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역사를 잇되,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린 나이에 제주로 이도한 문희선 대표는 소작농으로 고생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 농사는 짓지 말아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세월과 흔적이 쌓여있는 과수원을 선뜻 돌려주기 싫었던 문희선 대표는 불쑥 자신이 농사를 짓겠다고 선언한다.
부모님의 역사를 이어 시작하게 된 농업이지만 문희선 대표는 모든 것을 똑같이 하기보다 자기만의 철학을 농사에 담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더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방법으로. 그렇게 또 뜻을 같이 하는 농부들이 모여 <올바른 농부 영농조합법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에서 만나본 사람
일곱 번째. [올바른 농부 영농조합법인] 문희선

유년기에 부모님과 제주로 이도하셨어요.
희선: 벌써 40년이 되었네요.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제주에 내려왔어요. 부모님이 농사를 시작하신 건 제가 중학생일때고요.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이어서 ‘후계농’이 되셨네요.
희선: 처음에는 농사지을 마음이 없었어요. 부모님은 처음에 다른 사람의 과수원을 임대해서 소작농으로 일을 하셨거든요. 거기서 귤을 수확해서 공판장과 상인 분들에게 팔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판매를 하면 농부가 가격을 결정할 수 없어요. 그저 시세대로 받을 수 밖에 없죠.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을 수 있겠네요.
희선: 그렇죠. 더 힘들게 일을 해도 빚이 늘어나기도 했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절대 농사는 짓지 말아야지. 농사 짓는 사람과는 결혼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직접 농사를 짓고 계시네요. (웃음)
희선: 그러게요. 10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동안 농사 짓던 과수원을 주인 분에게 돌려줘야 했어요. 그런데 그러기 싫더라고요. 돌려주기 싫다는 뜻이 아니라 아버지가 평생을 몸바쳐 일궈놓으신 과수원이잖아요.
아버지의 세월이 남아있는 과수원이니까요.
희선: 그래서 제가 덜컥 농사를 짓겠다고 했나봐요. (웃음) 다행이 저는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를 따라 과수원 일도 많이 돕기도 했고요. 전반적인 시스템을 알고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지는 말자고 생각했어요.
아버지의 역사는 이어가되 희선님의 방식으로 해보자.
희선: 맞아요. 그래서 친환경농업을 선택했고, 6년전 <올바른농부 영농조합법인> 이 만들어지면서 운영도 맡게 되었어요.
<올바른농부 영농조합법인>이 정확히 어떤 곳인가요?
희선: 농부들, 가공업체, 요리연구가, 제로웨이스트 실천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조합입니다. 여러 활동을 하지만 핵심은 농부들이 힘을 잃지 않고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겁니다. 여러 활동을 통해 제주에서 지속가능한 건강한 농업이 이어지도록 농부들을 응원하고 돕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희선: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올바른농부장>이 있어요. 농부들이 만드는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실 수 있는 직거래 장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올바른농부장>을 6년째 정기적으로 한 달에 두 번 씩 이어오고 있습니다. 직접 오시지 못하면 택배로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그리고 <올바른농부학교>를 통해 농업의 가치와 친환경농업의 모습을 전파하려 애쓰고 있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농부 워크숍과 문화 행사를 기획해서 운영하면서 농부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제가 검색해보니 ‘영농조합’ 이 생겨서 <올바른 농부장> 이 생긴 게 아니라 <올바른농부장>이 생기면서 <올바른농부 영농조합법인>까지 확장된 것 이더라고요. <올바른농부장>이 일종의 <올바른농부 영농조합법인>의 상징이자 대표 모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선: 맞아요. 저희가 가장 공들여서 애쓰는 것 중 하나에요. 저희가 <올바른농부장>을 운영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지점은 약속된 시간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농산물로 연결시키는 것이었어요.
그러려면 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려야 하고, 감귤이나 월동채소만 가지고 상설 시장을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때부터 농부들과 다양한 품종을 소량으로 생산하는 다품종소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요.

다품종 소량생산.
희선: 네. 다품종소량생산은 기존의 단일품종대량생산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장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 1천평의 밭에 당근을 심었는데 그 해 이상기후로 태풍이나 가뭄이 들어 당근 수확이 안되면 농부는 일년 농사를 망치게 되어요. 하지만 1천평의 밭에 그 시기에 심을 수 있는 열 가지의 작물을 100평씩 나누어 심으면 한 번에 모두 사라지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거에요. 일년 내내 밭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한 소득을 올릴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도 있고요.
저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청년 농부들이 이런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정착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올바른농부장>에서 4-5년 동안 다품종소량생산을 해온 멘토 농부들과 농사를 짓고 싶은 청년들을 매칭해 함께 상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고 공부하며 실행하고 있어요.
제주의 지속가능한 농업은 농부들이 계속 생겨 나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생겨난 농부들이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건강한 농업을 할 때 빛이 나고요. 다품종소량생산연구회를 조직해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농부 분들이 단일품종 소량생산을 선호 하시잖아요. 그럼 그 이유가 뭘까요.
희선: 개인적으로 저는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어요. 첫 번째로 유통 구조를 움직이는 분들이 농업을 단순히 화폐나 공산품으로 여기기 때문이에요. 농산물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 때문에 농부와 소비자 사이에서 가격 결정권과 상품의 형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죠. 대부분 농부들은 그들이 정해 놓은 상품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농약과 비료, 시설을 사용하고 점수 매기듯 가격을 결정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유통 구조는 농업을 더 병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는 거에요. “내가 먹는 식재료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까” 를 알면 소비자의 선택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먹거리를 사야할지 고민하게 되어야 좋은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이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하는 공간이 <올바른 농부장>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떤 방식이든 장점과 단점이 명확할 것 같아요. 그럼 다품종 소량생산의 장점과 단점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희선: 네, 우선 장점부터 말씀드리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농작물을 키우면 한 공간에서 여러 작물을 생산할 수 있어 한 번에 모든 작물이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좁은 면적을 알차게 모두 수확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1년 내내 생산을 하기 때문에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소득을 올리는 게 장점입니다. 그리고 여러 품목의 소비자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도 있고요.
물론 어려운 점도 있지요. 가장 큰 힘든 점은 특히 제주는 농한기가 없기 때문에 일년 내내 밭을 돌봐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쉴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고객을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업 초반에 고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의 작물이 아니라 여러 작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요.
올바른 농부장 을 꾸준히 열고 계세요. 장터(플리마켓)는 참여 생산자와, 소비자를 모으다 보니 저희도 몇 번 해보았지만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떤 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모으시는지. 어려움은 없으신지. 올바른 농부장을 운영하며 느낀 보람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희선: 농부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뜻이 맞는 생산자들을 모으는 일이었어요. 처음엔 10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60명이 넘는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지속가능한 농업', '건강한 농업생태계'처럼 뚜렷하다보니 이런 뜻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입회하고 싶다고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6개월 정도 올바른농부장에 참여하며 다른 생산자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눠보고 소비자도 만나보면서 자신의 성격과 잘 맞는지 즐거움을 느끼는지 확인 한 후에 입회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생산자들이 즐겁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농부 시장이 되면 소비자들도 행복해하더라구요. 생산자들이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죠. 생산자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농부와 시장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조합 이야기도 해보면 좋겠습니다. 방금 잠깐 언급해주셨지만 한번 더 명확하게 함께 일하는 농부 분들과 어떤 계기로 영농조합을 이루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희선: 네. <올바른 농부장>에서 시작이 되었어요. 이 직거래장터를 활성화해서 친환경농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농사를 짓고 소비자를 만날 수 있으려면 저희가 좀 더 긴밀하게 모여 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올바른 농부 영농조합법인>이 탄생할 수 있었어요.

사람이 모임으로 생기는 기쁨도 있지만, 농사라는 큰 본업을 하시면서 법인까지 운영해야 하는 고된 부분도 있으시지 않으세요.
희선: 저희는 항상 장소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어요. 한 공간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 나가야 하는 상황이 매년 반복적으로 나타나요. 그리고 사람이 모이다 보니 사소한 이유로 이탈하기도 하고요. 아마 저희 뿐 아니라 많은 법인이 겪는 힘든 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5년 내에 염두하고 있는 올바른 농부 영농조합법인의 미래와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희선: 우선 5년 이후에도 우리 올바른 농부장이 지속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한 해 한 해 새로운 변수와 문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올바른 농부장을 통해 농부들과 많은 생산자들이 힘을 잃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영농조합법인 대표의 삶과 농부의 삶, 사회적 기업가로의 삶 모두 경험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 문희선 대표님이 각각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동시에 미래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합니다.
희선: 저는 지금 기획자로, 또 대표로 일을 하고 있지만 농부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밭에서 흙을 만지고 열매를 수확하고 나무를 만지고 있으면 어떤 두려움도 고민도 다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농부로서의 저를 잃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농부로 살아가며 농부를 위한 기획자, 대표의 일을 할 거에요. 그것이 또 나를 계속 농사짓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주와 전국의 농부분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대표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이 인터뷰를 읽으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희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일이에요. 인간은 먹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각자의 땅에서 농사짓고 있는 농부들이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질 거예요.
세상이 돈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어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신념이 있음을, 그런 공동체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기위해 더 노력하고 더 사랑할거에요.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농부들을 더 많이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오며,
문희선 대표는 쉽지 않지만 즐겁다고 인터뷰 내내 웃음을 끊이지 않으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목표를 경제적 수익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싶은 철학과 가치로 채우는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 도 희선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지키고 싶은 철학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더 떠올려보았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도 자신이 꼭 지키고 싶은 삶의 철학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는 문희선 대표를 떠올리며 두 권의 잡지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가 선물한 잡지

Be Mike 1호 - 전통시장
전통시장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그 안에 상인들이 어떤 삶을 살고 무슨 꿈을 꾸는지 탐구하는 잡지 Be Mike 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지역의 안정된 생활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역할을 갖게 되는 전통 시장 이야기를 읽으며, 문희선 대표가 꿈꾸는 <올바른 농부장>의 미래가 그려져 선물로 드렸습니다.

Earthian 1호
비건을 넘어 좋은 생산자가 만드는 건강한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Earthian 입니다. 잡지 안에는 다양한 농부 분들의 이야기부터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소망들이 빼곡히 담겨있습니다.
잡지를 읽는 내내 문희선 대표가 지키고 싶은 농부의 가치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많이 느껴져 선물로 드렸습니다.
글, 사진 - 종이잡지클럽
사진 제공 - 올바른 농부 협동조합
부모님의 역사를 잇되,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린 나이에 제주로 이도한 문희선 대표는 소작농으로 고생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 농사는 짓지 말아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세월과 흔적이 쌓여있는 과수원을 선뜻 돌려주기 싫었던 문희선 대표는 불쑥 자신이 농사를 짓겠다고 선언한다.
부모님의 역사를 이어 시작하게 된 농업이지만 문희선 대표는 모든 것을 똑같이 하기보다 자기만의 철학을 농사에 담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더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방법으로. 그렇게 또 뜻을 같이 하는 농부들이 모여 <올바른 농부 영농조합법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에서 만나본 사람
일곱 번째. [올바른 농부 영농조합법인] 문희선
유년기에 부모님과 제주로 이도하셨어요.
희선: 벌써 40년이 되었네요.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제주에 내려왔어요. 부모님이 농사를 시작하신 건 제가 중학생일때고요.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이어서 ‘후계농’이 되셨네요.
희선: 처음에는 농사지을 마음이 없었어요. 부모님은 처음에 다른 사람의 과수원을 임대해서 소작농으로 일을 하셨거든요. 거기서 귤을 수확해서 공판장과 상인 분들에게 팔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판매를 하면 농부가 가격을 결정할 수 없어요. 그저 시세대로 받을 수 밖에 없죠.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을 수 있겠네요.
희선: 그렇죠. 더 힘들게 일을 해도 빚이 늘어나기도 했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절대 농사는 짓지 말아야지. 농사 짓는 사람과는 결혼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직접 농사를 짓고 계시네요. (웃음)
희선: 그러게요. 10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동안 농사 짓던 과수원을 주인 분에게 돌려줘야 했어요. 그런데 그러기 싫더라고요. 돌려주기 싫다는 뜻이 아니라 아버지가 평생을 몸바쳐 일궈놓으신 과수원이잖아요.
아버지의 세월이 남아있는 과수원이니까요.
희선: 그래서 제가 덜컥 농사를 짓겠다고 했나봐요. (웃음) 다행이 저는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를 따라 과수원 일도 많이 돕기도 했고요. 전반적인 시스템을 알고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지는 말자고 생각했어요.
아버지의 역사는 이어가되 희선님의 방식으로 해보자.
희선: 맞아요. 그래서 친환경농업을 선택했고, 6년전 <올바른농부 영농조합법인> 이 만들어지면서 운영도 맡게 되었어요.
<올바른농부 영농조합법인>이 정확히 어떤 곳인가요?
희선: 농부들, 가공업체, 요리연구가, 제로웨이스트 실천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조합입니다. 여러 활동을 하지만 핵심은 농부들이 힘을 잃지 않고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겁니다. 여러 활동을 통해 제주에서 지속가능한 건강한 농업이 이어지도록 농부들을 응원하고 돕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희선: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올바른농부장>이 있어요. 농부들이 만드는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실 수 있는 직거래 장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올바른농부장>을 6년째 정기적으로 한 달에 두 번 씩 이어오고 있습니다. 직접 오시지 못하면 택배로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그리고 <올바른농부학교>를 통해 농업의 가치와 친환경농업의 모습을 전파하려 애쓰고 있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농부 워크숍과 문화 행사를 기획해서 운영하면서 농부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제가 검색해보니 ‘영농조합’ 이 생겨서 <올바른 농부장> 이 생긴 게 아니라 <올바른농부장>이 생기면서 <올바른농부 영농조합법인>까지 확장된 것 이더라고요. <올바른농부장>이 일종의 <올바른농부 영농조합법인>의 상징이자 대표 모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선: 맞아요. 저희가 가장 공들여서 애쓰는 것 중 하나에요. 저희가 <올바른농부장>을 운영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지점은 약속된 시간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농산물로 연결시키는 것이었어요.
그러려면 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려야 하고, 감귤이나 월동채소만 가지고 상설 시장을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때부터 농부들과 다양한 품종을 소량으로 생산하는 다품종소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요.
다품종 소량생산.
희선: 네. 다품종소량생산은 기존의 단일품종대량생산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장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 1천평의 밭에 당근을 심었는데 그 해 이상기후로 태풍이나 가뭄이 들어 당근 수확이 안되면 농부는 일년 농사를 망치게 되어요. 하지만 1천평의 밭에 그 시기에 심을 수 있는 열 가지의 작물을 100평씩 나누어 심으면 한 번에 모두 사라지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거에요. 일년 내내 밭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한 소득을 올릴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도 있고요.
저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청년 농부들이 이런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정착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올바른농부장>에서 4-5년 동안 다품종소량생산을 해온 멘토 농부들과 농사를 짓고 싶은 청년들을 매칭해 함께 상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고 공부하며 실행하고 있어요.
제주의 지속가능한 농업은 농부들이 계속 생겨 나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생겨난 농부들이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건강한 농업을 할 때 빛이 나고요. 다품종소량생산연구회를 조직해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농부 분들이 단일품종 소량생산을 선호 하시잖아요. 그럼 그 이유가 뭘까요.
희선: 개인적으로 저는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어요. 첫 번째로 유통 구조를 움직이는 분들이 농업을 단순히 화폐나 공산품으로 여기기 때문이에요. 농산물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 때문에 농부와 소비자 사이에서 가격 결정권과 상품의 형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죠. 대부분 농부들은 그들이 정해 놓은 상품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농약과 비료, 시설을 사용하고 점수 매기듯 가격을 결정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유통 구조는 농업을 더 병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는 거에요. “내가 먹는 식재료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까” 를 알면 소비자의 선택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먹거리를 사야할지 고민하게 되어야 좋은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이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하는 공간이 <올바른 농부장>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떤 방식이든 장점과 단점이 명확할 것 같아요. 그럼 다품종 소량생산의 장점과 단점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희선: 네, 우선 장점부터 말씀드리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농작물을 키우면 한 공간에서 여러 작물을 생산할 수 있어 한 번에 모든 작물이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좁은 면적을 알차게 모두 수확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1년 내내 생산을 하기 때문에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소득을 올리는 게 장점입니다. 그리고 여러 품목의 소비자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도 있고요.
물론 어려운 점도 있지요. 가장 큰 힘든 점은 특히 제주는 농한기가 없기 때문에 일년 내내 밭을 돌봐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쉴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고객을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업 초반에 고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의 작물이 아니라 여러 작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요.
올바른 농부장 을 꾸준히 열고 계세요. 장터(플리마켓)는 참여 생산자와, 소비자를 모으다 보니 저희도 몇 번 해보았지만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떤 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모으시는지. 어려움은 없으신지. 올바른 농부장을 운영하며 느낀 보람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희선: 농부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뜻이 맞는 생산자들을 모으는 일이었어요. 처음엔 10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60명이 넘는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지속가능한 농업', '건강한 농업생태계'처럼 뚜렷하다보니 이런 뜻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입회하고 싶다고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6개월 정도 올바른농부장에 참여하며 다른 생산자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눠보고 소비자도 만나보면서 자신의 성격과 잘 맞는지 즐거움을 느끼는지 확인 한 후에 입회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생산자들이 즐겁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농부 시장이 되면 소비자들도 행복해하더라구요. 생산자들이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죠. 생산자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농부와 시장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조합 이야기도 해보면 좋겠습니다. 방금 잠깐 언급해주셨지만 한번 더 명확하게 함께 일하는 농부 분들과 어떤 계기로 영농조합을 이루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희선: 네. <올바른 농부장>에서 시작이 되었어요. 이 직거래장터를 활성화해서 친환경농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농사를 짓고 소비자를 만날 수 있으려면 저희가 좀 더 긴밀하게 모여 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올바른 농부 영농조합법인>이 탄생할 수 있었어요.
사람이 모임으로 생기는 기쁨도 있지만, 농사라는 큰 본업을 하시면서 법인까지 운영해야 하는 고된 부분도 있으시지 않으세요.
희선: 저희는 항상 장소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어요. 한 공간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 나가야 하는 상황이 매년 반복적으로 나타나요. 그리고 사람이 모이다 보니 사소한 이유로 이탈하기도 하고요. 아마 저희 뿐 아니라 많은 법인이 겪는 힘든 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5년 내에 염두하고 있는 올바른 농부 영농조합법인의 미래와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희선: 우선 5년 이후에도 우리 올바른 농부장이 지속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한 해 한 해 새로운 변수와 문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올바른 농부장을 통해 농부들과 많은 생산자들이 힘을 잃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영농조합법인 대표의 삶과 농부의 삶, 사회적 기업가로의 삶 모두 경험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 문희선 대표님이 각각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동시에 미래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합니다.
희선: 저는 지금 기획자로, 또 대표로 일을 하고 있지만 농부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밭에서 흙을 만지고 열매를 수확하고 나무를 만지고 있으면 어떤 두려움도 고민도 다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농부로서의 저를 잃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농부로 살아가며 농부를 위한 기획자, 대표의 일을 할 거에요. 그것이 또 나를 계속 농사짓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주와 전국의 농부분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대표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이 인터뷰를 읽으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희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일이에요. 인간은 먹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각자의 땅에서 농사짓고 있는 농부들이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질 거예요.
세상이 돈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어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신념이 있음을, 그런 공동체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기위해 더 노력하고 더 사랑할거에요.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농부들을 더 많이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오며,
문희선 대표는 쉽지 않지만 즐겁다고 인터뷰 내내 웃음을 끊이지 않으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목표를 경제적 수익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싶은 철학과 가치로 채우는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 도 희선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지키고 싶은 철학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더 떠올려보았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도 자신이 꼭 지키고 싶은 삶의 철학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는 문희선 대표를 떠올리며 두 권의 잡지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가 선물한 잡지
Be Mike 1호 - 전통시장
전통시장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그 안에 상인들이 어떤 삶을 살고 무슨 꿈을 꾸는지 탐구하는 잡지 Be Mike 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지역의 안정된 생활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역할을 갖게 되는 전통 시장 이야기를 읽으며, 문희선 대표가 꿈꾸는 <올바른 농부장>의 미래가 그려져 선물로 드렸습니다.
Earthian 1호
비건을 넘어 좋은 생산자가 만드는 건강한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Earthian 입니다. 잡지 안에는 다양한 농부 분들의 이야기부터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소망들이 빼곡히 담겨있습니다.
잡지를 읽는 내내 문희선 대표가 지키고 싶은 농부의 가치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많이 느껴져 선물로 드렸습니다.
글, 사진 - 종이잡지클럽
사진 제공 - 올바른 농부 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