 넓혀왔다. 영국 유학을 떠나기 전 한국전통예술을 배우려 찾은 제주에서 송해인 대표는 또 다른 인연과 이야기를 마주한다. 거기서 만들어진 인연과 이야기는 송해인 대표를 다시 제주로 이끌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에서 만나본 사람
여덟 번째. [인스피어] 송해인
(주)인스피어 송해인 대표 Ⓒ(주)인스피어
해인 님이 제주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해인 : 영국 유학을 떠나기 전, 한국전통예술을 배우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제가 배웠던 한국무용은 신무용 이후의 한국무용에 가까웠거든요. 그래서 더 원형적인 한국예술을 유학을 떠나기 전에 배우고 싶었어요. 당시 약 3년간 '(사)마로' 공연팀(전 전통공연예술개발원 마로)에서 전통 소리, 춤, 그리고 판굿을 배우며 한국전통공연을 익혔죠. 그러다 제주큰굿보존회 '서순실 심방'님을 만나 굿을 배우게 되었고, 이 경험을 통해 굿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제주 예술을 접할 수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유학 시절까지 영향을 끼쳤나요?
해인 : 영국 유학 시절 제주에서 경험한 굿에 큰 영감을 받아 굿(shamanic, ritual technologies)과 디지털 기술(digital technologies)을 결합을 Ecstatic Space라는 PhD논문을 쓰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도 제주큰굿보존회와 마로 팀의 도움을 받았죠. 영국에서도 두 팀과의 협업을 계속 이어갔어요. 특히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제주 마로 팀과 3년 연속으로 공연을 함께하며 제주와의 인연을 더욱 돈독히 하기도 했고요.
계속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셨군요.
해인: 네. 하지만 제주를 중심으로 기반을 잡게 된 건 좀 갑작스럽게 이뤄졌어요. 제가 제주에 공연하러 나왔다가 코로나19가 터졌거든요. 영국으로의 복귀가 어려워졌고 당시에는 영영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 계기로 제주에서 창업 지원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코로나 19 시기여도 아마 제주가 아니라 서울을 선택하셨을 수도 있으셨을텐데요.
해인 : 네, 물론 갑작스러운 상황도 있었지만, 제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의 환경적 매력과 작업의 집중도 때문이었어요. 서울에 있을 때에는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디어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면, 제주에서는 전통과 제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던 것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운 환경은 창작 과정에서 큰 영감을 주었고,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피로도도 훨씬 줄었습니다. 제 스스로 제주도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탐구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제주에 있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인스피어 홍보영상 中Ⓒ(주)인스피어
인스피어 홍보영상 中 Ⓒ(주)인스피어
어떤 지점에서 ‘굿’과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해인 : 제주에서 전통을 배우던 시기에 제주큰굿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제주큰굿은 한국굿 중에서 '세습무'와 '강신무'가 공존하는 독특한 굿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요. 다른 지역의 굿들에 비해 공연화되지 않아 굿의 원헝적인 요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특히, 제주큰굿의 심방님(제주 무당)은 단순히 굿을 진행하는 주체를 넘어 제주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마치 제주도의 큰어머니 같은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굿이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제주의 신화 대부분이 굿의 본풀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제주큰굿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문화적 보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원래 전통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많았고, 제주 전통음악과 춤,신화 등은 굿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설화도 전통적 요소로 인식되었고요. 굿과 설화는 각각 제주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였고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구의 중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제주굿과 설화는 제주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습니다.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해 해인 님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공연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디지털 아트의 방식으로 다양한 작품을 표현하고 계셔요.
해인 : 디지털 아트는 처음부터 제 공연의 한 요소였어요. 저는 대학 시절부터 영상 제작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제주에서의 경험을 통해 디지털과 샤머니즘의 결합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제주 굿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신화적이고 무형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디어파사드에서 프로젝션 빛은 눈에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세계를 만듭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졌지만, 굿의 세계를 디지털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빛의 활용은 매우 자연스럽고 적합하다고 느꼈어요.
저에게 디지털 예술은 프로젝션맵핑으로 처음 접해서인지 빛으로 구성된 세계였습니다. 이 빛의 세계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반영된 묘한 질감을 가진 공간으로,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특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세계는 이러한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며, 예술적 영감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습니다.
과거 무대에서 그림으로 배경과 환경이 변화하던 방식처럼, 미디어아트는 공간 전체를 변화시키고 다양한 현실을 창조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단일한 현실에 머물지 않고, AR(증강 현실), VR(가상 현실), MR(혼합 현실), XR(확장 현실) 등 다양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이런 현실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서, 예술적 표현을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디지털 예술을 기술적 도구를 넘어 전시와 공연에서 공간과 상상력을 확장하는 중요한 표현 소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디지털이 만드는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는 가능성의 장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창조하는 과정이 저에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물론이고 꾸준하고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소개하고 싶은 대표 창작이나,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관람/참여할 수 있는 공연은 무엇이 있나요.
해인 : 올해 10월, 인스피어의 첫 기획작인 <XR 공연 도채비>(https://dochaebi.framer.website/)를 제작했습니다. 도채비는 제주도 도깨비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제주무형문화재 영감본풀이에 등장하는 일곱 도채비 형제의 막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주 도깨비의 특징과 바다를 사랑하는 풍어신으로서의 도채비 이야기를 담아내며, 제주의 전통과 현대 기술을 결합한 독특한 콘텐츠입니다.
도채비 공연은 제주콘텐츠진흥원 지역특화 콘텐츠 지원사업의 도움으로 제작되어, 비인 공연장에서 총 5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내년에도 이 작품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며, 공연장 기획공연 또는 축제의 행사 공연의 형태로 관객들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추천작은 메타버스 기반 온라인 이머시브 공연 미여지뱅뒤(https://miyeojibaengdui.framer.website/)입니다. 이 작품은 게임 형식으로 제작되어, 관객이 컴퓨터에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지난 12월 7일 서울의 PC방에서 열린 공개 행사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 관객들이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공연을 경험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 주목받았습니다.
도채비는 제주의 전통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XR 공연으로, 미여지뱅뒤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이머시브 공연으로, 각각 다른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두 작업 모두 새로운 방식으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며 관객에게 독창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관객들이 이 두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XR 공연 도채비 中 Ⓒ(주)인스피어
미여지뱅뒤 메이킹 영상 中 Ⓒ(주)인스피어
만들고 계신 공연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았으니 이제 운영하고 계신 ‘인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도 좀 나눠보고 싶습니다. 정확히 ‘인스피어’가 어떻게 이뤄진 팀이고, 무슨 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인지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인 : 인스피어는 다양한 예술 전공을 가진 디지털 기술자들로 이루어진 팀입니다.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예술적 배경에서 출발하여 디지털 아트와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모인 팀입니다. 예를 들어, 한예종에서 발레를 전공하다가 그래픽디자인 일은 하게 된 오경석님, 일본에서 미디어아트로 일을 한 오한임님, 미술 철학을 연구하다가 디지털 아트로 관심을 넓힌 박문희님, 그리고 무대 예술을 기반으로 디지털 예술에 도전한 이연주님 등 총 8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디지털 기술을 탐구하며, 예술적 디지털 기술에 대한 물음과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인스피어는 아트와 테크를 결합한 아트테크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 시작은 제주도에서 창업 지원금을 받으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초기에는 두 명의 청년(오한임,오경석님)을 고용해 함께 작업을 시작했는데, 호흡이 잘 맞고 협업이 원활해 사업이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또한, 인스피어는 전통 예술의 대중화와 예술가 활동의 장 마련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제주도에서 전통 예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전통 예술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확산시키며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스피어를 설립하시게 된 구체적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순간이 인스피어를 만들게 했는지, 그리고 인스피어라는 이름의 뜻도 궁금합니다.
해인 : 인스피어는 *인(Inspiration, 영감)*과 *스피어(Atmosphere, 분위기/공간)*를 결합한 이름으로, 영감을 주는 공간과 분위기를 뜻합니다. 저는 공연이든 전시든 하나의 공간을 제작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그 공간에 머무는 동안 현실을 벗어난 새로운 경험을 통해 힐링, 영감, 그리고 예술적 감동을 느끼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확장하기 위해 인스피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만들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상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창업 지원금을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창업을 하면서, 작업을 혼자서 진행하기보다는 팀원들과 협업하여 작업의 방향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디지털 작업과 영상 제작은 다수의 손길과 아이디어가 필요한 작업이기에, 자연스럽게 팀을 구성하고 회사의 형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인스피어는 공연, 전시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통해 현실을 넘어선 공간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예술적 경험과 영감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인스피어 홍보영상 中 Ⓒ(주)인스피어
전통 설화의 현대적 변주, 그리고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시도는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견 보기에 상반적으로 보이는 이 두 가치가 효과적으로 결합되기 위해 창작 시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해인 :전통 설화와 디지털 아트처럼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치를 결합하는 창작 과정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전통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본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제가 굿과 디지털 아트를 결합하는 작업을 처음 시도했을 때 깨달은 점은, 디지털이 전통을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심방님께서도 이 융합 공연에서 가장 기쁘게 생각하셨던 것이 ‘아이들이 많이 보러 왔다’라는 부분인데 전통굿은 아이들에게 무섭거나 멀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표현하니 아이들조차 흥미롭게 받아들이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은 전통의 대중화를 위한 강력한 도구로 작용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통을 디지털로 표현할 때, 단순히 전통을 '신박'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가진 상상의 환경과 스토리를 디지털 기술로 시각화하여 사람들에게 더 자연스럽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전통을 단순히 현대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통의 본질적 가치를 확장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결과적으로, 전통과 디지털의 결합은 상반된 가치의 융합이라기보다, 서로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전통은 현대 관객들과 더 깊은 연결을 맺을 수 있고, 디지털은 더 풍부한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과 디지털 모두가 본래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스피어 홍보영상 中 Ⓒ(주)인스피어
실제로 제주굿을 디지털 아트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으로 둔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해인 : 제주굿을 디지털 아트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세 가지였습니다.
먼저, 심방님의 세계를 디지털로 시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주 심방님들은 굿 의뢰를 진행할 때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장면이나 초감재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를 묘사하시곤 했습니다. 이러한 심방님들의 상상 속 세계를 디지털 기술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샤먼의 굿의례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5가지 Shamanic User Interface(SUI)로 정의하였고 이를 디지털기술로 응용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아트가 관객들에게 심방님들이 느끼는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를 더 실감나게 느끼는 도구로 활용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두 번째는 디지털과 공연의 조화입니다. 디지털 아트는 큰 시각적 효과를 가지지만, 굿의 흐름과 의례를 가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디지털 요소가 공연의 주체를 압도하거나 본질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디지털과 전통 공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공연의 흐름에 따라 디지털 표현이 유기적으로 변화하도록 설계하여, 디지털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굿의 일부로 기능하도록 연출하고자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즉흥성과 유연성 유지입니다. 전통 굿은 즉흥적인 요소가 많아 정해진 틀이나 시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아트 역시 고정된 영상이나 연출이 아니라, 공연 현장에서 변화를 반영할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조정 가능한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디지털과 전통 공연이 유연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두 가지였습니다. 심방님들의 상상 세계를 정확히 시각화하는 것이었는데 심방님들이 묘사한 세계는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경우가 많아 이를 디지털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많은 고민과 시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즉흥성과 디지털의 융합이었는데 디지털 작업은 기본적으로 정해진 구조에 맞춰 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통 굿의 즉흥성을 구현하기 위해 기술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도전 과제였습니다. 실시간으로 연출을 조정하고 반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공연은 결국 관객이 만들어가는 예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상적인 관객의 후기나 반응이 있었다면 궁금합니다.
해인 : 저도 공연은 관객과의 교감에서 완성된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후기는 항상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제가 현대무용과 창작 작업을 할 때는 주로 사유와 질문을 던지는 공연을 제작했지만, 전통 예술을 접한 뒤에는 전통이 가진 본질적인 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통은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사고를 유도한다기 보다는, 한과 흥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예술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깊이 남는 후기들은 "공연을 보면서 너무 즐거웠다", "신나게 웃었다"는 반응이나, 때로는 공연 중 울기도 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해주시는 경우입니다.
최근에는 저희의 온라인 이머시브 공연 '미여지뱅뒤'에 대해 들었던 후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 공연은 실공연자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고 디지털 휴먼 퍼포머와 함께하는 디지털 기반 공연이었는데도, 관객 중 한 분이 공연을 다 보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마음의 큰 위로가 되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제가 창작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결국, 전통과 디지털, 그리고 현대적인 요소가 어우러진 작품이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넘어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는 감정과 공감을 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준 후기였습니다.
인스피어를 통해 이루고 싶은 가치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현재 집중하는 제주의 다양한 전통 문화의 디지털적 재해석이 잊혀지고 있는 다양한 신화나 설화로까지 이어질수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해인 : 제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어찌보면 단순한데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술 창작을 지속하며 안정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예술 단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창작 활동 외에 부업이나 교육사업 등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현실을 보며, 예술 자체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목표가 자연스럽게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통해 한 방향으로 연구하고 발전해 나가는 팀으로 성장하는 것이 꿈입니다. 보통은 예술가가 기술자에게 용역을 요청하며 작업을 하거나 반대의 경우로 작업을 하는데 단기간에 협업을 완성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함께 가치를 추구하며 연구와 창작을 이어가는 팀이 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어, 제주도의 전통과 설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제주도에 있게 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갈 것 같습니다.
동시에 5년 내에 염두하고 있는 [인스피어]의 미래와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해인 : 먼저, 요즘 너무 어려워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단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장기적으로는 인스피어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공간은 상설 전시관이나 공연장 같은 형태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꼭 자체 공간이 아니더라도, 임대나 협업을 통해 다른 공간에서 인스피어의 작품 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공간을 통해 인스피어만의 창작 활동을 더욱 확장시키고,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기업 대표의 삶, 예술가로의 삶, 사회적 기업가로의 삶을 동시에 모두 경험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 송혜인 대표님의 정의하는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지. 그리고 인스피어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해인 : 저는 원래 예술가로 살아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창작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법인 대표가 되고,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게 되면서 기업가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예술가적 사고와 기업가적 사고의 차이를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기업가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기업가적 마인드를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예술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큽니다. 이러한 중간 지점에서 예술기업의 방향성, 가치, 그리고 내부 문화에 대해 고민하며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 윤리와 예술적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예술기업으로서 나아갈 방향과 가치를 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원들과 어떤 형태로 협력하며 건강한 기업 문화를 형성할 것인지, 그리고 예술과 기업의 융합을 통해 어떠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 중입니다.
결국, 인스피어의 아이덴티티는 예술적 가치를 중심에 두면서도, 지속 가능한 ‘예술기업’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구축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저 스스로의 혼란과 고민 속에서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스피어 임직원 단체 사진 Ⓒ(주)인스피어
나오며,
처음부터 끝까지 송해인 대표는 진지하고 진중한 태도로 자신이 다루고 있는 것에 온 마음을 다해 답변하고 있었습니다. 예술에만 집중하는 것 그리고 기업가적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얼핏 보기에 매우 모순적이고 충돌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통과 미디어 아트를 엮어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 두가지 모습 역시 합쳐질 모습이 기대 되었습니다.
종이잡지클럽이 선물한 잡지
와나 매거진 - 몸
하나의 테마를 꼽아 미학적인 의미로 탐구하는 잡지 <와 나>의 두번째 테마는 바로 ‘몸’입니다. [와 나] 매거진 2호는 함께한 여섯 팀의 안무가와 무용수가 생각하는 몸과 육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몸과 육체에 대해 떠올리고, 공연과 예술에 대해 닿고 싶어 하는 마음이 송해인 대표의 마음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 선물로 드렸습니다.
어반라이크 - Calling Art
매 호마다 하나의 주제를 깊이 탐구하는 잡지 <어반라이크>의 43호 이슈는 ‘아트 컬렉터 입문기 : CALLING ART’입니다. 이번 <어반라이크>는 종이책의 한계에서 벗어나, 물리적 영향을 받지 않은 유동적인 매체라는 특성을 살려 ‘지면 전시’라는 새로운 역할을 시도합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있는 탐구와, 정해진 방식이 아닌 다양한 가치를 융합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인스피어>의 공연 철학과 닿아있는 것 같아 선물 드렸습니다.
글 - 종이잡지클럽
사진 제공 - 인스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