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   INTERVIEW   |   January

06

아름답게 물들여 쓰여지다

제주천연염색협동조합 김순란 이사장

어린 시절,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을 물들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돌로 곱게 빻은 봉숭아 반죽을 흐르지 않도록 손톱에 올려 비닐에 싼 손끝을 실로 묶은 뒤, 가지런한 자세로 하룻밤을 꼬박 보내야만 색이 나온다는 것을. 지금은 500원이면 시간 내에 혼자서도 빠르고 간편하게 손톱을 물들이는 상품이 나왔지만, 마치 자연이 준 선물처럼 손끝에서 손끝으로 전해지던 맑고 발갛던 꽃잎 고유의 색은 예전의 방식이 아니면 흉내내기 어렵다. 여기 봉숭아 꽃잎으로 물들인 손톱처럼 자연을 닮은 색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상품이 있다. 제주천연염색협동조합의 김순란 이사장은 천연염색기법으로 자연을 담아내는 지혜와 삶을 배우고 협동조합을 통해 전통이 알려준 지혜를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천연염색에
빠지다.

©김순란

어떻게 천연염색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2011년에 천연염색에 입문하게 됐죠. 천연염색옷을 입어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원래는 다른 일을 했었는데 몸이 안 좋아져 쉬던 차에 언니의 일을 도우면서 천연염색을 알게 됐어요. 관심을 가지다 보니까 더 깊이 알고 싶어졌죠. 염색시장에 들어서서 어르신들, 선배들한테 물어보니 잘 안 가르쳐주려고 하더라고요. 제주도말로 “아랑 뭐할티, 고랑 몰른다” (알아서 뭐할거니, 말로는 모른다) 하시더라고요. (웃음) 저대로 알아보려고 많이 공부했죠.

이사장님을 빠지게 만든 천연염색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천연염색이 힘들어요. 중노동이에요. (웃음) 하지만 천연염색은 어떤 동작이냐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서 컬러나 무늬가 달라져요. 또 햇빛의 양에서도 많은 것이 달라지죠. 늘 새로운 것을 연구하면서 창출해나간다는 것이 재미있어요.

제주천연염색에 대해서도 조금 더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저희 어머니가 해녀세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광목에 감물 들여 작업복으로 만드시는 과정을 보면서 컸죠. 그게 제주 전통 갈옷을 만드는 법이었죠. 따로 기록은 없지만 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손에서 손으로 전승되어 왔던 것이에요. 감물에는 탄닌 성분이 있어 항균이나 소취 작용을 해요. 선조들의 지혜가 여기에 있어요. 자세히 설명하자면 천연염색이라는 거는 다 천연재료를 쓰는 거예요.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덜 익은 감을 제주말로 폿감이라고 그래요. 폿감즙을 기본으로 해서 만들어요. 전통 갈옷의 색을 내기 위해서는 최소 3일 정도를 한여름 햇빛에 널어야 해요. 요즘엔 감물에 쪽, 국화, 양파, 오배자 등의 천연 염재와 면, 실크와 같은 동·식물성 원단에 새로운 색과 무늬를 만들죠. 물들인 천으로 스카프나 옷 등의 제품으로 만들고요.

이러한 관심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던 점이 대단하시네요. 독학으로 천연염색 공부를 계속해온 건가요?

혼자서도 공부해보고 어머니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배웠죠.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사)제주관광문화산업진흥원의 천연염색 사업을 알게 됐어요. 도민들에게 천연염색에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는 수업이었어요. 교육 받으면서 천연염색 하시는 분들을 만나고 공부도 하고 친해 지다보니 동호회까지 만들게 된 거죠.

함께 물들어갈
사람을 만나다.

동호회에서 협동조합까지 발전이 된 건가요?

맞아요. 저희 동호회 이름이 ‘제주천연염색동호회’예요. 동호회를 통해서 서로가 아는 것을 이야기하고 교류하다보니까 천연염색 기술부터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있었어요. 저는 교육 받은 것을 기록하고 꼭 동호회 회원들에게 알리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페이스북, 카페 등을 이용해서라도 정보를 공유하려고 했어요. 내 것을 주다보니까 상대방도 나에게 주고 서로 의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자연히 늘어나서 동호회 회장까지 맡게 됐어요. 교류를 이어가다보니 한 번 사업적으로 키워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1년을 고민하고 만들어진 것이 ‘제주천연염색협동조합’이에요.

1년 동안이나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협동조합을 만들지, 말지부터 만든다면 또 어떤 협동조합을 만들지만 1년을 고민한 거죠. 무엇 때문에 조합을 설립할지, 조합원 구성은 어떻게 할지, 조합설립 후 운영방향은 어떻게 할지, 조합 설립으로 얻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한 거죠.

고민 끝에 협동조합을 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함께 하시는 분들이 다 개인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에요. 저도 그렇고요. 천연염색과 관련해서 체험장을 운영하거나, 상품을 만들고, 또 연구를 하는 분들이죠. 개별 사업을 운영하니 시장경쟁력을 갖기에는 규모나 홍보 등에 밀릴 수밖에 없죠. 그래서 메이저급 공방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공동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그 시작이었죠. 마침 소상공인 협동조합 지원사업을 통해서 생산시설이나 공동브랜드를 만드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협동조합을 만들었죠.

협동조합을 만들어가면서 어려우셨던 점은 없으셨어요?

다 힘들었죠. 아무래도 설립 초기에는 협동조합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보니 수고를 많이 했어요. 일부 동호회원들이 모여서 조합을 꾸리겠다고 했을 때 출자금에 대한 부담감들이 있었고요. 조합을 하면 쉽게 기관에서 지원을 받을 거라 기대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기관에서 지원을 받는다는 게 호락호락 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까다로운 심사와 집행 과정을 통해서 공동마케팅 관련 등을 지원받을 수 있었죠. 돌이켜보면 1년간의 초기 운영은 협동조합사업마인드를 갈고 닦아내는 과정이었고, 이를 통해서 ‘협동조합은 함께 하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끼리 결국 모이게 됐어요.

함께 하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저를 포함해 5명이 함께 하게 됐어요. 제가 ‘갈마실’을 운영하듯 다른 분들도 ‘정뱅이’, ‘해원 천연염색 체험장’, 천연염색 연구소 ‘자연본색’, ‘이미애 갈옷’ 이렇게 개별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들이에요. 이제 조합원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면서 조합매장이나 체험프로그램, 연구, 상품 개발 등을 함께 하죠.

쓰여지는
보람.

제주천연염색협동조합은 어떤 활동을 이어가시나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저희는 개인사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소상공인협동조합이에요. 조합원 각자의 본업에 충실히 활동을 하고, 한 달에 3-4번 정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요. 연구 수업을 통해서 천연염색 기법에 대해서 서로가 알고 있는 것도 교류하죠. 또 공동브랜드나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개발하기도 하고요. 조합의 발전방향을 세우거나 박람회나 프리마켓, 조합을 통한 판매나 체험사업 같은 것들을 누가 맡아서 할지를 정하죠.

만들어진 공동브랜드는 무엇인가요?

가유비(佳擩費)예요. 아름다울 가, 물들일 유, 쓸 비. 아름답게 물들여 쓰여지다 라는 뜻으로 만들었어요. 감물은 염색의 기본이 되는 베이스예요. 제주하면 갈옷, 감물 하니 ‘가’를 앞에 둔 말을 만들어보자 했죠. 또 가로 시작하면 인터넷에서 우선 검색창에 걸러질 수도 있으니까 더 좋은 선택이었죠.

조합을 통해서 만들어진 상품은 무엇인가요?

조합원들은 모두 각각의 브랜드와 상품을 가지고 있죠. 조합을 통해서 주문이 들어오거나 박람회, 프리마켓 등 조합을 홍보할 기회가 있을 경우에 공동 브랜드를 사용해 제품, 염료 등을 판매를 하죠. 또 유아부터 성인들까지 다양한 체험 및 전문가 교육 프로그램이 있고요. 간단히 손수건을 적셔 염색하는 것부터 옷, 퀄리티 높은 제품을 만드는 것까지 다양해요. 천연염색 교육프로그램 중에 전문가 과정은 천연염색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떤 색을 만들지, 색이 빠지지 않는 정도를 뜻하는 견뢰도를 높일 수 있는지 하는 식의 노하우를 알려주죠.

소개 해주실만한 상품이 있을까요?

최근에 개발한 것이 이 수면안대예요. 여행을 하면서 수면안대를 써보니까 답답하고, 다 화학원료를 사용해서 만든 거더라고요. 이왕이면 우리 몸에 닿는 것이고 또 눈에도 좋은 재료는 없을까 생각을 한 것이 계기가 됐어요. 찾다보니 국화가 딱 이더라고요. 국화차가 눈에 좋다는 한의학 자료도 있고요. 천연염재로 면에다 감물과 국화물을 들여서 만들었더니 보기에도 좋고 몸에도 좋더라고요. 천연염색제품의 장점은 정전기가 일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외에도 옷, 스카프, 가방, 모자, 이불 등 아주 많습니다.

실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시네요. 제품을 만들고 협동조합의 일을 하시면서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저희 매장에 있는 간판도 제가 천연염색으로 만든 거예요. 이게 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피곤해서 못 하죠. 천연염색은 하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라요. 천연염색 과정을 보면 감물을 발색한 원단은 그냥 빨랫줄에 거는 게 아니에요. 발색이 잘 되려면 잔디밭 위에다 죽 펼쳐 널어요. 그마저도 해가 있을 때 널면 얼룩이 지니까 해 뜨기 전에 널어서 해질 무렵에 걷는 일을 반복해요. 좋은 색을 내려면 여름에는 최소 3~5일, 봄가을에는 더 길게 하죠. 그렇게 하나하나 손수 만들어가는 것이 힘들지만 재미있고 보람 있어요. 협동조합 일도 그렇고요. 또 제품을 만들어 고객들 앞에 선보이면 고객들이 그 정성을 알아줘요. 그때가 가장 기뻐요.

활동하시면서 기억이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작년 10월 달에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뉴욕박람회에 다녀왔어요. 먼 타지에서 오래 사신 교포 분들이 저희 제품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으셨다고 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보통 해외 박람회를 가면 국내 기술을 보여주는 제품들이 대다수여서 여느 매장에서 볼 수 있는 제품들이 많았는데, 한국적인 소재와 방식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보니까 좋았다고 하셨어요. 또 개인이 아니라 협동조합으로 제품을 선보일 때는 시선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꼈죠.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기뻤어요. 

©김순란

느긋이 내딛는
걸음.

요즘은 6차 산업이 이슈예요. 천연염색 또한 농업, 가공업 등과 연계되어 있는데, 6차 산업 인증과 연계해서 활동을 이어가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협동조합 내부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6차 산업 인증을 따야하는 건 아니냐고. 하지만 인증을 따지 않아도 저희는 이미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염색의 기본 재료가 되는 감, 쪽, 국화, 메리골드 등을 개별적으로 심기도 하고, 농장주들과도 교류하고 있고요. 또 생산물을 가공해 염재와 원단을 만들고, 염색 후엔 가방, 스카프, 모자, 옷, 이불패드 등 동·식물성 천연염료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만들어내고 있죠. 우선은 눈앞에 인증보다도 저희가 해나가고 있는 일에 전문성을 확보하고 제주도를 비롯해 국내의 여러 산업들과도 연계하는 등의 채널을 만들어내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요.

앞으로 어떻게 협동조합으로 운영하실 계획이세요?

천연염색을 하다보니 깨달은 게 있어요. 제 색을 내기 위해서는 천천히 느긋하게 해야 해요. 기다려야 본연의 색을 찾아갈 수 있어요.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의 눈으로 보되 소의 걸음으로 걸어가라는 말이 있어요. 예리하게 보되 모두 본연의 속도가 있기 마련이니까 너무 큰 것을 좇아 급하게 가지 않고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을 충실히 해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개인 사업이 있기 때문에 한 해의 한 목표를 두고 이행하는 것, 또 연구 수업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나가는’ 일을 계속 해나가려 합니다.

제주천연염색협동조합이 바라는 꿈이 있을까요?

우선 협동조합을 통해서 같이 하시는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또 상품이나 천연염색 기법이 널리 세계로 뻗어나가고, 제주의 천연염색의 전통을 계승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전국의 천연염색 하시는 분들과 함께 교류하고 있어요. 먼저 하신 선배님들, 염색관련 이론 전문가, 교수님들을 초빙해서 함께 배워가려고 해요. 전통적으로 만들어온 방식은 어머니에게 많이 여쭤보며 만들어왔죠. 이 부분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법을 만들고 또 전수하고, 천연염색을 활용해 패키징 등의 산업화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공동체 사업을 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해요. 조합원들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나 혼자서만 큰 것을 얻어가려고 하면 절대 안 돼요. 서로가 나누는 것이에요. ‘내가 못 하면 네가 해. 너가 못 하면 내가 할게.’ 서로가 도와주고 나누는 것이 늘 필요해요. 내가 주지 않은 상태에서 얻어가려고만 하면 어떤 사람이 함께 하겠어요. 제가 처음에 염색시장에 들어서면서 선배들에게 알려달라고 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참 욕심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디감히’ 어른들한테 달라고 했을까요. 아는 것이 없으니 줄 수도 없었죠. 서로가 아는 것을 나누고 도와주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고 내 주머니에도 들어오는 거예요. 절대로 얻어가려고만 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공동체는.

이원영 (기억발전소)  사진 한용환 (하라사진관)

제주천연염색협동조합
jejudyeing.allofthat.kr

 

연혁
1994. 정뱅이 시작

1998. 이미애 갈옷 시작

2000. 해원 천연염색 체험장 시작

2005. 자연본색 시작

2011. 갈마실 시작

2016. 4. 제주천연염색협동조합 설립

2016. 5. 제주천연염색협동조합 공동매장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