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COLUMN     |     September

길 위의 경험,
제주의 그 단단한 속살

따지고 보면 국내외를 통틀어 제주도만큼 여러 번 갔던 여행지도 없지 싶다. 서너 번의 회사 출장을 빼고도 제주도로 여행을 간 것은 줄잡아 열댓 번은 된다. 대학 1학년 때의 첫 방문 이후 제주도는 가장 고급스럽고(주로 비행기를 탔으니까) 특별한(신혼여행을 갔으니까) 여행지, 늘 마음을 설레게 하던 꿈의 여행지였다. 제주도 여행의 특징은 한라산 등반을 빼고는 모두 자동차 여행이었다는 것. 자동차는 대학시절 버스에서, 신혼여행 때 택시로, 이후에는 렌트카로 바뀌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기동성의 효율을 점점 더 높였다. 더 빨리, 더 많이 보려고 그랬다. 그러나 문제는 몇몇 유명한 관광지 빼고는 딱히 제주도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제주도에서 벌어진 4·3 비극에 대해 어렴풋이 듣기는 했으나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기자가 된 이후였다. 출장 중에 제주4·3 희생자 후손한테서 들었던 말이 깊이 남았다. “우리는 광주가 많이 부러워요.” 5월 광주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이 줄기차게 이루어지는 것을 그는 몹시 부러워했었다. 이후 나는 5월 광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제주도를 떠올렸다. 최근 토론토에서 개봉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나오면서도 생각했다. ‘그런데 제주4·3은?’

제주4·3도, 관광 명소도 그랬다. 역사적 사실과 아름다운 풍경 들은 점점이 떨어진 섬처럼 내 안에서 따로 놀았다. 제주도는 나에게 그냥 따로 떨어진 수많은 점들의 집합체일 뿐이었다. GPS로 목적지를 찍고 가는 바로 그런 지점들 말이다. 그 모든 점들을 하나로 꿰어 제주도의 정체를 드러내는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았으나, 알지도 못했고 알고자 하는 욕구도 없었으며, 굳이 알려주려는 사람도 없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 관광객들은 차를 타고 내리며 코끼리 다리만 만지고 돌아다녔다.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몸집은 얼마나 큰지 당연히 알지 못했다.

2013년 봄. 26개 코스로 막 완성된 제주올레길을 종주하고 싶다는 욕망이 갑자기 생겨났다. 이런 욕망은 불과 같아서 한번 일어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외국 사는 사람에게는 더 그랬다. 그래서 그것을 병이라고 한다. 향수병.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몇몇 기자들은 제주올레길을 두고 “제주도의 속살을 들여다보게 한다”고 썼다. 속살이라. 얼마나 매력적이고 섹시한 단어인가. 나는 그 단어에 매료되었다. 속살이 무엇일까, 그것이 따로 있기나 할까 궁금했다. 물론 직장에서 15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선배 서명숙이 만든 길이라 남다른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생업을 잠시 접고 그해 5월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곳을 드나든 이래 처음으로 섬을 걸었다.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화려하지 않으나 오밀조밀 정겹고 때로는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야트막한 오름으로 오르는 오솔길, 좁다란 동네 골목길, 구불구불한 검은색 돌담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보아 넘길 것이 없었다. 보이는 것은 모두 신기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했수꽈?” “갑서” “거우다” “마심” 같은 지역 고유의 말들도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제주도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 말고도, 예상도 하지 못했던 자잘한 볼거리와 이야기 들이 잔뜩 쟁여져 있었다. ‘제주도 맛’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느끼게 하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내 어머니 같은 민박집 주인과 마당의 평상에 앉아 차 한 잔 나누는 맛,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걸으며 붉게 물 드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는 맛, 아침부터 해녀의집 앞에 쭈그려 앉아 싱싱한 해삼에 소주 딱 한 잔만 하는 맛….

이런 맛은 또 어떤가. 파 농사 밭에서 일하던 어떤 어른은 나를 불러 세웠다. “그 길이 아녀” 하면서. 그는 브루스타에 물을 끓여서 믹스커피 한 잔을 타주었다. 밭에 엉덩이 깔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상상도 못했던 사연들이 터져 나왔다. 1960년대에 일본으로 밀항했던 이야기 같은. 열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런데 걷고 구경하고 사람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제주도와 제주도 사람들의 그 많고 많은 사연들을 꿰는 문화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애향심’과 ‘독립정신’. 요즘 세상에 무슨 애향심이고 독립정신이냐 하겠지만, 제주도 어느 마을에 들어가도 바로 그 문화가 살아 있었다. 굳이 감출 것도 없으나 일부러 드러낼 이유도 없으니, 외지인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제주도를 걷기 시작한 이튿날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있었다. 성산읍 오조리로 접어들었더니 큰 길에 비석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조선시대 송덕비는 본 적 있으나 이 마을 출신 사람들을 기리는 비석들은 처음 구경했다. 게다가 근현대 인물들이었다. 어떤 인물들이기에 비석까지 세워 기리나 궁금했다. 리사무소에 들어가서 물었다. 마을 공동체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마을에 전봇대 세우라고, 어린이 놀이터 만들라고, 신작로 넓히라고, 가난한 학생 학자금 주라고… 이 마을 사람들은 외지에 나가 돈을 벌면 고향 마을로 보내고 또 보냈다. 자기 ‘가족’이 아니라 ‘마을’에 보냈다는 사실에 주목하시라. 1960년대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들이 보낸 감귤 묘목 3백만 그루가 제주도 감귤 농사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 비석들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나는 마을에 새로 들어갈 때마다 비석이 모여 있는 비석거리부터 찾았다. 비석이 없는 마을은 거의 없었다. 조천읍 함덕리사무소 앞에는 흉상이 서 있었다. ‘함창숙’, 자수성가해 마을 발전에 거금을 희사한 그가 마을을 떠난 것은 불과 아홉 살 때였다. 아홉 살짜리의 마음에 고향의 무엇이 남았었기에 그는 평생을 외지에 살면서 고향을 그렇게 바라보았을까.

마을 공동체가 애향심을 근간으로 유지·발전되어 왔다면, 제주도의 가족 공동체를 지탱해온 것은 독립정신이었다. 제주도에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가족문화가 있었다. 우리의 전통 풍습에 따르면 결혼한 아들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은 당연했다. 봉양을 소홀히 하면 불효자 소리를 들었다. 제주도는 그 반대였다. 아들이 결혼하면 부모는 아들 내외에게 집을 내주고 나가 산다. 집을 따로 구할 여력이 없어서 설사 한 지붕 아래 산다 해도 부엌을 따로 쓰거나, 상을 따로 차린다. 서로 오가기는 해도 부모와 자식 세대는 완전히 분리 독립되어 있다. 부모는 늙어도 일을 하며, 자식에게 의탁하려 하지 않는다. 이 놀라운 ‘독립정신’과 ‘애향심’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길을 걸으면서 나는 그것이 또 궁금했다. 내가 듣고 느낀 바로는 그랬다. 바람과 돌투성이의 척박한 자연 환경, 육지에서 가해온 핍박과 침탈이라는 사회·역사적 환경이 그런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돕지 않으면 고향 사람들은 다 죽는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외국 땅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성큼 희사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늙어서도 기대지 않아야 내 자식들이 살아남는다’는 부모의 생각은 누대에 걸쳐 내려왔을 것이다. 내가 만난 제주도의 늙은 부모들은 팔순이 되어도 밭에서 일을 했다. 

역시 그랬다. 새로 알게 된 제주도의 문화를 지칭하는 이름들이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용어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상부상조 정신은 ‘수눌음’, 자주·자립 문화는 ‘분짓’. 철저하게 절약하는 정신은 ‘조냥’이라고 했다. 제주도에 살기 위하여 제주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이자 풍습이자 정신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제주도의 자연은 그것대로 아름답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살기 좋은 자연은 아니다. 그 험한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사람들의 문화는 자연보다 훨씬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숭고미·비장미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길을 걸으며 경험한 제주의 속살이었다. 그 단단한 속살.

글&사진 성우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와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89년 원源 『시사저널』에 창간 멤버로 입사해 문화부 등에서 13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02년 삶의 터전을 캐나다 토론토로 옮겨 패션업에 종사하면서 시사주간지와 미술전문지 등에 문화예술 관련 글을 써왔다. 캐나다 브루스트레일을 운동 삼아 걷다가 우연한 기회에 경북 내륙지방의 외씨버선길을 걷고 책을 쓰면서 도보 여행에 맛을 들였다. 내친김에 2012년 11월에 완성된 제주올레길 종주에 나서 길 위에서 꿈결 같은 나날을 보냈다. 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2005), 산문 부문 우수상(2007)을 받았고 펴낸 책으로는 산문집 『느리게 가는 버스』(강, 2006), 『커피머니메이커』(시사IN북, 2012), 『외씨버선길』(휴, 2013), 『폭삭, 속았수다(제주올레 완주기)』(강, 2014), 『딸깍, 열어주다』(강, 2016)가 있다.

나홀로잡지 <Weekly 성우제>  cafe.daum.net/drkim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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