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에 담긴 제주의 삶
사회적기업 국악연희단 하나아트

해녀들이 드넓은 바당에서 물질을 하고 올라와 내쉬는 숨소리를 뜻하는 숨비소리. 숨비소리처럼 제주에는 제주도민의 삶을 담은 소리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애기구덕에서 자는 아이를 재우는 ‘웡이자랑’, 농사를 지을 때 마소를 부리는 ‘밭볼리는 소리’와 신당의 본풀이굿 등의 소리는 제주만의 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소리와 이야기가 점차 사라져가는 지금, 지역의 문화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을 너머 후대로 이어가는 방법은 또 무엇이 있을까. 극의 형태로 제주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문화를 전수하려는 이들을 만났다.

©국악연회단 하나아트

©국악연회단 하나아트

사물놀이를 좇아 무작정 떠나온 세월

1990년대 까지도 제주에서는 북 치고 장구 치는 일이 마을 심방, 굿밭의 일로 여겨지곤 했다. 그 시절 사물놀이에 빠진 한 인물이 있다. 국악연희단 하나아트의 고석철 대표다. 그에게 사물놀이에 빠지게 된 이유를 묻자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한순간에 들어왔어요.” 그때부터 그는 사물놀이 하나만을 보고 서울과 제주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사물놀이로 달라진 삶이 극단 살판의 극을 보고 난 뒤 다시 한 번 바뀌었다. 풍물극이 준 신선한 충격에 그는 제주로 내려와서도 극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풍물굿패 살판의 공연을 봤어요. 제목이 ‘바람을 타고 나는 새야’였죠. 그 공연이 신선한 충격을 줬어요. 단순히 사물놀이만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풍물과 결합한 극을 통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구나. 그걸 보고 굉장히 놀랐죠.”

여러 장단이 모여  한 가락이 되기까지

고석철 대표와 동료, 제자를 포함해 세 명이서 2002년 ‘사물놀이 하나아트’를 만들었다. 지금의 공간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사물놀이 수업을 열어 조금씩 발판을 마련해나갔고, 탐라문화제에 마을 연출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함께 하는 인원이 늘어 2005년 5월 한라아트홀 대극장에서 전통타악공연 ‘신명Ⅰ’을 올렸고, 반응이 좋아 ‘신명ⅡⅢ’, ‘흥:청ⅠⅡ’, ‘통’, 퓨전국악콘서트 ‘바람의 섬’ 등 다양한 종류로 발전시켜갈 수 있었다. 

2011년에는 사물놀이에서 ‘연희’ 형태로 활동영역과 범위를 넓혀가고자 ‘사물놀이 하나아트’에서 ‘국악연희단 하나아트’로 명칭도 바꾸었다. 2012년에는 단순 공연팀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갖춰가고자 사회적기업 형태를 고민, 예비기간을 거쳐 2014년 인증 사회적기업이 되었다. 

“공연팀, 기획팀, 행정팀 이런 시스템이 없으면 공연 자체를 이어갈 수 없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공연팀 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활동기반이 있으니까 이 위에서 우리가 주최주관이 되는 기획과, 공연을 만들어봐야겠다 했던 게 법인화에 대한 고민이었고, 사회적기업을 만들게 됐어요.”

일자리제공형, 사회서비스형 등 단체의 활동방향과 맞는 사회적기업의 형태를 고민하고 결정해가는 과정이나 기존의 공연 단체가 아닌 기업이라는 형태로 활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했다. 고석철 대표는 이 과정을 가장 필요한 부분을 두고 정리해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하나아트만의 중심을 만들어가기 위한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악연회단 하나아트

제주를 키워낸 뿌리를 찾아 

2015년 서귀포예술의전당 공연장상주단체와 2017년 김정문화회관 공연장상주단체 사업을 하며 국악연희단 하나아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고 대표는 상주단체로서 한 해에 4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하나아트에서 진정으로 해나가야할 작품에 소홀했다는 것을, 2015년 말 ‘꿈꾸는 섬 : 해녀’라는 작품을 만들며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꿈꾸는 섬 : 해녀’는 고석철 대표의 어머니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고 대표의 어머니는 해녀다. 어머니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으며 울고 웃었던 기억이 해녀를 주제로 한 공연을 만드는 데 시발점이 되었다. 일을 하며 힘은 들었지만 가족을 살린 보람을 얘기하며 해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공연으로 담아내 선보였다.

제주에서 태어나 자라며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몸소 살아가는 ‘뼛속까지 제주인’이지만 누구나 인정할 만큼 제주의 뿌리가 담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는 제주의 본풀이 문화를 공부하고 마을에 보존되어있는 가치들 굿판, 전국의 풍물판 등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것들을 공연에 담아내고 있다. 앞으로도 국악연희단 하나아트는 제주의 뿌리와 문화를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INTERVIEW

국악연희단 하나아트 고석철 대표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23살, 대학교 문화부에서 처음 사물놀이를 알게 됐어요. 90년대 초반 만해도 제주에 풍물, 사물 이런 문화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죠. 북 치고 장구 친다고 하니 굿 하러 다닌다고 소문도 나더라고요. 그래도 앞뒤 가리지 않고 배워서 지금까지 왔어요. 파란만장 했죠. 서울에서 여러 단체를 거치면서 활동했고, 제주에서 이어가보자는 선배를 따라 합류했는데 잘 되진 않았죠. 이후에도 ‘신나락’이라는 단체에서 제주활동을 시작하고, 제주 민속촌박물관, 도립예술단에서 활동하며 계속 이어왔죠.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공연만 할 때는 연주를 하기 위해서 모이는 사람들과 믿음관계를 맺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기업이 되니 고용주과 고용인의 관계로 바뀌더라고요. 바라지 않았던 것인데. 또 공연을 만들고 하다보면 자기가 받은 만큼 역할을 하면 됐었는데 기업을 운영해나가기 위해 더 사업을 벌여 상업적 공연으로 이윤을 창출해야 하고 더 많은 역할을 필요로 하는 거죠. 그런 부분으로 치우쳐지는 어려운 점들이 있죠. 

제주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악기 자체도 그렇고 신당 문화도 그렇고 많은 것들이 육지와는 다른 것들이 많아요. 굿을 보면 ‘본풀이’라고 굿의 내력을 설명해주는 게 있어요. 제주가 시작된 배경부터 굿에 쓰이는 무구 등이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를 알려주죠. 이런 이야기나 제주의 신화에서 소스를 얻기도 하죠. 또 마을에 보존되어있는 민속들과 어른들의 삶을 들으며 각색하고 발전시켜보고자 하는 거죠. 이런 모티브를 통해서 다양한 연희를 만들어가고 전통적인 것만을 담지 않아요. 비보잉이나 랩, 샌드아트와 같은 현대예술과도 연계해 표현을 해보는 시도도 함께 하고 있어요.

앞으로 국악연희단 하나아트의 꿈은 무엇인가?

제주의 뿌리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무조건 신기하고, 또 육지부에서 하지 못하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있는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대중적으로 보편적인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죠. 꾸미지 않은 제주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지만 약간의 예술화 과정은 필요해요. 그럼에도 제주의 어른들이 납득할 수 있게시리 제주만의 마을공동체 문화를 보여줄 수 있어야겠죠. 이를 계기로 공동체를 기반으로 활동하려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고요. 제주의 뿌리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제주의 전통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사람들이 하나아트로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공동체 사업을 하려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사실 나도 잘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중심’을 잡는 일이라 생각해요. 공동체를 하자고 하는데 중심이 뭔지, 또 그 중심이 흐트러지면 공동체를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정확한 중심이 있어야 그에 맞춰 사람들이 따라오기 때문이에요. 중심을 잘 공유하는 게 공동체의 큰 힘을 만들지 않을까요? 

 기억발전소  사진 하라사진관


의귀마을영농조합법인

선조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는 길

제주장례협동조합

아름다운 작별을 준비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