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     COLUMN     |     September

경험을 통하여 본 제주사회의 제사문화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제사문화는 아마 7살 때로 기억한다. 누구의 제사인지도 모른 채 엄마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조부모 댁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느끼는 일상과는 다른 불편함이 자리하였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방안에 북적거리는 수많은 친척들과 이웃들, 수돗물도 흔치 않아 물맛이 다른 담수를 먹어야 하였고, 늦은 밤까지 졸음을 참아야 하거나 제사준비 덕에 펄펄 끓는 아랫목에서 더운 땀을 연신 쏟아내며 선잠을 청하고, 자시에 제사를 지내야 했던 탓에 집으로 오는 버스가 끊겨 고스란히 1박2일을 조부모댁에서 보내야만 하였던 어린 아이의 불편함은 제사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 되었다. 

조모가 돌아가시고, 집안에서 분제가 일어나면서 일부의 제사는 부모님의 몫이 되어 우리 집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그 바람에 나 또한 모친의 제사 일손을 돕는 중요 일꾼이 되어버렸다. 모친의 제사 준비는 한 달 이상이 걸리는 듯하였다. 제수 준비와 친척들이 함께 먹을 음식 준비에 정성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특히 친척의 수가 많아, 족히 100인분은 넘는 음식을 장만하는 일은 나를 포함하여 어머니, 집안 며느리들의 등골을 빼는 일이었다. 젠더적 관점에서 보면 너무 불평등한 일이었다. 몇 년 전 TV다큐에서 퇴계 이황의 직계 자손이 오랫동안 장가를 들지 못하였다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었는데, 여성이라면 백 번 이해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청소년기 나는 이런 제사문화에 반발하면서 집안 남성들도 동등한 노동력을 제공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제사에 대한 나의 청소년기 기억이다.

내가 접한 제사문화의 불편함 속에서 나는 왜 이렇게 제주사람들은 제사를 중시 여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던 것 같다. 종종 강원도에 계시는 이모로부터 제주 사람들은 죽은 귀신을 중시 여겨 제사를 잘 챙긴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였는데, 제주사람들이 제사를 중시 여기는 까닭에 대한 궁금증이 나의 초기 학문적 주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봉개동에 위치한 회천마을을 대상으로 제사문화를 조사하기 시작하였고, 제사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점들이 생겨났던 것 같다. 

실제로 제주도의 제사문화는 1980년대 이후 더욱 번성하게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제주사회를 둘러싼 몇몇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요인들의 구조적 역학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는데, 그 중 강력한 요인은 환금작물의 재배였다. 환금작물의 재배로 가계 소득이 높아지면서 생계를 위한 소비 다음으로 돈이 쓰였던 곳이 제사문화였다. 가부장적인 가족공동묘지 조성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단지 가계 소득이 높아져서 제사문화가 번성하게 된 것만은 아니었다. 제주공동체에 대한 몇 차례 정치사회적 위기를 겪으면서 그 반동으로 제사문화가 더욱 번성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비롯하여 4․3사건 및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제주 사람들은 심각한 가족의 소실과 공동체 붕괴를 경험하였고,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제사문화를 활용하였던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사 범위가 15촌에 이르는 경우들이 발견되는 것도 잃어버린 가족 및 공동체에 대한 복원 열망의 하나였다. 새마을 운동 시기 가정의례준칙 등을 통하여 제사문화를 축소하려던 정부의 의지가 스며들지 못한 것도 어쩌면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사수행은 계급을 대신한 하나의 문화적 구별 짓기로 이해되어지기도 하였다. 공동체에 대한 위기를 겪으면서 제사문화를 통하여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의지는 나아가 집안의 세를 표상하는 하나의 문화적 장치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가족공동묘지는 그 의지의 결정적 표상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제사문화는 가부장화의 표상이기도 하였다. 환금작물의 재배는 수눌음 형태의 노동력 제공에서 남성노동 중심의 임금노동형태의 노동력 제공으로 변환되면서, 제사문화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상당부분의 노동력 제공은 점점 여성중심의 노동력 투입으로 전환되어 제사의 사전 준비는 여성의 몫, 수행은 남성의 몫이라는 이분법적인 제사문화가 공고히 되어 갔다.

현재 제사문화는 다른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제사를 둘러싼 젠더 문제, 후계 계승문제, 국토개발문제, 장묘문화의 변화  등 여러 사회적 이슈들과 요인들에 의해 급속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주지역 제사문화의 궤적 속에서 공동체 보호의지는 눈여겨 볼 지점이다.

 현혜경
글쓴이 현혜경은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이다. 전남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전남대학교 계약교수 및 제주대 SSK(한국사회과학연구단) 전임연구원으로 일하였다. 제주의 전통과 현재에 관심을 두고 제사문화, 로컬푸드 등의 다양한 주제를 연구한다. 『제주농촌마을의 기제사의례 변화 : 회천마을 사례』(1998), 『제주4·3사건 기념의례의 형성과 구조』(2008), 「제주지역 민간신앙과 점복」(2001), 「제주지역 로컬푸드 운동의 현황과 전망」(2009) 등의 연구를 진행하였고, 『한국인의 일생의례 : 제주도』(2010), 『제주여성사 2; 일제강점기』(2011), 『제주학총서-제주 먹을거리 풍경』(2013) 등 집필에 참여하였다.