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INTERVIEW   |   September

02

화살표의 기적
놀멍쉬멍, 올레 10년

사단법인 제주올레 안은주 상임이사

안은주 상임이사는 서명숙 이사장이 제주올레를 시작하겠다며 제주로 내려온 이듬해인 2008년 9월에 내려왔다. 선배를 도우려 왔지만 12월에 복직할 계획의 시한부 입도(入島)였다. 하지만 4개월 후 그는 서울로 가지 않았다. 

그동안 익숙한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선택을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다. 그간 살아온 삶의 방식과 습관을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길이 잘 닦인 길이 아니라 없는 길을 새로 내야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 길을 선택한다. 

제주올레 10주년을 맞아 안은주 상임이사에게 지난 기억을 청해 들으며 떠올린 것은 ‘삶의 은유로서의 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길을 내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그곳에 있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처럼 기적을 이루어내고 있는 제주올레. 그림자임을 자처하며 그 길에 있었던 안은주. 이것은 그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주올레의 미래를 향한 ‘과거로부터 온 이정표’ 같은 이야기다.

기자라는 일을 하다 길을 내는 사람이 되셨어요. 길을 빼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이 되었는데 언제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처음부터 직업을 바꿀 생각으로 내려온 건 아니었어요. 선배(서명숙 이사장, 두 사람은 <시사저널>에서 함께 일했다)가 일을 벌였는데 자기 호주머니 털어서 길을 내고 있었죠. 와봤더니 삽질 낫질할 사람은 있어도 행정 업무 할 사람은 없고, 다들 길바닥에 나앉을 것 같고…. 그래서 휴직하고 내려왔는데, 후원 시스템만 만들어주고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어요. 당시 <시사인> 창간 1년도 안된 때라 그만 둘 상태도 아니었고요.

왜 다시 안 올라가셨어요?

95년에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왔었어요. 그때 남편이랑 나이 들면 제주에 와서 살자 할 정도로 좋았죠. 그런데 선배가 늙어서 오면 소용없다고…. (웃음) 결정적인 건 제주도에 와서 길을 걷는 사람들이 “고맙다” “행복하다” 그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그때서야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15년 기자생활 동안 내 기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을까?’ (기자보다는) 이 일이 내 인생에 복을 짓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표를 냈어요. 휴직기간이 끝나고 복직을 하지 않았죠.

선배를 도우려 내려온 것이 일이 되었네요. 하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만으로 기존의 일을 모두 내려놓는다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선배에 대한 애정과 의리에서 시작한 건 맞아요. 하지만 1코스 개장하고 가족들이 전부 내려와서 함께 걸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이 15km를 다 걷고 나서 “내가 그동안 와서 보고 알던 제주도는 진짜 제주도가 아니구나!”하는 걸 보고 이런 길이 계속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며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이 일은 걷기를 통해 본인이 행복해지는 경험을 안 하면 계속 하기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길을 통해 자연이 주는 위로의 힘을 체험하고 나면 알게 되죠. 서울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을 만나서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 하며 풀잖아요. 여기서는 그저 나가서 걷기만 해도 위로를 받아요. (도시에서처럼 스트레스가) 목까지 차오를 일도 별로 없고 쉽게 누그러지죠. 여기서 일을 하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밌겠다, 좋다, 신 난다” 예요. 이런 생각으로 일을 하니까 “죽어도 안 돼, 죽어도 해야 돼“ 이런 게 별로 없어요. 성질 낼 일도 별로 없고. 

그런데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죠. 요즘에는 이사장이 그래요. 식구가 많아지고 해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나고 하니까…. 길을 내는 일이 이렇게 많은 사람과 많은 돈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몰랐다고.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야. (웃음)

기자로도, 올레지기로도 오래도록 함께 계셨는데 서명숙 이사장은 어떤 분이신가요?

기자 선배일 때는 양면의 사람이었어요. 일하는 선배의 모습은 엄청 무서운 일중독자였죠. 성질 불같고. 오죽했으면 별명이 ‘왕뚜껑’이었어요. 그런 선배에게서 본 건 치열함과 열정이었죠. 화를 내도 그게 앙금이 남거나 나쁜 사람 이런 생각이 안 들어요. 왜 화를 내는지 알고, 왜 일중독에 빠졌는지 아니까…. (선배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선배고 너는 후배고, 나는 여자고 너는 남자고 이런…. 그런 게 좋았어요. 기존의 관습이나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과 마음이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일하다 보면 기자 생활은 늘 마감이 존재하고 특종을 위한 경쟁이 있어요. 치열한 현장에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내려와서 보니까 완전히 다른 거예요. 도 닦았다고 해요. 언론인 서명숙과 제주올레 서명숙은 그 성격이 완전 판이하거든요. 훨씬 부드럽죠.

예전에 기자와 올레지기의 차이를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비판과 지적을 하는 일이 기자라면, 칭찬과 격려를 무기로 하는 일은 올레지기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히 다른 성향의 일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기자가 꿈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꿈을 이룬 사람이에요. 대학 때 <시사저널>이 창간됐는데 ‘내가 기자를 하면 이런 매체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바라던 곳에 들어갔고 행복했어요. 사회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죠.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바로잡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치니까요. 기자는 자기 이름으로 사는 사람이에요. 어디에 기사를 쓰건 자기 이름이 붙고 기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죠. 하지만 제주올레는 내 이름을 숨기고 하는 일이에요. 남들이 행복하게 하는 일이죠. (사람들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내 이름을) 가리고 하는 일…. 올레 일은 밝은 면을 보면서 시너지를 내고 확장시키는 일인 것 같아요.

사실 제주올레의 성공은 마법 같은 일처럼 보입니다. 수익을 내야하지만 수익을 목적으로 할 수 없고, 길을 낸다고 해도 지역 주민의 동의나 지지를 처음부터 얻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고요. 쉽지 않은 고난의 길이었을 텐데 제주올레의 선한 동력, 선한 영향력이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가능했다고 생각하세요?

제주올레의 지난 10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화살표의 기적’이라고 쓰겠어요. 기적 같은 일이죠.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이뤄낸 기적. 그 안에서 갈등이 없던 것도 아니고, 늘 응원과 지지만 받은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누구도 욕심을 내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아요.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말이 “선배와 나만 사사로운 욕심을 안 부리면 올레는 지속가능해.”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면 사람도 떨어져나가고 많은 것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이사장도 그러죠. “올레는 내 것도 아니고 제주도 것도 아니고, 앞으로 백년 천년 이 길에 살고 걸어갈 사람들의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모두가 주인인 길이 가능한 것 같아요. 시작한 사람들이 욕심을 안 부렸고, 모두 함께 만드는 길이었기 때문에요.

 

제주올레의 역사에서 길의 개척을 생각한다면 탐사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탐사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1, 2기 탐사대장은 이사장의 남동생들이었어요. 2007년에 이사장이 제주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지역 공무원이나 전문가들이 그의 구상을 듣고 모두 뜯어말렸어요. 국민소득 3만불 이전에 ‘걷기 여행’이라는 개념은 불가능하다는 거였죠. 그럴 때 “진짜 제주도를 제대로 보여주는 방식”이라며 지지한 사람이 동생들이었죠. 사실 그 동생 덕에 올레가 가능했던 부분도 있어요. 알려졌듯이 서동철 탐사대장은 전직 조폭이에요. 서귀포가 시골이다 보니 학창시절부터 ‘땅벌파’랑 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아이들이 나이 먹어서 나중에 청년회장이 되고 이장도 되고 그러다보니 마을 사람들 설득도 부탁하게 되고…. 그럼 어떤 분들은 흔쾌히 허락해주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절대 안 된다고 하기도 하고. 초기 탐사팀은 그런 고민과 고생이 많았어요. 2~3기 들어서는 코스가 늘어났죠. 걸으러 오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길의 상황은 수시로 바뀌었어요. 이게 토목공사를 하고 길을 내는 게 아니잖아요. 있는 길을 걸어 다닐 수 있게 가꾸고 표식을 남기고 하는 건데 태풍이라도 오면 길이 끊기고, 또 제주풀이 와랑와랑 잘 자라거든요. 풀을 베고 돌아서면 그새 나있는 거죠. 여름은 예초와의 전쟁이에요. 1년에 5번은 예초를 하는데 올레 코스를 3명의 탐사팀원이 예초를 어떻게 다 해요. 자원봉사자들이랑 마을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며 해결합니다. 여름에 탐사팀원들 보면 마음이 안 좋아요. 온몸이 풀독에 시뻘겋게 익어있고…

탐사팀원은 어떤 분들이 되나요?

탐사대의 3가지 요건이 있어요. 튼튼한 허벅지, 뜨거운 심장, 자유로운 영혼. 탐사팀 일을 하면 튼튼한 허벅지는 저절로 얻게 되죠. 두 번째 조건은 자기가 즐길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걸을 때 행복한 길을 찾아내야하기 때문에 필요해요. 사람들의 심장이 뜨거워져야 감동적인 길이 나오는데, 그러려면 길을 내는 사람의 심장이 뜨거워야하죠. 마지막 조건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도보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틀에 박히지 않은 사람들이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의 감수성과 마음을 알려면 탐사팀원 또한 자유로운 영혼을 가져야 하겠죠?

 

* 故 송수호 제주올레 탐사대장 생전에 제작한 제주올레 탐사실(탐사대) 이야기

탐사대 소개

2007년 서명숙 이사장이 제주에 내려와 친동생 서동철과 함께 길을 내기 시작했고 3기 탐사대장 송수호에 이르기까지 26개 코스 425km 제주올레 길을 완성했다. 제주올레 탐사팀은 ‘걷는 사람과 자연에게 좋은 길’이라는 원칙 아래 1년 365일을 길 위에 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지역 주민이 합심하여 길을 유지하고 관리한다. 

1기 탐사대장 : 서동철
2기 탐사대장 : 서동성
3기 탐사대장 : 故 송수호

자료를 찾다보니 규슈 올레 개장 준비할 때 ‘우레시노 코스’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라 여쭤보고 싶었어요. 거의 다 결정된 상황이었는데 (국장님이) 최후 점검에서 개장 불허를 주장하셨더라고요. 길을 내는 사람들의 철학 같은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올레가 길을 내는 데 있어 가장 소중한 원칙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루트를 찾을 때 몇 가지 기준이 있어요. 걸어서 움직여야 하니 시종점은 대중교통이 닿을 것. 길의 풍광이 지루하지 않을 것. 거기에 더해 풍광만 좋아서는 안 되고 문화나 스토리가 있을 것. 그리고 점심 때 식사를 할 수 있는 마을을 지나갈 것. 그러면서 전체 노선이 걷기 좋은 길이어야 합니다. 올레는 오랫동안 걷기 때문에 포장도로가 너무 길면 안돼요. 어쩔 수 없는 경우라도 가급적이면 1~2km를 넘지 않게 하려고 하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길의 퀄리티가 너무 떨어지거든요. 심사를 하면서 마지막에 불허한 이유는 포장도로가 너무 많았고 풍광이 너무 지루했고 탐사대가 1000km 이상 걷고 그 루트를 찾았다고 했는데 가보니까 그냥 차로 갈 수 있는 길이었어요.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연결하는 게 올레인데 말이죠. 사실 길을 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잘 유지하는 거예요. 길은 관리하는 게 더 어렵죠. 자연의 길만이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잖아요. 그럼 그곳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또 중요하죠. 길을 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길의 부분이자 요소로서 지역민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고….  깨달으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제주올레의 이후를 생각하며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올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어요. 첫째 걷는 사람이 행복한 길. 둘째 지역민이 행복한 길. 셋째 길을 내어준 자연이 행복한 길.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원칙이 되었어요. 이렇게 10주년이 되고 나니까 네 번째로 길을 내는 사람들…. 스태프 뿐만 아니라 후원자, 자원봉사자 등 올레를 지키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의 세 원칙을 챙기느라 네 번째 원칙은 아무래도 뒤에 있었죠. 돌아보면 초창기 멤버들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어서 뛰어든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2세대가 합류해있죠. 우리 때처럼 일을 하게 하려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죠. 세대차이도 있어요. 저희 세대는 20대부터 계속 (사회적으로)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 지금은 조금 다른 시대죠.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 틀에 갇혀 살려고 하지 않아요. 지금 세대에 감동을 주려면 만드는 사람들도 같은 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경제에는 선의의 동기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하며 버텨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의 일을 10년 이상 지속했고, 없었던 길을 개척한 사람으로서 사회적경제의 젊은 창업자나 마을기업, 협동조합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면…. 이게 쉽지 않은 길은 맞는데. 지치지 않고 하려면 자기가 재밌어야 해요. 그래야 버틸 수 있어요. 그리고 내 중심은 자기 자신을 잡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이야기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디어나 사업에 대한 부분은 늘 귀를 열어놓아야 해요. 제주올레에서 한 많은 일도 우리가 다 한 게 아니에요. 스태프들의 아이디어만이 아니라 외부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밖에서 던져준 일들이죠. 사업아이템들은 그렇게 나와요. 너무 혼자 고민을 끌어안고 간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해요. 많이 묻고 듣고 하되 자기가 세운 중심이나 원칙을 바꾸지만 않으면 길은 늘 보입니다. 지금은 훨씬 좋아진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동지들이 많아졌죠. 연대와 협업도 시간 남으면 하는 일로 방치하지 말고, 일의 중심에 놓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스태프들에게 하는 얘기로 “세상에서 돈을 해결하는 일이 가장 쉽다”고 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마음을 얻는 일인데 우리는 그걸 제일 먼저 해야 하고, 쉬운 일은 가장 나중에 한다”고…. 진짜 그래요. 돈을 얻는 건 오히려 쉬운데 마음을 얻는 게 어렵죠.

전미정(기억발전소) 사진 한용환(하라사진관)

제주올레 프로젝트 소개

스토리 펀딩 바로가기 : storyfunding.kakao.com/project/16917

일시 : 9월 7일(목) 오후 2~5시

일시: 9월 7일(목) 저녁 7시~9시 | 장소: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예정) | 대상: (2017.08.16 기준) 날개달린 간세(제주올레 정기 및 일시 후원회원), 담돌 간세, 친구 기업 등
※ 사전 신청자에 한해 참석 가능한 행사입니다. | 신청: https://goo.gl/forms/acx32a2AcY3KPwzX2 | 문의: 제주올레 후원사업팀 064-762-2170

제주올레 길 유지 보수를 도왔던 자원봉사자 및 마을 주민 초청 잔치
일시: 9월 9일(목) 장소: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일시: 11월 3일(금)~5일(일)
2017 제주올레걷기축제에 호텔을 더하다 : https://docs.google.com/forms/d/1k-ifKBi_EN7mdPEFC_VBwJkoBBJbNeZzTrcN6w5RBZU/edit

기억속의
사진한장

처음부터 계획은 없었다던 안은주 이사는 기억 속 사진 한 장으로 제주올레 초창기에 길을 안내하기 위해 탐사팀에서 돌에 그려 넣었던 화살표를 꼽았다. 제주올레의 화살표는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은 선명하게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지만, 10년 전에는 보이지 않는 화살표를 찾아가며 길을 내던 사람들의 발자국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