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INTERVIEW   |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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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맛으로 잇는
지역의 내일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

독세기 반숙, 바릇죽, 쌍노물, 접짝빼국, 미수전, 느르미전, 송애기떡… 너무도 흔해 아무도 내보이지 않던 음식으로 특별한 밥상을 내는 사람이 있다.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의 양용진 원장이다. 제주향토음식 명인 1호 김지순 선생의 둘째 아들인 그는 ‘낭푼밥상’으로 제주 향토음식을 대중 가까이 선 보인 사람이다.

낭푼은 양푼의 사투리로 밥이 담긴 놋그릇을 가운데 두고, 제철 재료로 찬을 낸 평범한 밥상을 말한다. 제주 음식의 특징은 적게 손질하되 칼보다 손으로 작업하고, 토종 식재료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내는 데 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돌과 바람 많은 척박한 환경에도 지역 재료를 활용한 470여 가지 음식이 만들어졌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급속도로 희석되고 육지화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잃어버린 옛 맛을 되찾기 위해 기록을 모았다면, 양 원장은 기록을 바탕으로 맛을 경험하게 하고, 제주의 토종 식재료를 살리는 운동을 통해 지역 사회를 바꿔나가겠다고 한다. 그런 그가 없었다면 훗날 우리는 제주 향토음식을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원래 어떤 일을 하셨어요?

미대를 지망했었는데 고3 여름방학 때 사고가 나서 대학을 못 갔어요. 스무 살에 바로 커피숍에 들어갔어요. 당시 제주도에 커피숍이 몇 군데 있었는데 처음 사이폰*(일본식 커피기구)을 다뤘어요. 그러다 군대 다녀오고 무대미술이 하고 싶어 서울에 갔고 공연기획사에 들어가 5년 일했어요. 문화기획을 더 많이 하다 사업을 배우고 싶어 일반 회사에 다녔죠. 서른 즈음 결혼하면서 제주로 내려왔어요. 제주에선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싶어 건축을 공부하다 96년 즈음 어머니 일을 도우며 제과학원을 시작했어요. 07년도에 어머니 요리학원하고, 저의 제과학원하고 합쳐서 ‘김지순요리제과전문학원’이 되었고 지금도 운영하고 있죠.

어머니가 향토음식 명인 1호 김지순 선생이시죠. 어머님의 이야기와 더불어 어린시절 음식과 관련한 일화가 있나요?

70년대부터 가정과 교수셨어요. 제주에서 요리 선생으로 유일한 양반이니 집에서도 늘 연구 하셔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죠. 어머니 스승이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왕준련 선생이에요. 개성에서 혼자 내려온 분인데 어머니께 “네 고향 제주에도 특별한 요리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대요. 그분이 어머니의 길을 내주신 것이나 마찬가지죠. 방학 때 그 분을 뵈러 서울에 가면 보쌈김치에, 조랭이떡국에, 불고기에… 제주 촌놈이 그런 걸 어디서 먹어봐요. 어릴 때부터 음식이란 이런 거구나 느꼈죠. 친구들은 ‘맛있다, 맛없다’로 얘기하지만 저는 관찰하는 편이었어요. 뭘로 만들었나, 어떤 맛인가. 초등학교 5학년 즈음 제주시 칼 호텔에 뷔페가 처음 생긴 거에요. 어머니가 초청받아 저랑 형을 데려갔는데 신세계였어요. 당시 집에서 낭푼밥상 먹던 시절이었는데, 다음 날 학교 가서 얘기 하니까 애들이 거짓말이라고 안 믿더라고요. 환경이 그러니 일찍부터 경험했던 것 같아요. 그때 쌓인 기억이 지금을 만든 것 같아요.

1925년 일본의 고노Kono사가 사이폰 Syphon 기구를 상품화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
  퍼콜레이터percolater 커피라고도 한다.

어떤 계기로 어머니와 함께 향토 음식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며 그간 정리하신 향토음식 자료를 훑어 봤어요. 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하는 사람이 없을테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자들이 있긴 하지만 당시 제주 음식에 대한 가치나, 문화적인 코드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던 때였어요. 그러다 2000년도에 천주교재단의 도움으로 로마에 가서 요리 수업을 들었어요. 마침 그 시기가 이탈리아에도 슬로푸드가 태동할 시기였거든요. 향토 음식과 슬로푸드의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거기서 지금의 밑그림을 어느 정도 그렸던 것 같아요. ‘제주도 음식도 살릴 수 있겠다.’ 돌아오자마자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을 제안해서 만들었죠. 체계적으로 요리법을 정리하고 새로운 메뉴도 만들었어요. 향토음식 지원조례 발의 준비도 했죠. 2010년에 조례가 제정되면서 향토음식 명인제도가 생겼고 어머니가 1호 명인으로 등재되셨죠. 그 외에 10년간 외부활동을 한 건 <제주의 소리> 연재나 블로그에 제주 향토음식에 대한 것들을 올렸던 것이에요. 그게 오랜 시간 쌓이고 보이면서 저희에게 자문 요청이 왔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10년의 준비기간이 있던 셈이네요. 당시의 제주 식문화는 어땠나요?

제주도가 1,400만 명이 넘게 오는 섬 관광지에요. 내국인 비율이 많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죠. 하와이도 전체 통틀어서 800만인가 그럴 거 에요. 그 추세라면 분명 제주 고유 문화를 찾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80년대 제주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제주향토음식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관광객 입맛을 맞춰야하니 맛을 자극적으로 내고 경제 논리로 저렴한 재료를 쓰고. 조림에 생선 하나만 제주산인 곳도 있어요. 요즘엔 제주산 갈치 보기도 힘들죠. 양념도 쌀도 반찬도 외지 것이 많아요. 따져보면 제주산 식재료 비율이 20%가 넘는 집이 없었어요. 물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해해요. 하지만 조금씩 바뀌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어요. 식당 주인에게 밥이나 밑반찬은 제주 걸로 바꿉시다 하면 “아유 그걸 비싸서 어떻게 쓰냐”해요. 그러면서 옛날 제주식으로 조리 하면 맛이 없다고 하니 속상했죠.

사람들의 입맛이 변한 것도 이유가 될까요?

입맛이 변해서 맛이 없다고 얘기를 하는데, 사실 재료가 바뀌어 그래요. 좋은 재료를 써서 음식을 하면 별다른 조리법이 없어도 맛있죠. 전통적인 조리 방법이 적용되려면 토종 재료라야 된다는 거죠. 지금 시중에 파는 건 개량된 재료에요.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많이 생산되는 걸 위주로 품종을 개량하고 장려했어요. 그러다보니 고유한 특성의 농산물은 사라졌죠. 전화 한 통이면 재료를 세척하고 손질해서 배달해줘요. 다들 그걸로 요리 하면서 옛날 방식으로 했는데 맛이 없더라, 하면 당연히 맛이 없죠.

전통 방식에 맞는 좋은 재료를 찾는 것이 중요하네요. 그럼 원장님께서 전통 방식에 맞는 재료를 수급하실 때는 어떻게 찾으시나요?

제가 중점적으로 노력했던 게 뭐냐면, 옛날 재료를 찾아내는 거. 그래서 특히 제주는 양념을 된장 위주로 하니까 재래식 된장 집을 찾아다니고 여성농민회가 토종씨앗 살리기 운동 하고 있어서 개별적으로 연락 해 찾아다녔죠. 2011년도에 연구소에서 향토음식 도록 제작하는데, 그때 연대를 통해 농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본격적으로 향토 식문화를 살려야겠단 생각과 실제 가게를 여시게 된 시기가 비슷한가요? 아님 다른 시기와 계기가 있는지?

2005년도에 서울 운현궁에서 제주 음식 전시회를 했어요. 왕실에 변방의 음식을 선보인거죠. 사계절 밥상에 백 여 가지 음식을 대청마루에 펼쳤는데 사람들이 놀란거죠. “이게 진짜 제주도 음식이냐? 제주를 그렇게 많이 오갔는데 이런 음식 한 번도 못 봤다. 이런 음식 먹으려면 어디를 가야되느냐?”고 물었어요. “파는 데가 없습니다” 하니 굉장히 아쉬워 하더군요. 그 일도 계기였죠. 2011년 도록 작업 끝나고 3년 넘게 ‘김지순의 낭푼밥상’을 준비 했어요. 근데 이걸 시작을 하면서 제주도 사람들한테 욕을 무지하게 먹었어요. 너무 비싸다고. 왜냐면 당신들 어릴 때 집에서 맨날 먹던 건데 굉장히 하찮아 보이는 거지. 그동안 일반 식당 주인들은 장사 잘 되는데 뭘 하러 새로운 걸 하냐며 우리 이야기를 안 들어줬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주도 사람들은 제발 집에서 이렇게 차려서 드십시오. 여긴 제주 향토음식을 홍보하는 일종의 홍보관 역할을 하는 곳 입니다”라고 했어요.

현재 ‘낭푼 밥상’을 찾는 손님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외지 분들과 외국인 손님 비율이 80%입니다. 그동안 식당 몇 번가서 흑돼지 조금 먹거나 호텔에서 드셨다고 해요. 이제 16년 8월 1일에 오픈해서 1년 좀 넘었는데 처음엔 순탄치 않았지만 제가 목표했던 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님 세대가 일궈 온 것과 원장님이 일궈 나가는 것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어머니가 해놓으신 건 주로 사라져버린 것을 재현해 살리는 것이라면, 저는 거기에 사회문화적 의미나 가치를 연결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고기국수가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이 됐는데, 언제부터 누가 먹었는지 잘 몰랐어요. 이제 100년 남짓 되었거든요. 제주에는 모자반을 넣은 ‘몸국’이란 잔치음식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엔 해안가에서 함부로 작업을 못했어요. 그러면 육지 다녀온 사람들이 ‘육지에서는 보니까 잔칫날 국수 삶아서 먹더라’고 얘길 해서 돼지고기는 삶아놨으니 고기 국물에다 모자반 대신 국수를 넣자고 한 게 그 시작이에요. 몸국을 대신한 거죠. 당시 국수는 어디서 났나 찾아보면 1920년대 무근성 근방에 토박이가 운영하는 건면공장이 있었다고 해요. 저희 외할머니가 5년 전, 96세로 돌아가셨는데 할머니와 어르신들의 증언으로 공장 위치도 밝혀냈죠.

로컬푸드와 슬로푸드 바람이 제주에 불고 있어요. 언제 슬로푸드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이탈리아에 있을 때 였어요. 이후 향토음식 활동 중에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푸른콩 된장을 등재한 김민수 대표와 교류하며 제주만의 슬로푸드 운동을 한번 해보자고 했죠. 음식이 산업화되며 나타나는 병폐들이 많거든요? 몸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는 것들을 먹고 있잖아요. 동물복지도 옛날에는 풀어놓고 기르던 것이었고. 땅덩어리 좁은 나라에서 대량생산 하겠다고 아무리 덤벼봐야 땅 넓은 미국이나 중국에서 넓은 땅과 값싼 노동력으로 밀면 게임이 안되요. 결국 우리가 갈 길은 로컬의 개념으로 원래 이 땅에 정착해서 자라고 있던 거를 살리는 것이 아닐까. 그건 다른 나라에 없으니 경쟁이 안 된다는 거죠.

식재료를 찾는 과정에서 느낀 제주 농어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전체 1%의 제주에서 채소 출하를 전국 30% 넘게 차지하고 있어요. 근데 그 채소에 대한 관심이, 감귤의 반도 안 됩니다. 해물 같은 경우도 제주의 바다 환경이 한반도 하고 달라요. 갯바위 위주로 돼있고 파도도 높이 일다 보니 크진 않지만 독특한 것들이 굉장히 많죠. 다품종 소량 생산 농가가 많을수록 경쟁력이 생길 것 같아요. 유럽의 나라를 보면 우리나라하고 비슷한 땅덩어리 규모를 갖고 있는 곳이 있잖아요. 재작년 여름인가 런던 파머스마켓을 조사하러 다녀왔어요. 한 농장에서 품종 개량을 해 토마토가 열 몇 가지에요.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쓰임에 따라 토마토 맛도 다르고 나오는 시기도 달라요. 일 년에 10개월은 꾸준히 생산할 수 있다는 거죠. 겨울에 왕창해서 몇 천 만원 벌어가지고 1년 사는 불안한 현상은 안 생기는거죠.

이 일을 하시면서 꼭 지켜내고픈 자신만의 원칙은 무엇 인가요?

지역 식자재 사용을 90% 이상을 유지하는 진짜 로컬푸드를 선보이고 싶어요. 1년간 90% 미만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어요. 농산물 외에 재래식으로 가공하는 업체들이 있는데, 좋은 물건인데 영세해서 경쟁을 못해요. 향토 음식점들은 그냥 단순한 장사가 아니에요. 그런 곳들과 연계해서 지역 식문화를 알리고 개별적 수요를 발생시켜주는 일종의 매개체 역할을 해주는 메신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원칙이 사회에 환원되는 지점은 무엇이길 바라시나요?

소규모농가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회적경제라는 것도 경제 활동을 하는데 소외된 사람이 없게 만드는 거잖아요. 그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하게 되면 가치와 의미가 사라져버리게 되요. 요즘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그런 운동을 논의 중입니다. 마을, 리 단위에 가공시설을 지어주거든요? 1년 내내 노는 곳도 많은데 그런 시설을 찾아내서 소규모농가에 매칭 시키면 가동률도 높이고 생산자가 직접 가공&유통 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고요 예전에 방송사와 착한식당 선정위원회 해가지고 로컬비율 70% 이상을 유지하는 식당에 착한식당 간판을 달아주자는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로컬푸드로 사회적 기업 ‘섬이다’를 운영하는 김종현 대표도 그때 만났는데 요즘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연구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세대에서 나아간 고민을 하셨잖아요. 다음 세대를 위해 고민한다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이 식문화가 정착되는 것이에요. 지금 초기 단계잖아요. 보편화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봐요. ‘김지순의 낭푼밥상’이 희소가치 때문에 비싼 거잖아요? 다른 식당들도 향토 음식을 고민하고 지역 식재료를 쓰면 소규모 농가의 생산량이 늘어나고 가격도 안정화 되겠죠. 저는 일부러 본보기를 위해 조금 크게 무리 한 거에요. 요즘 원테이블 레스토랑도 많잖아요. 한림에 있는 ‘차롱’ 임서형 셰프도 혼자 고군분투 하고 있어요. 그와 더불어 요즘 이주민들이 많잖아요. 트러블도 많지만 순기능이 있다고 봐요. 도민은 늘 먹던 거니까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들은 일단 긍정적이고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요. ‘무릉외갓집’ 홍창욱 실장 같은 경우도 한 사람이 마을의 소규모 생산자를 통째로 바꿨잖아요. 이주민 중에서 그런 활동가들이 많이 나와 상생하면 좋겠어요.

박소진(기억발전소) 사진 한용환(하라사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