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thing Everywhere
대기업 퇴사, 튀르키예에서의 성공적인 게스트하우스 창업과 운영. 김영지 대표의 20대는 뜨겁고 바쁜 날들로 가득했다. 다시 돌아온 한국. 김영지 대표는 제주에서 자신의 삶을 기획 하기로 한다. 모든 것이 다 계획대로 흘러갈 거 같았지만 대기업 생활보다, 창업보다 제주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게 김영지 대표는 더 어려웠다. 무엇을 해도 엄마의 역할을 잘 못하는 것 같았고, 육아를 위해 취업을 시도하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럼 엄마는 엄마로만 남아야 하는 걸까.
김영지 대표의 ‘경력잇는 여자들’ 은 자신을 닮은 사람들과,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경유하는 엄마들을 찾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에서 만나본 사람
여섯 번째. [경력잇는 여자들] 김영지

아마 다들 많이 물어보실 거 같아요.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오셨어요?
영지 : 사람은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좀 꿈꾸잖아요. (웃음) 20대를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런지 저는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이 좀 있었나봐요. 그래서 가정을 이루고 싶다. 출산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인생을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귀국을 했어요.
공감이 되어요. 그런데 또 막상 꿈꾸는 삶이 자기 삶이 되면 또 조금 달라지지 않나요?
영지 : 맞아요. 맞아요. 막상 서울에 돌아오니까 너무 서울에서 사는 게 견디기 힘든거에요. 각박하고 숨이 막혔어요. 근데 또 서울에서 만난 지금 남편 고향이 제주도인 거에요. 제가 시골 출신 이거든요. 그래서 제주라면 잘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남편을 설득해서 결혼과 동시에 제주로 이주하게 되었죠.
그런데 또 끝없이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들면서 자기를 계속 바쁘게 채찍질 하던 사람 일수록 제주에서 삶의 속도를 잘 못견디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영지님은 어떠셨어요?
영지 : 처음에는 좀 막막했어요. 당시에 회사를 다니지도 않았고, 아무 소속도 연고도 없이 제주로 왔거든요. 가족 외에는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고요. 처음에 제주 올 때는 임신 중이기도 해서 제가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저는 작은 계획이라도 세워 매번 성취하며 사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이거든요. 그런데 제주에서 제 삶의 계획을 마음대로 세울 수 없었을 때 정말 말 그대로 외딴 섬에 홀로 갇혀 있는 마음이었어요.
그 마음이 ‘경력잇는여자들’을 만드는데 이어지신 것 같아요.
영지 : 맞아요. 제가 ‘경력잇는여자들’을 시작하게 된 때가 둘째를 계획하던 중이었어요. 물론 엄마가 되는 길은 제가 선택한 길이에요. 하지만 선택했다고 해서 더 쉬워지지 않는 게 엄마의 길인 것 같아요.
당시에 첫째 아이는 아직 어려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았어요. 그리고 둘째를 계획하고 있어서 취업을 시도하는 건 포기해야 했죠. 그럼 제 직업은 엄마 잖아요. 그런데 또 제게 맡겨진 엄마라는 역할을 다른 일을 할 때보다 너무 못하는 것 같은 거에요. 좋은 엄마가 못되는 거 같아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요. 정말 스스로 존재 가치에 대해 의문까지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 소셜미디어에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저와 같은 지역 제주에 사는 엄마들을 찾는 것으로 ‘경력 잇는 여자들’이 시작되었어요.

그럼 정확히 [경력잇는여자들] 이 어떤 분들을 대상으로 무슨 활동을 하는 사회적기업인지 독자분들에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지 : 우선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을 대상으로 자기 돌봄 - 역량 강화 - 일. 경험 기회 제공 - 창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제공 합니다. 창업과 취업이 어려운 엄마들에게 퍼스널 브랜딩을 해주면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주는 것이죠. 그리고 하드웨어는 잘 되어 있으나 기본적인 콘텐츠 운영이나 마케팅이 어려운 마을이나 소상공인들과 그들을 연결 시켜 시너지를 내게 하는 것이 저희의 활동입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경력잇는여자들은 일종의 커뮤니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점도 넓은 의미에서는 커뮤니티적 역할을 하고 있다보니 커뮤니티 내에서 생기는 사람들간의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굉장히 신중하게 고민하는데요. [경력잇는여자들]은 그런 어려움이나 고민은 없으셨는지. 혹 그런 부분이 아니라도 [경력잇는여자들]을 운영하며 느끼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영지 : 저희는 ‘엄마들이 성장할 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조직의 형태를 고민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저희 안에서 스스로를 테스트 해보고 성장하고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한 여성들이 지역 사회에 많이 있고 또 수많은 자조 모임이 생기는 등 정량적. 정성적 성과는 명확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 커뮤니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데 태생적 특성 상 그들의 독립을 위한 일들을 반복하는 것에, 실은 많이 소진이 되었습니다.

‘경력잇는 여자들’은 사회적 기업이에요. 다양한 환경에서 일을 해보셨고, 그에 따른 성공 사례도 만드셨습니다. 솔직하게 묻자면, 충분히 영리적인 목적으로 사업 모델이나 BM을 만드실 수도 있으셨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이유로, 어떤 마음으로 협동조합을 만드셨고, 사회적기업까지 이어지셨나요?
영지 : 지금이야 경력보유여성, 특히 엄마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움직임 들이 있지요. 하지만 ‘경력잇는여자들’을 처음 계획했던 2019년, 2022년만 해도 제주는 물론 대한민국에서는 경력보유여성 당사자들에게 발언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애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은 일방적인 정책의 수혜자로 치부한다고 느껴졌어요. 그 때는 ‘맘충이’ ‘노키즈존’ 이런 폭력적인 단어들이 거리낌 없이 쓰여질때라 애 낳고 키우는 것이 잘못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이들을 사회의 주체로 끌어내려는 시도도 전혀 없었고요.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조금 아쉬운 상황이지요.
그래서 저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뭔가 대단한 미션이나 비전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어요. 우선 엄마들도 한 때는 당당한 사회 조직원이었고, 우리가 뭉치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으며 어떠한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나라에서 실업 급여를 받으며 그것을 자본금으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비용을 쓸 수 있을지 판단했고요. 그리고 혼자보다 함께 활동하고 것이 같이 하고 있는 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예비 사회적 기업이 되었습니다. 일단 엄마들이 무슨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대단한 공명심이나, 사업적인 이유, 제 스스로 대단한 뜻이 있어서 시작한 일은 아닙니다.
사회적기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가 서로 충돌할 때가 많다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리 추구와 소셜 미션이 항상 같이 가지는 않으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 대표님도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영지 : 우리의 ‘사회적 가치’를 계속 지속하고 싶다면 생존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크게 우리의 가치관과 방향성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다양한 엄마들의 역량을 활용한 지원 사업이나 용역 사업 등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동력을 제공한 이들에게 철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큰 투자는 하지 않았으니 마이너스만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넘게 [경력잇는여자들]을 운영하고 계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영지 :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웃음) 어쩌다 보니 제주를 대표하는 엄마들이 주체가 된 여성 커뮤니티 혹은 기업이 된 것 같고, 전국적으로도 인정을 조금 받았거든요. 이번에 삼성생명과 행정안전부에서 지원하는 지역청년활동가 지원 사업 성과 공유회에 갔더니 전국의 후배 기수들이 저희가 롤모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한계를 뛰어 넘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취업난이 심하고 더더욱 소외계층의 취업은 무척 힘이 듭니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한번 튕겨져 나오면 다시 진입하기가 정말 힘이든 사회라고 생각도 합니다. 제주에서 경력보유여성이 갖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영지 : 개인적으로는 심리적 어려움과 자신감 하락이 노동 시장에 다시 진입하기 어려운 가장 큰 요인 이라고 생각 합니다. 필드에서 벗어나 경력 단절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불안이 커집니다. 실제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이 어려워지기도 하구요. 그것이 저희 경력잇는여자들이 인생의 최대 전성기가 될 수 있는 3040 골든 타임이 그냥 방치되지 않게 경력보유여성들에게 자기 돌봄에 이은 창직 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제공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엔 분명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요.
지금 운영하고 계신 ‘경력잇는 여자들’ 모델을 제주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전파하고 계시죠.
영지 : 네 맞아요. 실제로 이미 2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정읍-경력잇는여자들, 일명 정잇녀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구요. 사실 더 많은 지자체의 요청이 있었는데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과 시스템이 설정되지 않아 한계가 있었는데 이제는 윤곽이 만들어 지고 있어 실질적인 확장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주를 필두로 한 나주, 진주, 전주, 청주, 울주 등 일명 여성 활동가를 중심으로 한 전국 단위 ‘주주클럽’ 을 통한 전국 단위 느슨한 연대를 계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5년 내에 염두하고 있는 [경력잇는여자들]의 미래와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영지 :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한데 관광이 전공이기도 한 저는 ‘우리네 삶이 자원이 되는 삶.’을 꿈꿨습니다. 2024년부터 제주도와 전국에서 배움과 휴양을 함께하는 런케이션‘Learn+Vacation’ 이라는 관광 모델이 대두되고 있는데, 2021년 전부터 스케이션 ‘Study, Self Care +Vacation’ 이란 모델을 상표 등록하고 그 필요성을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제주의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어른들도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의 섬’을 만드는 데 경력잇는 여자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원주민도 이주민도 누구 하나 잉여 인력 없이 스스로의 쓰임과 역할을 찾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해 나가고 싶어요.
기업 대표의 삶, 경력보유여성으로의 삶, 사회적 기업가로의 삶 모두 경험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 김영지 대표님이 각각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동시에 미래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합니다.
영지 : “어느 한 순간도 막막하거나 어렵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지? 그렇지만 - 이제는 알잖아. 많이 느리고 많이 돌아갔을 지언정 같은 방향성을 향해 늘 조금씩은 - 나아가고 있었고 나아가고 있음을! 다 컸는데도 여전히 커서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 만, 스스로에게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 주기를! 그리고 지금도 네 옆- 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해 하기를! ”
저도 서점을 운영하며 경력보유여성분들을 위한 매거진 트렌드 교육등의 활동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거기서 만난 경력보유여성분들은 대부분 분명 유능한 사회인인 자신들이 사회에서 잊혀지는 것에 두려움과 육아의 힘듦을 느끼면서도 또 자녀를 키우며 느끼는 포기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시고 계셨습니다. 아마 지금도 대표님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계실텐데요. 경력잇는 여자로, 그리고 경력보유 여성일때 느꼈던 기쁨과 슬픔이 있으셨나요.
영지 : 지금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아이를 가진 것은 제 인생 최고로 잘한 일이자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함 투성인 부모를 향한 그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늘 자문 합니다. 그래서 같은 이유로 많이 슬퍼요. 저는 부모님의 많은 희생을 받고 자랐고 그래서 - 저에게도 그러한 희생이 요구되는 것 같은데 저는 아이들을 위해 그만큼의 희생을 - 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요.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 스스로와 나의 일- 이 중요한데 엄마와 일, 두 개를 균형감 있게 해내지 못하는 슈퍼맘이 되지 못하는 - 엄마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고, 사실 그 마음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이지만 엄마로만 남고싶지 않은 엄마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영지 : 엄마이기 전에, 우리도 우리 엄마 아빠의 소중한 딸이잖아요! 다들 환경과 그 방법은 다르겠지만 아이들에게 건강한 그림자를 만들어 주는 엄마들이 되어 봅시다! 제가 육아도 교육도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도 엄마라고 하는데 다들 저보다 잘 하시잖아요? 너무 애쓰셨고 부디 행복하세요

나오며,
김영지 대표는 대화를 하는 내내 힘들다, 지쳐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계획하고 있는 것들을 말할 때는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새로운 기획을 실제 세상에 내놓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쓰지만 또 그만큼 성취를 주는 일입니다. 그가 가진 에너지가 혼자가 아니라 자신과 닮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엄마들과 함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이잡지클럽이 선물한 잡지

POPOPO 7호 Diversity
엄마의 가능성을 믿고 지지하는 잡지 POPOPO 7호 입니다. 경력보유여성이었던 편집장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만든 엄마의,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잡지이지요.
김영지 대표가 <경력잇는 여자들>을 이어가는 동력과 <POPOPO>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선물로 드렸습니다.

와나 매거진 9호 ‘선물 와 나'
하나의 테마를 꼽아 미학적인 의미로 탐구하는 잡지 <와 나>는 ‘선물’을 주제로 다룹니다. 선물을 주제로 소설가와 시인부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까지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에 대한 짧은 글과 이미지가 실려있습니다.
쉽지 않지만 선물같이 찾아온 자녀들을 육아하며 동시에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김영지 대표의 마음과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닿아있어 선물로 드렸습니다.
글, 사진 - 종이잡지클럽
사진 제공 - 경력잇는여자들
Everything Everywhere
대기업 퇴사, 튀르키예에서의 성공적인 게스트하우스 창업과 운영. 김영지 대표의 20대는 뜨겁고 바쁜 날들로 가득했다. 다시 돌아온 한국. 김영지 대표는 제주에서 자신의 삶을 기획 하기로 한다. 모든 것이 다 계획대로 흘러갈 거 같았지만 대기업 생활보다, 창업보다 제주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게 김영지 대표는 더 어려웠다. 무엇을 해도 엄마의 역할을 잘 못하는 것 같았고, 육아를 위해 취업을 시도하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럼 엄마는 엄마로만 남아야 하는 걸까.
김영지 대표의 ‘경력잇는 여자들’ 은 자신을 닮은 사람들과,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경유하는 엄마들을 찾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종이잡지클럽 제주에서 만나본 사람
여섯 번째. [경력잇는 여자들] 김영지
아마 다들 많이 물어보실 거 같아요.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오셨어요?
영지 : 사람은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좀 꿈꾸잖아요. (웃음) 20대를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런지 저는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이 좀 있었나봐요. 그래서 가정을 이루고 싶다. 출산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인생을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귀국을 했어요.
공감이 되어요. 그런데 또 막상 꿈꾸는 삶이 자기 삶이 되면 또 조금 달라지지 않나요?
영지 : 맞아요. 맞아요. 막상 서울에 돌아오니까 너무 서울에서 사는 게 견디기 힘든거에요. 각박하고 숨이 막혔어요. 근데 또 서울에서 만난 지금 남편 고향이 제주도인 거에요. 제가 시골 출신 이거든요. 그래서 제주라면 잘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남편을 설득해서 결혼과 동시에 제주로 이주하게 되었죠.
그런데 또 끝없이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들면서 자기를 계속 바쁘게 채찍질 하던 사람 일수록 제주에서 삶의 속도를 잘 못견디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영지님은 어떠셨어요?
영지 : 처음에는 좀 막막했어요. 당시에 회사를 다니지도 않았고, 아무 소속도 연고도 없이 제주로 왔거든요. 가족 외에는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고요. 처음에 제주 올 때는 임신 중이기도 해서 제가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저는 작은 계획이라도 세워 매번 성취하며 사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이거든요. 그런데 제주에서 제 삶의 계획을 마음대로 세울 수 없었을 때 정말 말 그대로 외딴 섬에 홀로 갇혀 있는 마음이었어요.
그 마음이 ‘경력잇는여자들’을 만드는데 이어지신 것 같아요.
영지 : 맞아요. 제가 ‘경력잇는여자들’을 시작하게 된 때가 둘째를 계획하던 중이었어요. 물론 엄마가 되는 길은 제가 선택한 길이에요. 하지만 선택했다고 해서 더 쉬워지지 않는 게 엄마의 길인 것 같아요.
당시에 첫째 아이는 아직 어려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았어요. 그리고 둘째를 계획하고 있어서 취업을 시도하는 건 포기해야 했죠. 그럼 제 직업은 엄마 잖아요. 그런데 또 제게 맡겨진 엄마라는 역할을 다른 일을 할 때보다 너무 못하는 것 같은 거에요. 좋은 엄마가 못되는 거 같아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요. 정말 스스로 존재 가치에 대해 의문까지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 소셜미디어에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저와 같은 지역 제주에 사는 엄마들을 찾는 것으로 ‘경력 잇는 여자들’이 시작되었어요.
그럼 정확히 [경력잇는여자들] 이 어떤 분들을 대상으로 무슨 활동을 하는 사회적기업인지 독자분들에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지 : 우선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을 대상으로 자기 돌봄 - 역량 강화 - 일. 경험 기회 제공 - 창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제공 합니다. 창업과 취업이 어려운 엄마들에게 퍼스널 브랜딩을 해주면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주는 것이죠. 그리고 하드웨어는 잘 되어 있으나 기본적인 콘텐츠 운영이나 마케팅이 어려운 마을이나 소상공인들과 그들을 연결 시켜 시너지를 내게 하는 것이 저희의 활동입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경력잇는여자들은 일종의 커뮤니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점도 넓은 의미에서는 커뮤니티적 역할을 하고 있다보니 커뮤니티 내에서 생기는 사람들간의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굉장히 신중하게 고민하는데요. [경력잇는여자들]은 그런 어려움이나 고민은 없으셨는지. 혹 그런 부분이 아니라도 [경력잇는여자들]을 운영하며 느끼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영지 : 저희는 ‘엄마들이 성장할 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조직의 형태를 고민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저희 안에서 스스로를 테스트 해보고 성장하고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한 여성들이 지역 사회에 많이 있고 또 수많은 자조 모임이 생기는 등 정량적. 정성적 성과는 명확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 커뮤니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데 태생적 특성 상 그들의 독립을 위한 일들을 반복하는 것에, 실은 많이 소진이 되었습니다.
‘경력잇는 여자들’은 사회적 기업이에요. 다양한 환경에서 일을 해보셨고, 그에 따른 성공 사례도 만드셨습니다. 솔직하게 묻자면, 충분히 영리적인 목적으로 사업 모델이나 BM을 만드실 수도 있으셨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이유로, 어떤 마음으로 협동조합을 만드셨고, 사회적기업까지 이어지셨나요?
영지 : 지금이야 경력보유여성, 특히 엄마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움직임 들이 있지요. 하지만 ‘경력잇는여자들’을 처음 계획했던 2019년, 2022년만 해도 제주는 물론 대한민국에서는 경력보유여성 당사자들에게 발언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애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은 일방적인 정책의 수혜자로 치부한다고 느껴졌어요. 그 때는 ‘맘충이’ ‘노키즈존’ 이런 폭력적인 단어들이 거리낌 없이 쓰여질때라 애 낳고 키우는 것이 잘못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이들을 사회의 주체로 끌어내려는 시도도 전혀 없었고요.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조금 아쉬운 상황이지요.
그래서 저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뭔가 대단한 미션이나 비전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어요. 우선 엄마들도 한 때는 당당한 사회 조직원이었고, 우리가 뭉치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으며 어떠한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나라에서 실업 급여를 받으며 그것을 자본금으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비용을 쓸 수 있을지 판단했고요. 그리고 혼자보다 함께 활동하고 것이 같이 하고 있는 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예비 사회적 기업이 되었습니다. 일단 엄마들이 무슨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대단한 공명심이나, 사업적인 이유, 제 스스로 대단한 뜻이 있어서 시작한 일은 아닙니다.
사회적기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가 서로 충돌할 때가 많다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리 추구와 소셜 미션이 항상 같이 가지는 않으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 대표님도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영지 : 우리의 ‘사회적 가치’를 계속 지속하고 싶다면 생존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크게 우리의 가치관과 방향성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다양한 엄마들의 역량을 활용한 지원 사업이나 용역 사업 등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동력을 제공한 이들에게 철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큰 투자는 하지 않았으니 마이너스만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넘게 [경력잇는여자들]을 운영하고 계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영지 :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웃음) 어쩌다 보니 제주를 대표하는 엄마들이 주체가 된 여성 커뮤니티 혹은 기업이 된 것 같고, 전국적으로도 인정을 조금 받았거든요. 이번에 삼성생명과 행정안전부에서 지원하는 지역청년활동가 지원 사업 성과 공유회에 갔더니 전국의 후배 기수들이 저희가 롤모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한계를 뛰어 넘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취업난이 심하고 더더욱 소외계층의 취업은 무척 힘이 듭니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한번 튕겨져 나오면 다시 진입하기가 정말 힘이든 사회라고 생각도 합니다. 제주에서 경력보유여성이 갖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영지 : 개인적으로는 심리적 어려움과 자신감 하락이 노동 시장에 다시 진입하기 어려운 가장 큰 요인 이라고 생각 합니다. 필드에서 벗어나 경력 단절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불안이 커집니다. 실제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이 어려워지기도 하구요. 그것이 저희 경력잇는여자들이 인생의 최대 전성기가 될 수 있는 3040 골든 타임이 그냥 방치되지 않게 경력보유여성들에게 자기 돌봄에 이은 창직 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제공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엔 분명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요.
지금 운영하고 계신 ‘경력잇는 여자들’ 모델을 제주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전파하고 계시죠.
영지 : 네 맞아요. 실제로 이미 2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정읍-경력잇는여자들, 일명 정잇녀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구요. 사실 더 많은 지자체의 요청이 있었는데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과 시스템이 설정되지 않아 한계가 있었는데 이제는 윤곽이 만들어 지고 있어 실질적인 확장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주를 필두로 한 나주, 진주, 전주, 청주, 울주 등 일명 여성 활동가를 중심으로 한 전국 단위 ‘주주클럽’ 을 통한 전국 단위 느슨한 연대를 계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5년 내에 염두하고 있는 [경력잇는여자들]의 미래와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영지 :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한데 관광이 전공이기도 한 저는 ‘우리네 삶이 자원이 되는 삶.’을 꿈꿨습니다. 2024년부터 제주도와 전국에서 배움과 휴양을 함께하는 런케이션‘Learn+Vacation’ 이라는 관광 모델이 대두되고 있는데, 2021년 전부터 스케이션 ‘Study, Self Care +Vacation’ 이란 모델을 상표 등록하고 그 필요성을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제주의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어른들도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의 섬’을 만드는 데 경력잇는 여자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원주민도 이주민도 누구 하나 잉여 인력 없이 스스로의 쓰임과 역할을 찾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해 나가고 싶어요.
기업 대표의 삶, 경력보유여성으로의 삶, 사회적 기업가로의 삶 모두 경험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 김영지 대표님이 각각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동시에 미래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합니다.
영지 : “어느 한 순간도 막막하거나 어렵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지? 그렇지만 - 이제는 알잖아. 많이 느리고 많이 돌아갔을 지언정 같은 방향성을 향해 늘 조금씩은 - 나아가고 있었고 나아가고 있음을! 다 컸는데도 여전히 커서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 만, 스스로에게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 주기를! 그리고 지금도 네 옆- 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해 하기를! ”
저도 서점을 운영하며 경력보유여성분들을 위한 매거진 트렌드 교육등의 활동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거기서 만난 경력보유여성분들은 대부분 분명 유능한 사회인인 자신들이 사회에서 잊혀지는 것에 두려움과 육아의 힘듦을 느끼면서도 또 자녀를 키우며 느끼는 포기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시고 계셨습니다. 아마 지금도 대표님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계실텐데요. 경력잇는 여자로, 그리고 경력보유 여성일때 느꼈던 기쁨과 슬픔이 있으셨나요.
영지 : 지금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아이를 가진 것은 제 인생 최고로 잘한 일이자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함 투성인 부모를 향한 그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늘 자문 합니다. 그래서 같은 이유로 많이 슬퍼요. 저는 부모님의 많은 희생을 받고 자랐고 그래서 - 저에게도 그러한 희생이 요구되는 것 같은데 저는 아이들을 위해 그만큼의 희생을 - 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요.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 스스로와 나의 일- 이 중요한데 엄마와 일, 두 개를 균형감 있게 해내지 못하는 슈퍼맘이 되지 못하는 - 엄마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고, 사실 그 마음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이지만 엄마로만 남고싶지 않은 엄마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영지 : 엄마이기 전에, 우리도 우리 엄마 아빠의 소중한 딸이잖아요! 다들 환경과 그 방법은 다르겠지만 아이들에게 건강한 그림자를 만들어 주는 엄마들이 되어 봅시다! 제가 육아도 교육도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도 엄마라고 하는데 다들 저보다 잘 하시잖아요? 너무 애쓰셨고 부디 행복하세요
나오며,
김영지 대표는 대화를 하는 내내 힘들다, 지쳐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계획하고 있는 것들을 말할 때는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새로운 기획을 실제 세상에 내놓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쓰지만 또 그만큼 성취를 주는 일입니다. 그가 가진 에너지가 혼자가 아니라 자신과 닮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엄마들과 함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이잡지클럽이 선물한 잡지
POPOPO 7호 Diversity
엄마의 가능성을 믿고 지지하는 잡지 POPOPO 7호 입니다. 경력보유여성이었던 편집장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만든 엄마의,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잡지이지요.
김영지 대표가 <경력잇는 여자들>을 이어가는 동력과 <POPOPO>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선물로 드렸습니다.
와나 매거진 9호 ‘선물 와 나'
하나의 테마를 꼽아 미학적인 의미로 탐구하는 잡지 <와 나>는 ‘선물’을 주제로 다룹니다. 선물을 주제로 소설가와 시인부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까지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에 대한 짧은 글과 이미지가 실려있습니다.
쉽지 않지만 선물같이 찾아온 자녀들을 육아하며 동시에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김영지 대표의 마음과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닿아있어 선물로 드렸습니다.
글, 사진 - 종이잡지클럽
사진 제공 - 경력잇는여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