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INTERVIEW   |   December

05

가능성에 날개를 다는 일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 최영열 이사장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알았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빠르지만 가볍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 처음에 연락처만 받아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남자 대표일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편견의 또 다른 이름은 부끄러움이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면 이러한 편견은 우리의 일상생활 도처에 스며있다. 인종, 성별, 종교, 장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상식과 보편이라는 단어로 쉽게 편견을 드러낸다. 스스로 편견에 오염된 것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에서 만난 최영열 이사장은 자신의 이름처럼 사람들에게 내면안의 편견을 자각하게 하고 그것을 깨트리는 일의 현장에 있는 사람이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는 편견들과 맞서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날개를 달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
어떤 삶을 실천할까에 대한 고민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제주와를 하면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제일 먼저 드는 궁금증입니다. 이사장님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희망나래를 하기 전에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 했었습니다. ‘일배움터’라는 사회복지기관의 초대원장이었어요. 10년 정도 일을 했는데 초창기부터 사업계획을 비롯해 복지성을 강조하는 수익사업에 대한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2015년에 창업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사장님이 사회복지 쪽으로 넘어오기 전이 궁금해서요. 그전에는 어떻게 지내셨는지, 어떻게 하다가 사회복지 일을 하게 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공공성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민주화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어요. 4.3항쟁과 같은 제주만의 역사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지역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당시 동아리활동을 했는데 가톨릭학생회였어요. 동아리 선배들이 멘토와 같은 개념이던 시절이라 자연스럽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가톨릭학생회 안에서도 ‘청년 예수’라는 표현을 쓰며 다들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삶을 실천하는 청년 예수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일상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흔하던 시절이었죠.

몇 학번이세요?

89학번이요. (웃음)

졸업 이후에는 어떤 고민이 들던가요?

졸업하고 나서도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었죠. 시민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하고 했는데 그래도 뭔가 좀 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기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되 시민단체 활동가가 아니라 직업으로 연결할 지점을 찾고 싶었어요. 마침 둘째를 임신하고 있을 때였는데 “엄마는 뭐하는 사람이야?” 질문을 받으며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게 언제였나요?

2000년대에요. 당시 사회복지 초창기였어요. 제주도에 사회복지 관련학과가 개설된 게 98년 무렵일 거예요. 고민을 많이 했죠. 대학원 아니면 전문대로 가야 하는데 주변에서는 대학 졸업 하고 다시 전문대를 간다는 걸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때 갱생보호기관에서 일하던 친구와 함께 고민을 했었어요. 우리가 나중에 강의를 하고 교수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고 현장에 있을 거라면, 대학원보다 전문대에 가서 많은 과목을 수강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결론이 났죠. 실천방법을 고민한다면 교과목을 많이 학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전문대에 입학했어요. 그래서 학교에 갔더니 사회복지에서도 분야가 있잖아요. 노인복지, 청소년복지, 장애인복지…. 장애인복지를 전공 분야로 선택하고 나서는 바로 복지관 작업장에서 봉사를 하며 학교를 다녔어요. 공부에만 집중하려고 직장도 그만 두었죠.

신념.
우리를 지탱하는 가장 깊은 곳의 힘

그럼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차근차근 이 분야로 들어오신 거네요?

졸업 후 ‘제주애덕의집’에서 일했어요. 사회복지사로 있었는데 3년 뒤 일배움터 관리자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죠. 모든 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물 흐르듯이 이어졌어요. 저는 카톨릭학생회 활동도 했고, 제 신앙도 그렇고 해서 가톨릭을 통해 사회복지에 관심이 생겼다고도 할 수 있는데, 2003년에 제주가톨릭사회복지회가 만들어졌어요. 그때도 돕고 일을 했는데, 그냥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간택’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첫 번째 직원이었죠. 조직을 초기 세팅하는 자리에 항상 불려갔어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저도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이 지니는 의미가 무언지 스스로 정리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2010년 무렵 일배움터에 박원순 시장이 ‘건강하게 사는 삶’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러 오셨어요. 그때 그분 이야기에서 가장 와 닿는 부분이 뭐였냐면, “가장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가장 건강하게 사는 삶이고, 공공성을 우선적으로 대변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한 사람”이라고 정리를 해주셨어요. 그 전에는 이런 부분을 잘 얘기를 못했어요. 그런데 그때 강의를 듣고 ‘아, 내가 지향하는 삶이 저런 거였구나’ 생각했죠. 희망나래를 하고 있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하고 있는 일, 사회적가치 추구, 발달장애인 사회서비스…. 이런 것들을 보면 저라는 사람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하는 사회복지사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행동.
신념을 가능하게 하는 발걸음

그럼 이제 희망나래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로 인쇄업이나 기념품을 만드는 곳이라고 알고 있어요. 어떻게 회사가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요.

처음부터 사회적협동조합이었어요. 맨 처음에는 7명의 사회복지사와 관련 직종에 있던 사람들이 구성원이었고, 조합원을 모집해서 지금은 60명 정도 되요. 그 중 80%가 장애인 부모님이고요. 조합 자체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조합을 지속가능하게 할지를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는 결사체적인 조합 조직이에요. 같이 고민하고 같이 활동하고 서로 교육하고…. 우리 모두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해요. 조합원 당사자의 고민이 반영되는 동시에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장애인 당사자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만들어진 이유가 그것 때문이니까요.

연혁을 보니까 희망나래는 굉장히 빠른 행보를 보여요. 예비사회적기업이 지정된 후 거의 6개월 만에 사회적기업이 되죠. 추진력이 놀랍다고 할까요? 어떻게 가능했던 거죠?

사실 저희처럼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 사업에 대한 아이템만 가지고 육성사업에 들어오거나 긴 교육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막상 조합을 시작하고 나서는 준비 기간이 그리 오래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로 조직을 꾸렸고 의사결정 구조도 그에 맞춰 준비하고, 공동체를 고려해 인가 받았기 때문에 이미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죠. 그래서 사회적기업으로 바로 진입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희망나래의 수익모델이 인쇄, 제조업이에요. 어떻게 모델을 구상하셨나요?

일단 유사한 회사를 찾아봤어요. 서울에 베어베터(링크 www.bearbetter.net)라는 곳이 있더라고요. 거기도 인쇄사업, 쿠키, 카페, 로스팅 등을 하고 있어요. 직접 찾아가서 대표님을 만났어요. 현재 250명 정도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대요. 대단하죠.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장애인 직업재활이 단순히 장애인을 고용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오히려 이런 일일 수록 전문가와 장애인이 함께 박자를 잘 맞춰야하죠. 제품의 질을 보장하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고, 예를 들면 디자이너 같은 경우죠. 그리고 장애인이 참여하고 진행할 수 있는 공정을 고안해야 해요.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치를 고려하되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현재 희망나래는 15명의 장애인이 일 하고 있어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 유형1)이 모두 있습니다.

지금 작업장에서 일하고 계시던데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오늘은 리플렛 접지작업을 하고 있어요.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3시에 퇴근하는데 작업 단계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요. 직무를 분석해서 공정도를 만들어서 일을 배분하는데, 꾸준히 직무교육도 받아요. 사실 여기서 일만 하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고등학교까지는 오히려 학교를 가니까 사람과 관계가 유지되고 교육을 받아요. 그런데 졸업을 하면 오히려 다 집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게 되거든요. 나오기 힘들어요. 그래서 일뿐만 아니라 여가를 보내는 법도 알아야 하고,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일을 통해 집중할 거리를 만들어주면 오히려 문제행동이나 돌발행동이 없어진다고 해요.

1)  2007년 4월 발달장애는 자폐성장애, 정신지체는 지적장애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상.
날개를 달고 더 멀리 나는 꿈

희망나래의 조랑말 캐릭터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희는 기존의 인쇄사업에 더해 단순한 판촉물이 아니라 제주다움을 보여주는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려고 해요. 그래서 저희 캐릭터나 아이덴티티도 제주와 연결되는 지점을 많이 고민했어요. 제주 하면 무얼까 고민했는데 조랑말, 동백꽃, 유채꽃…. 이런 것들이더라고요. 올레의 간세인형도 조랑말이지만 저희는 희망나래라는 이름처럼 조랑말에게 날개 이미지를 접목했어요. 그래서 캐릭터 이름이 ‘나래’에요. 희망나래에서 온 거죠. “가능성에 날개를 달다”는 조합의 캐치프레이즈와도 연결되고요.

앞으로 희망나래가 꾸는 꿈은 무엇인가요?

지금 희망나래의 사업은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를 중심으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희망나래일터, 장애인주간보호시설 희망나래활동센터, 장애인공동생활가정 희망나래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어요. 일단 최단기 목표는 일터의 장애인 직원이 20명으로 늘어나는 거예요. 장기적으로는 센터가 아주 전문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성장했으면 좋겠고요. 센터를 통해 직업적 역량이 갖추어지면 일터로 연계하여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세요?

장애인의 노동이 임금만이 아니라 삶의 권리로서의 노동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중증장애인의 노동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요. 중증장애인은 아직 직업적인 부분에서 연결하기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가 고민하고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전미정(기억발전소) 사진 한용환(하라사진관)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

www.coophn.co.kr/kor

연혁

2015. 07. 30 – 창립총회

2015. 07. 31 –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 설립신청서 제출(보건복지부)

2015. 09. 08 – 사회적기업진흥원 현장실사 실시

2015. 11. 03 –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초대이사장 최영열) 설립 인가증 교부(보건복지부장관)

2015. 11. 19 – 장애인주간보호시설 희망나래활동센터(초대 센터장 박인향) 인가(제주시)

2015. 12. 23 – 희망나래탄생나눔잔치 실시

2016. 02. 25 – 2016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창업팀 선정

2016. 06. 17 – 희망나래활동센터 개원식

2016. 06. 22 – 제주형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2016. 07. 07 – 희망나래 활동센터 아산사회복지재단지원사업 선정

2016. 12. 27 – 사회적기업 인증

2017. 01. 12 – 장애인공동생활가정 ‘희망나래 공동체’ 인가

2017. 05. 04 – 장애인직업재활시설 ‘희망나래 일터’ 인가

캐릭터 나래

푸른 조랑말이 동백꽃을 물고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다.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의 귀여운 조랑말 ‘나래’다. 나래는 ‘날개’와 같은 의미로 좀 더 부드러운 어감을 주는 문학적 단어다. 날개를 단 작은 체구의 제주 토박이 조랑말이 희망나래의 행보처럼 훌쩍 세상을 뛰어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