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을 향한 실험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이라는 그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을 정도로 길다. 글로벌과 제주가 함께 붙으니 그 의미는 크고 넓다. 2016년 12월 협동조합을 설립했으니 활동 기간은 짧다. 줄여서 ‘글제문’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곳은 길고, 짧고, 크고, 넓다. 그래서일까? 섣불리 정의내리기 어려운 깊이를 지녔다. 로컬과 글로벌을 버무린 청년 문화를 개척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지금껏 가지 않은 길을 도전하는 곳. 그곳에 가보았다.

얘네들 어떻게  하지?

협동조합의 초기 멤버는 5명이었다. 이들이 고민을 시작한 건 이미 6여 년 전. 제주로의 이주를 고민하며 문화 활동과 귀농, 귀촌을 생각하던 시기였다. 이들은 지난 시간 동안 계속 제주도를 오갔다. 그 사이 멤버의 수는 7명이 되었고 작년 6월 모두 짐을 싸서 제주도로 내려왔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육지에서 온 청년들이 1~2달 머물고 떠나는 일을 이미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이곳에 살려고 왔다는 진심을 보여주며 마을분들이 부를 때마다 달려가서 일을 돕고 설득하자 그때부터는 오히려 마을 어르신들이 고민을 시작했다. “얘네들 어떻게 하지?”

마을에 필요한 젊은이들

밭일도 하고 제안서도 써드리고 마을의 잡일을 할 때 언제든지 달려가는 청년들이 생겼다. 상모리 어르신들이 이들의 노력을 좋게 보고 송악산 알뜨르 직판장을 맡아보라고 제안했다. 청년장사꾼이 시작됐다. 상모리 마을회관에 머물렀는데 멤버들은 계속 늘어나서 더 넓은 장소가 필요해졌다. 그렇게 찾아온 곳이 무릉리의 폐교였다. 폐교 활성화를 통해 마을에 보탬이 되겠다는 자세로 어르신들을 설득했고 허락을 받았다. 현재 조합원은 14명이고, 평균 상주 인원은 3-40명이다.

규정짓는 순간 갇힌다.

글제문에서 하는 일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실시간 소식으로 올라온다. 제주워킹홀리데이, 제주 한 달 살기, 뉴 히어로즈, 청년농부, 청년장사꾼…. 너무 다양하다. 하지만 일부러 활동 범위를 분류하고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는지 정의 내리는 순간 그에 맞는 사람들만 이곳에 오게 되고, 카테고리에 맞춰 갇혀버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멤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펼치고 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협업하는 방식을 통해 ‘가지 않은 길’을 실험하는 것이 현재의 목표라고 한다. 자기 좋아하는 걸 하자. 근데 혼자 가면 힘드니까. 같이 가서 도와주자. 이런 식이다.

어쩌다 욜로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만해도 농부가 되려는 사람들은 없었다. 문화 기획을 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와서 살아 보니까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고서는 어른들과 관계를 맺고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멤버들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농사에 익숙해져가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농촌 투어프로그램도 생각하게 되고 농사와 운동을 접목시키기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어떤 방향으로 간다는 비전은 없었고 하고 싶은 거 하자는 게 대전제였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지금 하는 일들이 ‘욜로’로 가는 과정이다.

INTERVIEW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의 이 사람

이성빈 이사

제주도에 오기 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어째서 제주도였나요?

20대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아요. 워킹홀리데이이든 여행이든 가고 싶은 곳은 계속 다녔던 것 같아요. 정착하려고 고향인 대구로 다시 돌아간 게 29살이에요. 대구에서 처음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어요. 지역에서 축제도 만들고 문화 기획을 하며 지냈어요. 그러다 결혼하고 애를 낳고 보니, 충분히 많이 놀았고 평생 이런 식으로 살 순 없겠다 싶더라고요. 귀농에 대한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미루지 말고 빨리 실행하자 했죠.

오히려 인지도가 쌓인 대구 주변이나 육지의 다른 지역은 생각을 안 하셨어요?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좀 알리고 싶은데 육지에는 제주도 같은 공간이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외국인 중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가 꽤 많아요. 그런데 육지에서는 농촌 가면 진짜 일밖에 못하거든요. 인부 밖에 안되는 거예요. 하지만 제주도는 일도 할 수 있고 조금만 나가면 바다도 있고 관광지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일 할 기회도 주고, 문화관광적인 체험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죠.

이 일을 잘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런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끌리면 과감히 결정하는 편이에요. 지금껏 제가 끌리는 걸 따라 살아왔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하고 대신 책임을 내가 지는 삶이었죠. 왜 인지 모르지만 오고 싶고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택하고 밀어 붙였고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살 것 같아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다보면 후회를 많이 하는데 저는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게 제 인생이니까요.

지금의 삶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이 있나요?

성장할 때는 부모님이었죠. “안돼” “하지마”라는 말을 한 번도 안하셨어요. 학창시절에도 무슨 얘기든 하면 “그냥 해” “대신 책임만 네가 져” 였죠. 그래도 지금은 정신이 온전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웃음) 살아보니까 부모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알겠어요. 지금은 부인이 제일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에요. 가정을 남편 부인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는 서로 지키지만 사생활은 터치 안 하거든요.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설득시키는 과정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부인이 뭐 하고 싶다고 하면 “왜?” “하지마” 절대 없어요. 서로서로 그래요.

부모님의 교육철학이 특별한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이셨나요?

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넉넉하지 않은데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니까 알바를 했었죠. 책값이나 이런 걸 삥땅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웃음) 많은 일을 해왔는데 집에 손을 벌려본 적은 없어요. 돈 벌어서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기 바빴어요. 그러다보니 남들처럼 용돈을 제대로 드린 적이 없어 죄송하기는 한데 부모님도 그런 걸 뭐라고 하지는 않아요. 앞가림만 잘하라고 하시죠.

흔들릴 때는 없었나요? 매번 강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은 뭔지 궁금해요.

주변에서 친구들, 친척들이 뭐라고 많이 했죠. 왜 그렇게 사냐고.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흘리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제가 강인한 면이 없었으면 내 나름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흔들렸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많은 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계속 뭔가를 하면서 경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 사회를 공부하고, 그곳의 시스템을 배웠어요. 마음먹고 돈을 벌려면 벌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저는 먹고 살 만큼만 있어도 행복했는데,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돈만 버는 게 행복할까요? 물론 바닥을 치면 무슨 일이든 할 거에요. 하지만 역시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지, 타협을 하고 살 생각은 없어요.


기억속의 사진 한 장

요즘 가장 즐거운 일은 사실 애기 보는 거예요. 어린이집을 낮에 잠깐 보내는데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어서 (애기랑)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요. 재밌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제주에 왔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육지에서는 정말 바빴거든요. 그리고 여기 멤버들하고 하는 게 다 재밌어요. 텃밭 관리도 해보는데 초보들이라 잘 안되죠. 그래도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어른들은 항상 일손이 필요하거든요. 저도 여기 와서 처음으로 농기계도 몰아보고 그랬죠.

 기억발전소  사진 하라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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