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으로 빚은
제주 술
제주술생산자협동조합

허벅에 담긴 술만 보면 제주 전통주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허벅술은 논이 있던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마을에서 의례용으로 조금씩 생산한 민속주로 일반 가정에서는 거의 만들지 않았다. 사람들 기억 속의 ‘허벅술’은 도내 양조회사에서 증류식 소주를 허벅에 담아낸 상품으로 오조리 마을의 민속주와는 전혀 다른 술이다. 쌀이 귀한 제주에서 사람들은 쌀 대신 좁쌀을 이용해 술을 빚었다. 차좁쌀을 반죽해 만든 오메기 떡에 누룩을 섞어 발효한 오메기 술, 오메기 술을 증류해 만든 고소리 술이 그 주인공이다. 오메기 술은 무형문화재 3호, 고사리 술은 11호로 등록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까지 이 술을 만나는 것은 흔치않았다. 지난 10여 년 제주 전통주를 복원하는 일에 힘쓰고, 도내 소규모 양조장들과 그 노하우를 나누기 위해 제주술생산자협동조합을 설립한 김숙희 대표 덕에 제주산 술들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제주도민도 모르는 제주 전통주

1998년 애월에 32억이 투자된 고소리 술 양조장이 세워졌다. 생산만 하면 판매가 이루어지는 줄 알았지만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부도가 났다. 다음 주인이 경매로 양조장을 받았지만 늘 문이 닫혀 있었다. 새 주인은 당시 향토음식점을 하던 김숙희 대표도 잘 알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주인이 그에게 향토음식점을 운영 중이니, 전통주를 같이 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술을 못해요. 취미가 없다고. 그래서 안 한다고 했어요. 근데 그 분이 계속 ‘해봐라, 한 번. 이게 제주도 술인데 누군가는 해야 하니 그런 마음에서 해봐라’ 해서 타의 반, 자의 반 하게 된 거예요, 실은.”

제주에서 좋은 음식은 찾으면서, 제주에서 생산한 좋은 술을 마실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속상했다 말하는 김 대표는 2005년 현재의 양조장을 인수받았다. 제주 전통주에 대한 막연한 연민으로 시작한 일은 5년이 지나도 갈피를 못 잡았다. 8년 째 되던 해, 화학을 전공한 아들이 엄마를 돕겠다고 학교를 휴학 하고 새로 연구 개발을 시작했다. 어렵게 만난 전통주 스승이 아들과 함께 3년여 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실험한 끝에 지금의 오메기 술과 고소리 술이 탄생했다. 김 대표는 아들과 만든 술로 전국의 주류 박람회나 품평회를 다녔다. 실제로 그가 만드는 고소리 술은 도내보다 도외와 해외에서 먼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서울의 식당에서 고소리 술을 보고 양조장까지 찾아오는 이들도 생겼다.

다양한 생산자들이 상생하는 구조

그가 어렵게 일군 성과는 제주의 소규모 양조장들에겐 본보기나 마찬가지였다. 제주의 양조장들은 집에서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만드는 술)로 시작했다 농가들과 협력을 맺고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조합의 감귤이나 백년초로 와인을 만들고, 쌀이 필요한 경우 제주에 딱 두 곳 있는 논의 쌀을 수매해 술을 빚는다. 지역 특산주는 세금 감면 혜택도 있지만 장기전으로 농가에 꾸준한 판로가 생기고, 양조장은 안정적인 재료를 공급받는 선순환이 이루어져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국내 주류법으로 전통주 판매와 유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에 제주에 흩어져있던 생산자들이 어려움을 안고 김숙희 대표를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제주술생산자협동조합’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사실 전통주와 지역 특산주 만드는 분들이 다 어려워요. 그리고 직원들이 저희들처럼 있는 게 아니라 보통 가보면 다 혼자, 많아야 둘 이렇게 해요. 상황자체가. 그래서 (홍보도 판매도)못 하는 거예요. 처음 모였을 때 하고 싶었던 게 ‘잘 만든 우리 술 판매하는 거’ 하나였어요.”

제주술생산자협동조합은 감귤 와인을 만드는 ‘1950’과 ‘녹고의 눈물’을 생산하는 ‘토향’, ‘술도가 제주바당’, ‘감귤와이너리’, ‘혼디주’, ‘황칠주’, ‘한라산 소주’로 이루어져있다. 최근 조합원이 된 한라산 소주의 경우 전국으로 나가는 인기 술인 만큼 병 라벨에 다른 조합원의 전통주와 특산주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돕기로 했다. 한 번 병을 생산하면 10만 병을 만들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역 양조장끼리 조합을 만들어 상생하는 경우는 전국에서 제주술생산자협동조합이 유일하다.

지역에서 전국으로

일본을 비롯, 해외 주류 시장은 이미 지역에서 지역재료로 생산해 판매해 지역 브랜딩을 하고 있다. ‘제스피’나 ‘제주맥주’가 그 예다. 제주술생산자협동조합 역시 제주 전통주 시장을 넘어 현대적으로 해석한 지역 특산물로서 제주의 주류 시장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하는 목표를 가졌다. 6개 조합원의 미니어쳐 술(오메기 술, 녹고의 눈물, 감귤주, 1950, 헬스와이너리, 술도가 제주바당)을 패키징 한 ‘동그라미’가 그 시작이다. 최근 제주 향토음식점에도 페어링 술로 입점했고, 로컬마켓인 ‘지꺼진 장’에도 함께 참여해 지역 주민에게도 알리고 있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술이 잘 알려져서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지켜나가고 싶다는 그들의 바람이 잘 익어가길 바란다.

“도내 주류 판매에서 막걸리 제외하고 참이슬이 1위래요. 올레소주는 대기업에 넘어갔고요.
가만 보면 제주 분들이 제주도 술을 진짜 몰라요. 많이 몰라요. 동그라미’라는 이름도 서로 모나지 않고 둥그렇게 하자고 그렇게 지어놓은 거거든요,
제주에서 생산되는 술들이 잘 알려져서 지역 경제도 돕고 술 빚는 사람들도 상생하면 좋겠어요.“

INTERVIEW

제주술생산자협동조합의 이 사람 김숙희 대표

이 일을 하는데 있어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님이나 시어머님이 집에서 술을 빚었어요. 힘들어보여서 ‘나는 절대 저걸 하지 말아야지’ 했거든요. 그런데 ‘제주 전통주’ 잖아요. 누군가는 해야 되는 거예요, 제가 안하면 없어져버릴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도 데려온 거고. 그래서 가업이 된 것 같아요.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진도 홍주나 안동 소주 같은 전통주는 전통주니까 지역에서 지원을 해줘요. 저희는 알려지고 나서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열심히 해서 상을 받는데도… 저희 제주도는 다른 것 홍보 할 게 너무 많아서 저희들까지 안 오나 봐요, 한 번은 제가 도청에 가서 뭐라 그랬죠.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너무 하는 거 아니냐(웃음). 서운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도와주세요.

제주 내에서도 제주 전통주의 가치가 저평가 되어 있는 게 요인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것 같아요. 저희 양조장에 체험하러 많이 찾아오잖아요? 처음에 도민은 한 분도 없었어요. 제가 체험 오시면 설명을 해요. 술은 취해야 하는 거 아니라고. 문화를 바꿔야 되는 거다, 외국처럼. 저도 술 하니까 외국에 술 하는 데 다 가봤어요. 이 사람들은 밥 먹으면서 한 잔씩  기분 좋게 마시잖아요. 우리 제주도 이렇게 문화가 바뀌었음 좋겠어요. 젊은 친구들이 조금씩  바꿔가는 것 같아요.

되게 특별한 조합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조합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다들 자기 스스로 일어서야하는 기업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걸음마 걷는, 협동조합에 모이면서 배우고 있어요. 제주도는 물류비도 비싼 데 병 값도 비싸게 오더라고요, 처음에. 다 배로 넘어오잖아요. 저희들이 처음에는 제 값 주고 샀어요, 모르니까. 자꾸 하다보니까 그런 사소한데에 노하우가 있잖아요. 아 이건 아니구나. 제가 병공장하는 데 직접 다 가봤어요. 가서 타협을 해서 하니까 얼마든지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다 가르쳐주죠. 병은 여기서 하면 싸게 할 수 있고 박스는 어디서 하면 싸게 할 수 있고. 처음에 서로 모르면 전부 제 앞으로 오는 거예요. 뭐는 어디서 하면 될까요? 그리고 제주도는 물류비 때문에 제일 힘들어요. 팔레트 하나당 15만원에서 20만원까지 해요. 근데 지금은 되게 저렴하게 해요. 이것도 경쟁들이 많잖아요. 한 업체 잡아서 저희 협동조합에서 모든 한 업체에서 하니까 그렇게 할 테니까 싸게 해 달라 하죠. 같이 모이니 좋아요. 저희들이 박람회 가잖아요? 다같이 가요. 제가 지접 도에 신청해서, 육지 가면 사람들이 다 신기해 해요. 자기네들은 잘 안된대요, 해보니까 막 다투고…

조합원들은 각자 어떤 연유로 시작을 하셨는지 아세요?

보통은 이게 하려고 해서 했던 건 아니더라구요. 주로 음식 했던 분들이 많이 해요. ‘술도가 제주바당’도 처음에 음식을 했었나 봐요. 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일 하다 온 사람들. 서로 이제 노하우들이 있잖아요. 나는 이렇게 해보니까 이게 아니더라 하면은 그걸 참고로 해서 서로가 만들어보고 이렇게 하는 것 같아요. 되게 힘든 일인데 쉽게 내가 해야지 해서는 절대 아니고, 내가 정말 좋아서, 내가 정말 좋으면 하지만 좋아하지 않으면 일이라 그런 것 같아요.

다른 협동조합과 연계 가능한 지점은 무엇 일까요?

저희도 술을 오메기 술, 고소리 술 말고 감귤 껍질로 만드는 니모메 술도 출시 했어요. 일단 감귤은 전부 수매를 했어요. 껍질이니 알맹이는 필요가 없잖아요? 그럼 알맹이는 필요한 분이 있을 거 아니예요. 알맹이 필요한 곳이랑 연계해요. 다들 이런 방식이에요.

가족기업의 장점이 있다면?

이게 그냥 회사 같으면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면 되는데 이거는 그렇게는 안되는 일이에요. 해보니까. 하다보면 명절 때 바쁘니까 야간작업도 해야 하고. 식구는 그게 가능하지만, 다른 분들은 안 돼요. 퇴근 시켜야하고, 쉬게 해야 하고. 가족기업은 아무래도 조금 더 노력을 하고 일을 더 많이 해요. 전통주 명맥을 잇는 데에 이윤을 추구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니까.

타 지역과 제주의 전통주 차이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역마다 다 자기만의 술들이 있죠. 제주의 특색은 물인 것 같아요. 술의 80%가 물이 차지해요. 기본 물맛이 좋아야 되니 제주도는 그걸 다 갖고 있죠.

마지막으로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도민들도 지역 술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그리고 제주 술을 도민이 정말 전부 알 때까지 노력하려구요. 그게 진짜 바라는 거예요.

제주샘주
http://www.jejusaemju.co.kr

 기억발전소  사진 하라사진관


학교급식제주연대

내 아이를 위한 한끼의 권리

서귀포 한라공동체

배우며 나아가는 생산자의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