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COLUMN     |     August

제주에서 혼돌내낭*
살이와 여행 사이, 우리가 배운 것

* ‘혼돌내낭’은 ‘한 달 내내’라는 제주도 사투리다. 여름과 겨울 방학 한 달을 이용해 제주에 살러 오는 혼돌내낭족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분양은 제주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 달간 아파트나 빌라를 얻어 생활하는 것이다.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한 달간 집이 아닌 곳에서 마치 여행하듯 제주 사람처럼 살아본다. 혼돌내낭족은 대부분 아이 엄마들이 많다. 아이들이 한 달 동안 자연과 함께 가족과 함께 실컷 놀다보면 많은 부족한 것들이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각박한 도시 살이에 맞벌이로 살면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고 이런 아이, 저런 아이, 아이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면 그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10년 동안 일로 휴가로 거의 매년 제주를 방문했습니다.
그 경험이 ‘한 달 내내’라는 시한부 제주 살이로 이어진 것이지요.
육아의 길에서 숱하게 길을 잃기도 하는 50점짜리 엄마지만
문득 아이도 행복하고 엄마도 행복한 비법은
어쩌면 ‘살이와 여행 사이’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초원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드는 것 말이다. 초원의 밤은, 초원의 새벽은 또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으로 설레는 일이었다.
그러다 가시리마을에서 게르를 만났다. 몽골 초원의 게르가 거기 와있었다. 벼르고 또 벼르다 제주에서 보낸 두 번째 여름,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을 게르에서 보내기로 했다.

 가시리마을은 조선시대 으뜸말을 길렀던 국영목장 즉 갑마장이 있던 곳으로 600년 역사의 목축문화를 간직한 마을이다. 유채꽃밭으로 유명한 녹산로를 달리다보면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 안에 조랑말체험이 가능한 목장은 물론 게르 및 야영장이 있다. 그리고 이 안에는 조랑말 박물관이라 불리는 범상치 않은 회색건물도 있다. 광활한 초지와 크고 작은 오름의 능선을 거스르지 않는데다 세련미가 압권인 이 박물관에는 말과 관련된 유물, 문화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각종 미술체험도 할 수 있었다. 초지를 달리는 조랑말타기 체험에 금방 볶아 잘 내린 커피까지 주는 패키지상품은 여러 번 이용해도 늘 매력적이었다. 아이들은 제주의 목축문화, 말테우리의 삶을 구경하며 박물관 안을 뛰어다녔고 나는 그 옆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가시리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600년 역사와 전통을 가졌으되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사라졌던 낡은 마을이 새롭게 되살아난 사연이 놀라웠다.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농림부가 지원하는 ‘신문화공간 조성사업’의 도움을 받아 조랑말 박물관을 개관했고 승마장과 캠핑장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인 ‘조랑말 체험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온전히 가시리 주민들이 설립했으니 국립이나 시립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초의 ‘리립박물관’이라는 것.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절로 묻어났다. 관광객에 불과하지만 가시리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져 우리 가족도 괜시리 가시리를 들락거리게 됐다.

아이를 데리고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하는 육지엄마들이 토로하는 불만 중 하나는 소위 말타기 체험비용이 너무 들쭉날쭉하다는 것이다. 말타는 곳은 여기저기 많지만 비용도 다르고 체험내용도 제각각이어서 말을 탈 때마다 본전 생각이 간절해진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10여분 트랙만 돌아도 3,4만원이 우습게 든다. 아이가 원하는 건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너른 초지를 말 타고 제대로 달려보는 건데 그러려면 5,6만원으로도 부족하다. 아이가 둘이면 여기서 곱하기 2. 주머니 사정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아이들이 말 타고 싶다고 할 때마다 늘 엄마는 고민스럽다. 그런 내게 가시리의 조랑말체험은 가성비 최고였다. 숙련된 교관들이 안전하게 아이들을 안내했고, 말 타고 나가면 바로 크고 작은 오름들이 멀리보이는 한라산 중산간의 너른 초지가 나온다. 서너번 말을 타고 나니 아이는 ‘공주’,‘대장’ 등 좋아하는 말도 생겼고, 제법 발을 구르며 말을 타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진 푸른 초지를 말을 타고 달린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고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강렬한 경험일 터. 예민하고 불안이 커서 파도치는 바닷물에도 발도 담그지 못하던 아이가 말을 타고 말과 교감하며 달리기에 심취했을 때 엄마인 나는 놀라워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저 한달을 바다와 숲에서 열심히놀았을 뿐인데 아이는 놀랍도록 빠르게 단단해지고 있었고, 회복탄력성을 높여가고 있었다.

비록 한달이지만 나는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일상을 살아보고 싶었다. 제주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도민처럼 살아보자’고 마음 먹었다. 아이들과 놀러다닐때도 이왕이면 관광코스가 아닌 도민들의 피서지를 골라다녔다.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도 많았지만 극성수기래봐야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인 피서지들도 많았다. 마치 우리가족전용 해변 같은 애월의 작은 모래해변, 한여름 주말에도 열댓명이 전부였던 서귀포자연휴양림의 숲속 계곡수영장. 그리고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논짓물 담수욕장까지 제주의 호텔과 수영장을 전전할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제주도 사람들의 진짜 여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제주에는 아직도 마을 공동체가 많이 살아있고,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체험시설이나 편의시설도 많다는 사실말이다. 마을에서 운영하니 조금 미흡해도 믿고 이용할 수 있었고, 우리가 지불한 체험비용이 마을을 위해 쓰인다니 이 또한 마을 경제를 살리는데 일조하겠구나. 보람도 컸다. 제주의 자연은 제주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지만 또한 우리처럼 장기체류하는 외지사람들에게는 치유와 회복의 힘을 가진 곳이다. 외지사람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 마을에서 머물고 마을의 체험시설이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양쪽 모두에게 윈윈하는 전략이 아닐까.

사람들이 제주에서 한달살기를 결심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집, 숙소라 답할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머물 거처만 해결되면 제주살이 절반은 해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제주에서 한달을 살았던 2013년, 그해 여름에도 집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물론 그때도 한달에 사백만원짜리 통나무집도 있었고, 한달 40만원짜리 잠만 자는 방도 있었다. 예산만 충분하다면야 마당넓은 전원주택도 좋겠고, 바닷가 펜션도 좋을 것이다. 아이들만 없다면 잠만 자는 방도 좋고, 여러 명이 함께 쓰는 도미토리면 어떻겠는가. 그러나 아이들을 데리고 한달살이를 결심한 엄마들에게는 숙소에 조건이 붙는다.

한달 동안 큰 사고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으면서 내 예산 내에서 타협이 가능한 집 말이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제주행을 고려하는 많은 엄마들이 추천해줄 집이 없냐고 묻는다. 집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제안컨대 나는 제주에서 본 의욕 넘치고, 인정 넘치는 마을 공동체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면 좋겠다. 마을 안에 여름 한철 비워두는 집도 좋고, 혼자 사는 할머니의 문간방도 좋고, 마을에서 운영하는 수련관 빈방도 좋다. 마을마다 남는 집과 방을 뒤져 도시에서 오는 가족들과 연결해주면 어떨까. 이런 시도가 가장 적극적이었던 시기는 올레길이 열릴 때였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올레길을 걸을 때처럼 혼자사는 제주 할머니네 빈방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서로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그러나 이건 안될 말이다. 할머니네 방 한칸이 어디 있는 줄 알 수가 없다. 내 한 몸 뉘이면 충분한 올레길에서의 하룻밤이 아니다. 아이들도 있고, 짐도 있고, 한달 간 큰 문제없이 일상을 살려면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집을 구하듯 나름 정보가 필요하다. 눈 귀 어두운 팔순의 할머니가 인터넷을 이용할 리 만무하고 도시의 젊은 엄마들이 할머니를 만날 기회는 더더욱 없다. 이걸 마을 공동체가 나서고, 제주도나 시 단위의 지원센터가 밑그림을 그려준다면 제주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한달살기 숙소비용이 기존의 연세나 월세보다 적어도 1.3배, 많게는 2배 이상 비싼 것을 감안하면 더욱 해볼만한 사업이 아닐까 싶다. 도민들은 수익을 창출하고 한달살기 가족들은 제주경제를 살리고, 무엇보다 제주를 제대로 알아가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게르에서 보내던 밤, 한라산 초원에서 본 밤하늘은 별이 쏟아질 듯 했다. 아이들의 연한 속살을 끌어안고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초원의 밤에 침잠했다가 게르에서 맞은 아침은 경이로웠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던 초원의 초록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산담을 가지런히 쌓은 묘지는 하나의 조형물 같았고, 멀리 보이는 따라비오름, 성처럼 둘러진 잣성, 날개를 쉬고 있는 풍력발전기. 평화로운 일상이 나를 깨쳤다. 이제까지 살아온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지혜, 다시 돌아간 일상에서 치열하게 싸울 힘을 준 제주살이. 제주도 한달살기 열풍이 도시 사람들은 물론 제주사람들에게도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바람이 되길 바란다.

글&사진 김윤양
『제주에서 혼돌내낭』(2015, 네시간) 저자
1997년 MBC <pd수첩>으로 방송에 입문한 18년 차 방송작가이자 방랑 DNA를 온몸으로 누르며 착실히 살아온 두 아이의 엄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역사스페셜>, <피플 세상속으로>,<사미인곡> 등을 제작했고,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이산의 아픔을 담은 KBS 파노라마 <카레이스키 150>을 집필했다. </pd수첩>현재 KBS <아침마당>을 제작하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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